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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Jan 16. 2020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

오래도록 기억되는 말 한마디의 힘

직장의 문제로 마음이 소란했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겪게 되는 일로 몸과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피로했다. 겨우 억누르며 살았던 패배감과 열등감이 스멀스멀 세력을 넓혀가며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았지만, 쉬이 내뱉는 그들의 조언은 내 마음을 한 톨만큼도 다독일 수 없었다.


"그냥 때려치워."

"이직을 해보는 건 어때?"

"공무원 준비해봐."


나의 과거, 현실, 심경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건네진 당연한 말, 그 쉬운 조언들에 나는 이차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 이후로 나는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 내 마음을 드러내는 일에 아주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입을 더 다물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는 일을 경계하는 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호되게 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정말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꼭 어떤 말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 이미 바닥난 에너지를 쥐어짜내 더 깊은 상심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때가 오면 나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말 대신 그 사람이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실용적 조언이 아닌 상대가 필요로 하는 말을 건네려고 하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된 것에는 4년 전 만난 '정'의 영향이 컸다.


 


 


4년 전, 국제 콘퍼런스 행사의 사무국에서 근무한 일이 있다. 매년 회원국의 여러 도시를 돌면서 열리는 국제 행사였는데, 그때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그 행사의 독특한 점은, 콘퍼런스가 열리는 장소에서 두 개의 페스티벌이 동기간에 열린다는 것이었다. 사무국에서도 이것을 그동안 열려왔던 콘퍼런스와의 차이점으로 내세워 행사를 홍보했고, 적극 활용해 "역대 최다 참가자 모객"을 목표로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였다.


같은 기간에 한 장소에서 여러 행사가 함께 개최되다 보니, 사무국 간의 긴밀한 협조는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절대 조건이었다. 사무국은 일주일에 한 번씩 주간회의를 진행했고 회의 내용을 공유했고, 회의록 양식을 통일하여 효율성을 높였다. 한 사무국의 담당자가 산적해있는 업무에 허덕이고 있을 때, 다른 사무국 직원이 공동 회의 내용을 대신 정리하여 카톡으로 찔러주는 일은 빈번했고, A사무국이 홍보 리플릿을 우편 발송하는 일로 전체 업무가 마비되었을 때, B와 C사무국에서 업무 품앗이를 해주러 오기도 했다.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이 유사한 성격의 일을 같은 시기에 한다는 데에 연원을 둔 동지의식은 사무국 소속과 실무자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를 형성해주었다.





특히 우리 사무국의 전체 업무를 총괄하고 있던 나는 그들에게 심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직원들의 잦은 외근으로 홀로 사무국을 지키는 날이 많았던 내가 혹여 혼자 점심을 먹지는 않을까 먼저 연락을 주고 점심식사에 기꺼이 초대해주었고, 우리 사무국 근처를 지날 때마다, 꼭 들러주어 과자나 과일과 같은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는 정 많은 사람들이었다. 받은 따뜻함이 많아서였을까, 나는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고, 단발성 프로젝트였기에 기한이 있는 만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능하다면 그들과 오래오래 가깝게 지낼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 애정이 얼마나 컸는지 나는 심지어 내 적을 옮겨 그들의 사무국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품기도 했다.


6개월의 준비기간이 지나고, 마침내 행사기간이 다가왔고. 각 행사들을 단독으로 진행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동시에 세 개의 행사를 주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행사가 열리는 아트센터의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상태였다. 아트센터에서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던 것은 하나. 일정표를 꼭 지켜달라는 것. 각자 사무국에게 할당된 장소의 사용 시간 엄수는 필수였다. 컨벤션 센터, 중극장, 소극장. 대극장 각각의 행사 장소마다 스케줄이 꽉 차있었고, 중간의 비는 시간 없이 A국 행사가 끝난 다음 바로 C국 행사가 잡혀 있었기 때문에 사전부터 거듭 회의를 하고 의견을 취합, 조율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렵게 완성된 일정표였기 때문에 시간 엄수는 반드시 수호되어야 하는 원칙이었다.


하나의 단추만 잘못 끼어져도 3개의 페스티벌 전체 일정이 줄줄이 영향을 받는 도미노의 구조로 시간표를 촘촘히 짜여있었다. 하지만 인생사 제 마음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그 사고의 원흉이 바로 내가 소속된 사무국이었다는 것이다.


