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ni Jun Aug 17. 2023

그럼에도 고등유민이 되고 싶습니다.

소설 <그 후>의 그와 같이

지금이야 SNS나 커뮤니티 등에 부족한 글을 올리면서 ‘베니 준’이라는 이름을 대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 별명을 -필명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기에- 썼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정확히는 당시 다음의 브런치를 시작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맞닿기 전까지는 ‘Jun’ 외에 ‘다이스케’라는 닉네임을 주로 사용하곤 했다. 실제로 나의 브런치 URL도 daisuke8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옆 나라 기준으로는 철수와 영희처럼 너무나 흔했기에, 내 나름의 특수성을 갖고자 하여 새 별명을 찾게 되었다. 원래 게임에서도 이름 정하기에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라 항상 길고 긴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는 했는데, 생각해 보니 다이스케에는 그런 숙고의 시간이 거의 없었더라. 그도 그럴 것이 그 이름은 내가 아니라 작가 나쓰메 소세키 선생님께서 지으셨던 거니까.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동경해, 일종의 아바타처럼 캐릭터의 옷을 따라 입었던 게 그때의 나였다.


소설 <그 후>는 출판사에서 전집으로 묶어 세계문학이라 부르던 작품들 중 내가 태어나 두 번째로 읽었던 장편의 이야기다. 무엇을 숨기랴, 첫 번째는 영원한 나의 동무 알렉스의 <시계태엽 오렌지>였고 말이다. 아무튼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에게는 작품 내외로 그를 상징하는 표현이 있었는데, ‘고등유민’이 바로 그것이다. 고등 교육을 받아 지식과 지혜를 쌓았음에도, 어지러운 세상 탓을 하며 직장을 구하지는 아니한다. 먹고살기 위한 돈벌이가 세상 가장 저열하다 폄하하며, 자신은 고상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겠다 주장한다. 예술을 탐미하고 지식을 좇으며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도록.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고 어리석은 가치관이지만, 그와 처음 만났던 무한 경쟁시대 속 중학생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이상적이고 아름답게 비쳤다. 물론 제아무리 고등적이라 한들 결국 유민, 한량이나 백수와 다름없었음에도, 그때는 그것마저 어떠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 부끄러운 사실이다.


만일 감자를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
인간은 끝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단순히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하여 모두가 인간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걸까?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한 채, 감자만을 주워 담는 이를 인간이라 부르기에 충분할까. 책을 읽고 연극을 보며 영화를 즐기는 사람만이, 우리가 흔히 문화인이라 부르는 그 사람들만이 인간이라는 칭호를 얻어 마땅하지 않겠는가. 비뚤어진 인간관에 얄팍한 우월감까지. 어쩌면 나 자신부터 문화적으로 결핍되어 있음을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기에, 당시의 나는 더 배타적이고 더 공격적인 생각 속으로 부랴부랴 숨어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그야말로 고등유민의 삶을 만끽했다. 전공과 교양을 넘나들며 배우고 싶은 온갖 것들에 고개를 내밀었고, 고등이라 부르기에 부족했던 나의 지식에도 점차 피둥피둥 살이 붙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생활에도 언젠가 만료일이 찾아오리라는 것이었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언제까지고 가정에 빌붙어 유민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대학이 상아탑이라 불린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나는 내 호기심 대신 이력서의 공란을 채워야만 했다.


자격증을 따야 할까, 영어 시험을 봐야 할까. 활동 내역에는 무엇이 들어가며, 그건 어디로 가야 채워질까. 애초에 내게 현실적인 장래희망이라는 게 있기나 했을까. 대체 나는 무엇을 목표로 준비하면 되는 걸까. 이제껏 말해왔듯, 나는 고등유민이 되고 싶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매일을 영화와 함께하며, 활자를 금침 삼아 언제까지고 그 속에 머무르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이라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또 어리광을 부리며, 이제는 벗어야 할 고등유민의 감투를 손에 더 꽉 쥐고는 했다.


그래, 언제까지라도 그런 세계에서
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다이스케가 내놓은 궤변을 듣고, 그의 친구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그 말대로다. 언제까지고 꿈속에서 살아갈 수만은 없기에, 내가 지어야 할 짐을 더 이상 떠맡겨선 안 되기에. 오늘도 사람들은 침대를 벗어나 어른의 옷을 입고 힘차게 문밖으로 나아간다.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너무나 소중한 나 자신까지도. 그들에게는 함께 웃고픈 누군가가 있었기에, 그 저열한 돈벌이마저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스스로 고상하다며 또 남들과는 다르다며 다이스케는 자만하고 젠체했지만, 실상 그는 이야기 속 누구보다도 유아적인 겁쟁이였다. 아버지로부터의 지원이 끊긴다면 앞으로는 지금처럼 나태할 수 없을 텐데. 시곗바늘에 등 떠밀려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는 그저 또 한차례 달관한 양 책 속으로 도망칠 뿐이었다.


주위의 걱정 어린 입김에 상관없이, 다이스케도 나도, 이제는 정말 바뀌지 않으면 아니 되는 때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도망치고 외면하다니. 쉽사리 바깥과 마주하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 필시 발끝부터 스멀스멀 답답함이 차오르리라. 아이 같은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에게 있어 직업이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 덩어리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과연 내가 해낼 수나 있을지. 남들은 다 하는데, 나 혼자만 못한다면 대체 또 어떡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은 하나하나 시커먼 불안이 되어 자꾸만 포기를 종용했다. 그저 이전처럼 눈을 감아 결정을 미룰 수만 있다면, 아무렇지 않은 듯 극장을 나와 오늘의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할까.


수많은 유보 끝에 낭떠러지의 끝자락까지 다다라서야, 비로소 외면해 온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래, 조금만 더 빨리 자신을 바꿔보지 그랬어. 하루라도 먼저 내일을 준비하지 그랬어. 고등유민을 꿈꾼다는 미명을 방패 삼아 나는 너무 긴 시간을 그저 바라만 보며 흘려보내왔구나. 어느샌가 나는 예술의 미에 빠진 유민(遊民)이 아니라, 예술을 핑계 삼아 떠돌고 도망쳐 온 유민(流民)이 되어있었다. 다이스케에게는 자신과 다른 길을 걷는 친구 히라오카가 있었고, 불안을 이겨낼 정도로 사랑했던 여인 미치요가 있었기에, 그는 고등유민이라는 감투를 벗어던지고 구직을 결심하여 일어설 수 있었다.


그와 같이 어차피 혼자라며 문을 닫아버린 나의 삶에도, 그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려주신 분들이 여전히 내 곁에 계셔주셨더라. 이제껏 선을 긋고 벽을 세워 경계만을 해왔는데. 그분들은 그런 나에게까지도 따스한 응원을 보내주셨구나. 그러니 감사한 마음으로, 또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 세상으로 내디뎌 그분들과 마주할 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우렁찬 웃음으로 재회를 반기리라.


나는 여전히 고등유민이 되고 싶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로의 뜻이 아닌, 조금은 쓰임과 다른 의미로. 나는 앞으로도 영화와 살 것이고, 내 머리가 허락하는 한 글쓰기도 계속할 심산이다. 그렇게 지식을 쌓고, 경험을 쌓고, 이제는 거기에 관계까지 더해지겠지. 그렇게 언젠가 그 모든 사람들과 둘러앉았을 때 함께 웃을 수 있는, 나도 그런 즐거운 유민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악마가 바라본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