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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Feb 04. 2024

배우들의 캐릭터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시민덕희>

열연으로도 감추지 못한 이야기의 모순들

라미란 배우, 염혜란 배우, 그리고 장윤주 배우. 이 세 배우가 함께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먼저 라미란 배우를 떠올려보자. 다소간 아쉬웠던 <걸캅스>나 <정직한 후보 2>까지도 포함하여, 그의 선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따스함과 친숙함을 남겨 왔다. 또 예술과 상업을 오가며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는 염혜란 배우는 어떠한가. 그가 <빛과 철>에서 보여준 서늘하고도 맹렬했던 감정의 불꽃은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격렬히 타오르고 있다. <베테랑>과 <세자매>를 거치며 특유의 캐릭터를 구축한 장윤주 배우 역시, 이제는 모델보다 배우라는 수식어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당당히 영화인으로서 자리 잡았고 말이다.


그러니 설령 <시민덕희>의 줄거리가 진부하고 결말이 뻔히 다 보인다고 할지언정, 관람하지 않고 지나치기에는 배우들의 매력이 너무나 컸다. 그래, 뭐, 권선징악이겠지. 직접 비행기 타고 날아가 제보자 구출하고 총책 잡으면서, 경찰의 무능함을 비판하겠지. 또 중간중간 사연이며 사건이며 욱여넣어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테고, 그러면서 무거운 분위기는 감당을 못 하니 가볍게 유머도 집어넣겠지. 실화를 기반으로 하였다고 한들 그 결과물이 성역에 놓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현실보다, 각본대로 진행되는 영화가 더 현실적일 필요도 있으니까.



<시민덕희>에 기대했던 것은 딱 하나였다. 무난한 소재의 무난한 이야기가 무사히 무난하게 흘러갈 것. 어딘가 턱 하니 걸리는 지점 없이, 그저 배우들의 열연으로 나쁘지는 않게 기억되는 영화이기를 바랐다. 다행히 영화를 보던 도중에도 또 다 보고 난 지금도, 연기에 대해서는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보이스피싱에 당한 덕희(라미란)의 허무함과 절실함은 라미란 배우의 서민성과 만나 관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고, 언어를 넘나드는 봉림(염혜람)의 능수능란함과 분위기를 환기하는 숙자(장윤주)의 예능감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의 중반부에서 관객의 이탈을 막아주는 든든한 벽이 되었다.


<시민덕희>는 그렇게 배우들의 연기와 궁합만 잘 보여주었더라도 무난하게 기억될 영화였지만, 정작 영화는 스스로 의아한 선택을 하며 관객이 캐릭터에 빠져들기를 방해했다. 가령 몇 년 전 먼저 개봉했던 영화 <보이스>와 <시민덕희>를 비교해 보자. 두 영화 모두 2020년에 촬영을 마쳤기에 만일 팬데믹이 오지 않았더라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로 스크린 경쟁을 벌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전자는 액션과 서스펜스에, 후자는 코미디와 드라마에 집중하며 서로 다른 색을 발했지만,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총책을 쫓아 중국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서로가 다른 한편을 연상케 하기에 유사성은 충분했다.



두 영화에서 각각의 시작을 알린 보이스피싱 레퍼토리는 완전히 달랐다. <보이스>의 경우는 남편이 사건에 연루되었으니 어서 합의금을 보내야 한다며 피해자의 인간관계를 파고드는 식이었던 반면, <시민덕희>에서는 대출 상담을 기반으로 수신인을 꾀어내는 보다 금전적인 대본이 사용되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이야기해 볼까? 한쪽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한쪽은 당장의 돈을 위해 움직였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저열하고 일차원적인 왜곡이라 불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디 사기꾼의 전화를 받은 두 사람의 표정이 어땠는지 되짚어보기를 바란다. 당혹과 공포로 떨리던 미연(원진아)과 달리 덕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지 않았던가.


영화 <보이스>와 <시민덕희>의 가장 큰 차이는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어떻게 묘사했느냐에 있다. 두 작품 모두에서 그곳은 철저하게 폭력으로 돌아가는 반인륜적 공간이었고, 사람들은 그 속을 알든 모르든 큰돈을 벌기 위해 하나둘 돈의 덫 속으로 모여들었다. 타인의 돈을 빼앗지 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졌기에, 좋으나 싫으나 그들은 범죄 행위를 강요받으며 쉼 없이 전화기를 손에 들었다. 그래, 누가 그런 일을 하고 싶었겠어. 어쩔 수 없으니까, 도망칠 수 없으니까. 살아서 버텨야만 하니 다른 수가 없었겠지. 내가 살기 위해 수백수천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피해자라도 된 양 그렇게 되뇌면서 양손 가득 돈뭉치를 챙겼겠지. 아아, 이보다 더 이기적인 군상들이 세상 또 어디에 있으랴.



영화 <보이스>가 비춘 콜센터의 직원들은 성과급에 눈이 먼 공범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 없이 보이스피싱을 즐겼고, 이후 조직원들과 함께 경찰을 밀어내며 완전히 범죄에 동화되었음을 드러냈다. 그런데 웬걸. <시민덕희>는 오직 총책만을 악인이라 설정하며 콜센터 직원들은 억울하게 잡혀 온 피해자인 양 연출하더라. 마치 저들의 마음에도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처럼. 억지로 강요받은 일이었으니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처럼. 그러한 논리라면 전후 나치스의 잔당은 왜 처벌을 받았는가. 절이 잘못되었다 싶었으면 중이 떠났어야지. 떠나지 않고 그곳에 머물렀다는 것은 악으로 가득한 콜센터의 생활이 견딜만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죄책감에 두려움에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면, 탈출 시도가 아니라 자살 기도라도 해봤어야지.


라미란 배우와 공명 배우 모두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콜센터 안과 밖에서 극을 이끌어야 하는 두 캐릭터에 대한 설정이 자꾸만 발에 걸려, 결국 러닝타임 내내 영화에 온전히 빠져들 수가 없었다. 물론 문제는 이 두 인물 외에도 즐비했다.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통통 튀던 숙자는 장윤주 배우의 캐릭터와 맞물려 나름 잘 표현되었지만, 경찰의 도움조차 구할 수가 없어 막막하던 덕희의 심리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극의 분위기를 방해하는 마이너스 요소로 느껴졌다. 또한 과히 가학적이었던 총책의 폭력 장면이나, 보호를 명목으로 덕희의 아이들을 데려가는 장면 역시, 연민을 이끌어내려는 인위적 장치로 다가와 아쉬움이 남았다. 정리하자면 <시민덕희>는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연결을 영화가 가로막아, 결국 모순만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 범작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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