그 날은 세미나 첫 번째 날로,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사고의 연속이었다. 오후 세션의 한 꼭지를 담당한 한국인 연사는 행사장을 착각하여 1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도시로 와버렸다는 연락을 오전 10시에 주었고, 사무국 측에서 잡아놓은 호텔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따로 숙소를 잡았던 태국 관계자들은 행사장을 찾지 못해 서울을 방황하고 있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이어질 축하공연의 연주자들의 식사를 주문하고 받아오는 일도 신경 써야 했고, 커피 브레이크 타임에 참가자들이 근처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배분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연사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스피치 시간을 번번이 넘기는 탓에 전체적으로 지연된 스케줄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니 하고 싶은 말들이야 오죽 많겠느냐만은 그것을 감안하고 짠 프로그램임에도 적게는 2~3분 많게는 9~10분씩 늘어난 스피치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1시간의 오차라는 대참사가 일으키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간, 세미나 후로 잡혀있는 축하공연 스케줄도 밀릴 것이고, 우리 공연이 밀리게 되면 그다음으로 그 장소를 사용하기로 되어있는 C 페스티벌의 행사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 분명하였다.


원체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그동안 나를 따뜻하게 챙겨준 C사무국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을 그냥 좌시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해 보이는 사무국장님께 조심스레 다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국장님. 이대로 가다가는 전체적으로 스케줄이 밀릴 것 같은데.. 들어가셔서 정리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Sweetish씨. 괜찮아요. 이런 행사 처음 해보죠? 행 사하다 보면 시간표대로 되는 것 없어요."


"하지만 국장님, 축하 공연하는 극장을 C사무국에서 저희 공연 끝나고 30분 뒤에 바로 사용하기로 되어있는데 저희가 이미 스케줄이 계획보다 1시간이나 밀려서.."


"아 글쎄, 괜찮다니까. Sweetish씨는 우리 사무국 사람이에요? C사무국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 일에 우리 행사를 맞출 필요 없다니까."



Sweetish씨는 우리 사무국 사람이에요? C사무국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 일에 우리 행사를 맞출 필요 없다니까."

그게 무슨 말이세요..? (출처:무한도전)


아니 이럴 거면 5개월 동안 매주 전체 회의는 왜 했나. 서로 상부상조하고 협력해서 이런 일 없게 하려고 매주 화요일마다 담당자들끼리 머리 맞대고 모였던 것이 아닌가. 회의록 양식 통일하고 회의록 공유한 것 아닌가, 굳이 굳이 메일 보낼 때 타사무국 담당자를 cc한 것 아니었나.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한 마디 더해볼까 했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드리러" 떠난 후였다. 뭘 더하고 싶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까라면 까야하는 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C사무국 담당자 '박'에게 전화해볼까. 전화를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사무국장님이 막무가내라 어쩔 수 없이 그쪽 행사에 피해가 갈 것 같은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런 되지도 않는 말을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이리저리 아무리 굴려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도 마침내 상급자의 이기주의에 굴복하여 '그래, 될 대로 대라.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자포자기하게 되었다.




세미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고, 참가자들이 우리 사무국의 스태프들의 인도에 따라 축하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세미나 담당자였던 나는 자원봉사자들과 컨벤션센터에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한창 뒷정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해외 연사 담당자인 '김'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대리님. 대~~~박!! 밑에 완전 난리 났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극장 사용 시간 넘어가서 C 페스티벌 사람들이 계속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아트센터 사장님이 그것 때문에 완전 노발대발하셔 가지고 국장님한테 뭔 일을 이따위로 하냐고."


"정말요?"


"네. 진짜 엄청 화내셨어요. 국장님 이름도 막 부르고. 반말하시고. 욕하시고. C 페스티벌 사람들까지 와서 말렸다니까요."


"국장님은요?"


"쩔쩔매시죠 뭐."


