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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Oct 23. 2023

'로키'가 키워낸 자유의지 담론, 마블시대를 다시 열다

드라마 <로키> 시즌 2의 중반을 넘어서며

드라마 <로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뽑으라면 주인공 로키(톰 히들스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할 캐릭터가 있다. 바로 시즌 1의 마지막 6화에서야 실체를 드러낸, 계속 존재하는 자(조너선 메이저스)가 그러하다. 31세기의 과학자 너새니얼 리처즈의 변종인 그는, 다른 변종들과의 전쟁 이후 하나의 시간선을 분리해 내어 그것을 ‘신성한 시간선’이라 명명하고 관리해 왔다. 이후 신성한 시간선이 멀티버스에 간섭되지 않도록, 또 자신의 변종들이 이곳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그는 시간 관리국 TVA를 세워 변종들의 위협으로부터 신성한 시간선을 보호해 왔다. 물론 그 보호가 관점에 따라서는 그저 학살과 다를 바 없는 행위였지만 말이다.


그는 중심으로부터 뻗어나간 시간선의 곁가지가 자신의 변종들에게 발견되는 것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만일 그들이 이곳을 찾아낸다면 겨우 가꾼 자그마한 평화마저 전쟁의 불길 속으로 사라지고 말 테니까. 때문에 그는 TVA를 움직여 분기된 시간선들을 잘라냈고, 평화라는 미명 아래 그 속의 생명들까지도 무심히 희생시켜 왔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었을까. 그는 가지치기를 거듭하며 수많은 인물들의 자유의지를 빼앗아왔다. 자신이 선택한 가지만을 남겨두어 모두가 그 길을 따르도록 강제했으며, 조금이라도 벗어난 자들은 어김없이 세상에서 잘라내었다.



물론 그 자신 또한 성채에 홀로 앉아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저 시간선을 지켜볼 뿐이었으니, 어쩌면 그는 자신의 자유마저 억압해 왔을지도 모르리라. 실제로 지난 시즌 2의 3화에서 드러난 캉의 새로운 변종, 빅터 타임리(조너선 메이저스)의 삶을 본다면, 적어도 그의 모든 변종들이 온전하게 자유의지대로 살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과학에 빠져있던 빅터는 계속 존재하는 자의 계획에 의해 본래는 접할 수조차 없었을 TVA의 책자를 손에 넣었고, 그의 의도대로 책자 속 일종의 미래 과학을 하나둘 실현시키기 시작했다.


빅터의 입장에서 보자면 단순히 하늘에서 책 한 권을 떨궈주었을 뿐이었다. 우연히도 책의 내용이 자신의 흥미와 딱 맞았을 뿐이었고, 내 머리를 훔쳐본 듯 상상하던 기술들이 책 속에 그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선물처럼 다가왔겠지. 하지만 그의 삶에 작용한 이 작은 변수가 거대한 우주 너머에까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과연 그때의 아이가 알 수나 있었을까. 그는 언젠가 자신이 시간선의 관리자로 성장하여 TVA를 바로 세우리라는 운명의 레일 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올려지고 만 것이다. 결국 빅터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의 미래는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그는 넘쳐나는 상상력과 과학적 호기심을 마음껏 발휘하며 그 레일 위를 신나게 달려갔지만, 과연 그것이 오롯이 빅터의 바람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노력하여 싹을 피웠다고 한들, 애초에 씨앗을 심은 자가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에피소드 후반 자신을 차지하려는 각 파벌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나 역시 선택할 수 있다고 자신의 의지를 내비쳤다. 그래, 어쩌면 그에게는 남이 깔아놓은 레일을 벗어나 그만의 길을 나아가고픈 의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가 다른 이들 대신 로키와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은, 계속 존재하는 자의 대본을 벗어나 내디딘 첫걸음이 아니었을까.



