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엄마와 아빠가 내 모든 세탁과 다림질을 해주셨다.
흰 교복 셔츠는 펜 자국에 매일 같이 더러워졌고, 소매와 목둘레에는 때가 많이 탔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면 교복에 샴푸를 발라 하얗게 빨아주었다. 다음날 새 셔츠가 없어서 입던 셔츠를 입으려 할 때면 엄마는 "아냐, 금방 빨아줄게. 잠시만 기다려!" 하시며 빨래를 하고 드라이기로 서둘러 말려 입혀주셨다. 살짝 축축한 교복이었지만 엄마의 애틋함이 묻어났던 어릴 적 기억이다.
아빠는 다림질에 참 진심이었다. 군대에서 익힌 다림질 실력을 보여주시겠다며, 치마 봉제선을 따라 깔끔히 다리시고는 했다. 흰 셔츠의 깃과 소맷단을 특히 소중히 다려주셨다. 건설회사에 다니셨던 아빠는 가끔 쉬시는 주말이 될 때면 나와 여동생의 옷을 한가득 쌓아놓고 다림질해 옷장에 차곡차곡 걸어주셨다.
두 분의 완벽한 분업 덕분에 나는 항상 단정한 옷차림으로 학생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결혼을 한 이후 남편의 옷을 다릴 때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문득문득 나고는 한다.
남편의 옷을 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꽤 즐거운 일이다. 세탁기에서 나온 셔츠를 탈탈 털어 햇살에 말리고, 남편에게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은 스팀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린다.
일반 다리미는 섬세한 다림질에 특화된 반면 열에 약한 소재에 제한이 있어 천을 대고 다려야 한다. 반면 우리 집 스탠드 다리미는 옷을 걸어놓고 문지르기만 하면 쉽게 구김 없는 옷을 만들어준다. 엄마아빠 시절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구김 없는 옷을 만들어줄 수 있는 셈이다.
흰옷을 더 희게 만들어 줄 과탄산소다 한 스푼 넣어 빨래를 돌린 후 다리는 게 전부이지만 남편의 옷을 준비해 줄 때의 느낌이 좋다. 남편을 챙겨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스스로 애틋해 "이 건 내가 좋으니까 해줄게!" 선포했다.
엄마 아빠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때가 타고 구겨진 옷을 하얗고 빳빳하게 만들며,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의 구김 없는 하루를 응원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