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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아 Oct 12. 2022

나는 한 달에 한 번 남편이 못마땅해 보인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남편의 모든 것들이 못마땅해 보인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내가 아침 일찍 만들어놓은 스무디를 마시는 그 모습이, 침대 위에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휴대폰을 켜 웃긴 동영상을 보는 그 모습이, 미운 5살 마냥 너무나도 못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생리 전 매번 올라오는 이 묵직한 감정은, 사실은 남편을 통해 보이고 있지만 내가 나에 대해 싫어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는 내 모습이 싫다. 나는 아침에 침대 위에서 휴대폰을 보는 내 모습이 싫다. 그럴 시간에 빨리 일어나서 자기계발하고, 책을 한 자라도 더 읽고, 더 부지런해져야지. 응?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이 한심하고 열등한 인간아! 


이것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 묵직한 감정은 내가 나에게 폭언을 하는 것을 넘어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화살처럼 꽂혀버린다. 


남편은 주말을 맞아 느지막이 일어나 기분 좋게 "Good morning, 아내" 하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아도) 지금 내 얼굴이 얼마나 뚱한 지, 그리고 그 표정이 얼마나 못난 지 알고 있다. 그 못난 모습이 미워, 남편이 건넨 아침 인사에 '굿모닝' 하며 생기 없는 말을 던지고, 읽고 있는 책에 다시 얼굴을 파묻는다.


남편은 개의치 않고 내 옆에서 놀고 있던 고양이를 들어 얼굴을 여비적 댄다. 고양이는 기분 좋게 가르릉 거리고, 나는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곁눈질하며 얼굴을 씰룩거린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내 뚱한 모습도 잃고 싶지 않아 완전히 웃는 모습은 아니다. 모르는 3자가 보기에는 심술궂은 할머니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마음 넓은 아내가 될 수는 없을까? 부드러운 여자가 될 수는 없을까? 아 정말 이 지긋지긋한 열등감을 놓고 싶어. 나도 휴일에는 느긋하게 일어나도 마음이 편하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침 9시만 넘어가도 내 마음은 불안해진다. 이 하루를 헛되게 시작했다는 마음에서다. 


나는 남편이 고양이에게 저렇게 애교를 부리는 이유를 안다. 아침부터 뚱해있는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기에는 귀여운 고양이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 씀씀이도 느껴지지만 나는 뚱해있는 마음을 풀고 싶지 않다. 


"너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처럼 책 읽고 자기계발해. 이. 한. 심. 한. 인. 간. 아." 


이 말이 목까지 나오는 데 꾹꾹 삼켰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안다. 내 남편은 정말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특히나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그 누구도 타인을 바꿀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난 안다. 


이러한 마음이 계속 올라오는 이유는, 나는 남편의 덕을 보고 싶다, 우리 지금 부족하잖아 그렇게 느긋하게 쉴 시간이 어딨니?, 난 부족해, 같은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뭉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결국은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이 타인에게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결국은 '나는 너무 부족해'라는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하고, 그 마음을 내가 온전히 껴안아줄 수 없어서 자꾸만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잔뜩 심술이나서 책의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수도 하지 않아 입술이 허옇다. 잠옷에는 며칠 전 팩하다가 묻은 팩 찌꺼기가 하얗게 묻어있다. 이런 내 모습을 누가 좋아할까? 나라도 이런 내 모습이 싫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부엌으로 가면서 내게 말한다.


"I love you" (사랑해)


사실 이 말은 우리 부부가 공기같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라 특별할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되묻는다. 진정으로 궁금해서다. 


"Why do you love me?" (나를 왜 사랑해?) 


"Because you're perfect" (왜냐면 너는 완벽하니까!) 


이런 나의 모습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있나? 순간 생각한다. 입술이 허옇고, 더러운 잠옷을 입고 있고, 휴일에 느긋하게 쉬는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는 심술쟁이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나는 심술궂게 얘기한다.


"I'm not perfect" (나는 하나도 안 완벽해) 


그러자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You're perfect for me" (너는 나에게 완벽한 사람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터진다. 


남편이 놀라 다가온다. 그리고 말없이 껴안아준다. 여러 가지 감정이 복받친다. 


"What's wrong?" (무슨 일 있어?)라고 남편이 묻는다.


나는 "Nothing" (아무 일도 없어)라고 대답한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이 눈물은 무엇일까? 내가 나를 미워하는 마음, 그래서 남편을 미워하게 되는 마음, 그 미움이 무서워서 미움 자체를 미워하는 마음, 미워해도 된다고 충분히 넌 그럴 자격 있다고 부추기는 마음, 그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마음들이 다 괜찮다고 이해받았을 때 나오는 눈물? 


남편은 나를 안아주면서 "What's wrong?" (무슨 일 있어?)라고 다시 묻는다. 


나는 "Nothing" (아무 일도 없어)라고 또다시 대답한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Your mama says nothing but she is crying" (네 엄마가 아무 일도 없대~ 근데 울어!)라고 고양이에게 얘기한다. 


남편이 나를 보는 눈빛에 아무런 적대감이 없어서 무척 안심이 된다. 나는 아기처럼 울기 시작한다. 


"Can you hug me for 30 min without saying anything?" (아무 말 없이 30분 정도 나를 안아줄 수 있어?)라고 나는 물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은 더 이상 내게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옆에 있어준다. 뜨거운 눈물이 남편의 어깨에, 가슴팍에 계속해서 쏟아진다. 혹시 너무 축축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남편은 개의치 않고 코를 풀라며 휴지를 갖다 준다. 


정말 흐르는 대로 그렇게 보낸 것 같다. 앉아서, 나중에는 앉아있는 게 피곤해져서 누워서, 1시간을 그냥 말없이 울었다. 남편은 정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이유를 꺼내지 않았다) 


다 울고나니 몸이 축 처지지만 마음만은 무척이나 따뜻해졌다. 나중에는 혼자있어도, 그가 나를 안아주는 것처럼, 그 따스한 감각이 한동안 몸을 진하게 감쌌다. 






사랑은, 그저 그렇게 있어주는 것. 그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고 그저 그대로 있어주는 것. 그때 비로소 나를 힘들게 했던 못난 마음들이 결코 못난 마음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문제가 아니었음을 가슴 깊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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