사실 드라마 <로키> 시리즈가 인물들의 자유의지를 특히 더 강조하고 있을 뿐, 지금까지의 MCU 작품들 또한 그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이야기 속에 담아 왔다. 정신 조작 마법으로 헥스 속에 사람들을 가두었던 <완다비전> 속 스칼렛 위치와 속박을 풀고 날아가 버린 화이트 비전은 물론이요, 달의 신 콘슈와 자신의 다른 자아에 의해 신체의 통제권을 쥐었다 뺏겼다 하는 <문나이트>의 마크와, 제4의 벽을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선택해 낸 <변호사 쉬헐크>의 제니퍼까지. 어쩌면 타인의 신체를 유폐시킨 뒤 그의 모습과 기억으로 삶을 대체하는 <시크릿 인베이젼> 속 스크럴 종족 또한 자유의지의 박탈이라는 점에서 위의 사례들과 상통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마블이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와 목적은 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어째서 이야기 속에 자유의지에 대한 담론을 담아 온 걸까.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를 마블이 그리는 세계 속에 인지를 초월한 우주적 존재들이 실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의 대립이다. MCU 속 초인적 캐릭터들의 힘을 빌려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두 입장의 충돌을 그려보고, 관객인 우리에게 자유의지의 존재를 상기시키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멀티버스 사가에 들어서며 시간선 바깥의 존재들이 이야기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제까지의 이야기들에조차 우리가 아닌 그들의 의지가 다분히 개입되어 왔음이 하나둘 밝혀졌다. 머지않아 이 사실과 마주할 영웅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또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품게 될까.



그것이 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절대적 권능에 의해서든, 사고실험 속 라플라스의 악마처럼 과학을 통한 분석에 의해서든,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운명론적 시각 앞에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그 반짝이는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쩌면 우리 모두 팔과 다리에 실이 묶인 채 그저 저들이 흔드는 대로 춤을 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 허무하고 우울한 이야기다. 노예제가 남아있던 19세기도, 프로파간다가 판을 치던 20세기도 아닌, 21세기의 자유시민인 내가 이 손 위의 자유를 의심해야 한다니.


물론 이는 화면 너머 영웅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이야기의 무대가 넓어질수록 초월적 존재들이 그 모습을 점점 더 많이 드러낼 테고, 그때마다 그들의 폭력 아닌 폭력에 영웅들은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자신을 따르라고. 다른 길은 없다고. 대의를 위한 일이라 포장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라 종용하겠지. 하지만 영웅들은 결코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의 희생이 닥터 스트레인지가 본 미래대로 정해져 있었음에도, 그는 결코 도망치거나 체념하지 않고 끝까지 아이언맨으로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타노스에 맞서지 않았던가.



지금의 MCU는 캉 의회의 출현과 인커전의 발생 등 멀티버스적 위협을 앞에 두고 있다. 심지어 우주로 가기 전 당장 지구만 놓고 보더라도 영화 <이터널스>의 결말에서 아리솀의 심판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에 맞서 영웅들은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초월자의 말에 따라 정해진 운명을 묵묵히 따르게 될까. 무엇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며 그저 두 손을 놓아버리게 될까. 아니면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을 치며 단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 할까.


히어로든 빌런이든 그들 모두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로이 선택하게 된다면 세상에는 분명 전례 없는 혼돈이 닥쳐오게 될 테다. 하지만 제아무리 그곳이 혼돈이라 할지라도, 그 속은 필시 억압으로 유지되는 질서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조화로우리라. 결국 마블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설령 미래가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과 선택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외침이 아닐까.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며 자유를 되찾아, 보다 더 진보적인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외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슈퍼히어로 장르에 철학적 물음을 가미하여 영화관 밖에서도 토론을 이어가게 했던 인피니티 사가처럼, 지금은 다소 흔들리고 있는 멀티버스 사가 역시 점점 자유의지에 대한 담론을 키워가며 스크린 안과 밖을 이어주리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 마블의 우주적 존재 같은 초월자는 없을지언정, 어쩔 수 없다며 행해지는 자유의지의 억압과 침해는 오늘도 사회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니 과연 혼돈과 질서 중 어느 쪽이 더 정의로울지, 드라마 <로키>가 손에 쥔 이 배턴이 얼마나 더 커지고, 다음에는 누가 이를 이어받을지, 즐거운 상상을 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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