나오는 것은 깊은 한숨뿐... (출처: 슛 포 더 레전드 클래스)


나의 상사가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던 아트센터 사장님께 호된 질책을 받았다는 소식에 '내 그럴 줄 알았다'의 고소함과 개운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초등학생 아들까지 둔 40대 남성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했으니, 그 속이 얼마나 쓰릴까.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그를 두둔하고 싶다가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그 파도는 그 일에 대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세력을 키워 더 큰 파도로 나를 덮쳤다. 5개월 동안 야근을 해가며 열심히 준비했던 일이 다 허사가 된 것 같았다. 이제 아트센터 사람들과 C사무국 사람들을 어떻게 보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축하공연은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로 끝나고, 해외 참가자들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기 위해 전세버스에 올랐다. 나도 그 버스에 올라 참가자들을 챙겨야 했지만,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한 감정들로 얼굴이 사색이 된 나를 보자 '김'은 자기 혼자 다녀오겠노라고 자원을 했다.


"대리님. 대리님은 그냥 여기 계세요. 정리할 것도 많으신데. 그냥 저 혼자 갔다 올게요."


"그래 줄 수 있겠어요? 안 그래도 오늘 비용 쓴 것도 정산해야 하고 내일 행사 준비로 이것저것 할게 많아서.."


"네. 이따 숙소에서 봬요. 대리님. 뭐 좀 드시고 힘 좀 내세요. 얼굴이 너무 안 좋아요."


"고마워요. 잘 다녀와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요."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아트센터 앞문에 서서 그들을 배웅하고 뒤를 돌아섰는데 C사무국의 '정'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정'을 보자마자 다시금 죄책감의 파도가 치기 시작했고, 미안함에 온몸이 굳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미안하다고 어떻게 말해야 하지. 행사에 차질이 생겨서 크게 곤란했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는 나에게 다가온 정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그때 그가 건넨 다섯 글자의 한 마디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창 행사가 진행 중이었던 상황이라 모두가 예민했던 때였다. 한 행사의 책임자의 이기적인 결정으로 '정'이  6개월 동안 공들여 준비해왔던 프로그램 진행이 틀어지게 되었다. 아무리 이해심이 넓은 사람이라고 해도 충분히 화낼 수 있는 상황이었고, 진노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임을 묻거나 비난이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푸념이라도 털어놓을 것이라고.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그의 항의를 받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떠한 비난을 받게 되더라도 별 수 없다고, 나는 스스로를 준비시켰다. 하지만 눈치를 보며 잔뜩 움츠려있는 나에게 그가 내게 건넨 것은 내가 떨며 각오하고 있던 말이 아니라, 내가 감히 기대할 수도 없었던, 하지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다섯 글자의 말속에, 그 순간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말이 다 들어있었다.


"당신의 잘못 아닌 거 다 알아요."

"일이 그렇게 돼서 속상했죠?"

"행사를 하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일 많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첫날이라 정신없었죠? 수고 많았어요."

"이 일로 사이가 어색해지거나 나빠지는 일 없어요."

"남은 기간 동안 더 힘냅시다!!"


그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속상함, 미안함, 억울함, 염치없음, 불안함을.


그가 지나쳐가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차오르더니 이내 눈물로 쏟아졌다. 누가 볼세라 고개를 푹 숙인 채 텅 빈 사무실로 돌아와 혼자 잠시 울었다.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함을 느꼈고, 사건의 발단이 우리 사무국이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창피했다. 비난받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고 없이 받게 된 공감과 위로에 애써 움켜쥐고 있던 긴장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며 나는무너졌던 것 같다. 사무실이 텅 비어있어서 다행이었고,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출처 : Unsplash


그때의 일과 그날의 나의 감정,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생긴 '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과 존경심을 그에게 털어놓는다면 그는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특유의 말간 웃음을 지으며 "에이~ 뭘 그런 거를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그래요~ 진짜 별일도 아니었는데."라고 '정'은 말할 것이다. '정'은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가장 필요로 할 때에 해준 것은 '정'이 최초였고, 그 후로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난 그와 같은 위로를 다시 느끼지 못한 상태로 몇 년을 살고 있다.


옳은 말, 정답을 말하는 것은 쉽다. 상대에 대한 애정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 - 아첨과는 다르다 - 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 깊은 헤아림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날 내가 '정'에게 받았던 것이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주 건강했으면 좋겠고, 늘 행복에 겹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그를 비껴가기를 소망하고, 꼭 겪어야 하는 역경이라면 아주 가벼이 앓기를 바란다.

좋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기를 염원하고, 그에게 소중한 사람들도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그를 향한 나의 인간적인 호감은 어쩌면 영구히 지속되지 않을까.

나는 아마도 평생 그에게는 객관적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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