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면, 자유 시간이란 생각에 맘이 콩콩댄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며 일부러 큰 소리로, “나왔다!”를 외쳐본다. 시간 낙낙하게 평소보다 더 공들여 밥을 짓고, 찌개도 하나 맛있게 끓인다. 혼자 잘 차려둔 음식에 꼭 어울리는 맥주를 고르고, 거품을 만드는 나만의 비법을 발휘해 본다. 캔을 비스듬히 기울이다가 마지막에 수직으로 세워 따르면 크림 같은 거품이 맛있게 피어오른다.
이런 날 영상 선택은 더 신중해진다. 남편과 결코 함께 보지 않을 작품을 고른다. 영화라면 <카모메 식당>처럼 잔잔하고 따뜻한 서사가 흐르는 작품이 제격이다. 하지만 예능이라면 조금 다르다. 남편과 함께 보기 어려운 <스테이지 파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고른다. 특히 <스테이지 파이터>처럼 남성 무용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방송은 남편의 취향과 거리가 멀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면 함께 보기 어렵다.
요즘은 맥주 한 캔도 버거운데, 그 한 캔을 다 비워갈 때면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며 세상이 점점 더 괜찮아지고 있다는 묘한 낙관이 마음을 채운다. 아이패드를 품에 안고 침대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 순간을 만끽한다. 제대로 풀어진 채 내가 원하는 속도로 술을 마시고 또 마신다. 홀짝홀짝.
퇴근이 빠른 남편은 회식이 있어도 저녁 아홉 시면 집에 온다. 내 맘은 모르고 집에 기쁘게 돌아오는 남편. 맛있는 혼술을 위한 최고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집에 동거인을 두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