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많은 사람을 두고 흔히 '일복이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말에는 묘한 모순이 있다. 보통 ‘복 福’이라는 말은 좋은 일이나 행운을 뜻하는데, ‘일복’은 그와 달리 힘들고 과도한 업무와 연결되니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든다. 물론 프리랜서나 자기 일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이 ‘일복’을 기회로 받아들이며 감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에 어딘가 묘한 모순이 있다고 느낀다.
나 역시 "일복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이전 회사에서도 개인 성과를 400% 넘게 달성할 정도로 일이 몰렸고, 지금도 주위 사람들이 선망하던 팀이었는데, 내가 오고부터 일이 늘어난 거 같다.
일이 많다 말하면 엄마는 말씀하신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일이 많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니~ 감사해야지!” 아마도 엄마 세대에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일이 많은 것도 ‘일할 수 있는 복’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가끔 ‘복’이라 불리는 이 일이 어디서 왔고 왜 나에게 온 것인지 궁금해진다. (물론 일이 많을 때 성취감도 커서 의외로 기분은 좋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 같은 사람이 많다. 일복이 많아 힘들어하면서도 일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소화가 안 된다며 아메리카노를 들이마시기도 하고, 뱃살을 호소하기도 한다. 예전에 같은 팀 분에게 "어우, 일복이 정말 많으신 거 같아요"라고 했다가, ‘아니지, 이건 복이 아니라 단순히 일이 많은 거지’하고 얼른 수습한 적이 있다.
이러나저러나 일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은 나는 어쩔 수 없는 개미 신세이다. 일이 없다는 건 '내가 이 회사에 쓸모를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러면 하루 9시간 일하는 시간 동안 내 삶의 1/3이 부정당하는 셈이니까. 그래서일까. 일이 많아 몸이 고될 때면 마음이 편하고, 몸이 편해지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그런 모순적인 편안함이 '일복'이란 단어에 담긴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일복이라는 건 어쩌면 그런 이중적 의미를 지닌 말인 것 같다. 일을 기회로 삼아 감사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삶의 짐으로 볼 것인가. 결국 ‘일복’이란 단어의 의미는, 일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