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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22. 2020

이 글이 당신을 1년 후 출간 작가로 만들어줄 거예요.

자존감 바닥 쭈구리 소녀가 출간 작가가 된 썰


특별한 사람들만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늘 그 생각을 와장창 깨트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말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를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체육에 엄청나게 소질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격이 엄청 사교적인 것도 아니고, 뭐 어떤 한 분야에 딱히 소질이 있지도 않았어요. 


그와 반면, 제 친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되게 특출 난 재능을 보였어요. 


저는 이 기억이 있어요. 저희 엄마가 주말마다 동생을 대학교에 차로 태워다 주셨거든요. 동생이 초등학교 때 영재로 선발되어서 대학교에서 무료로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죠. 


당시 부모님은 평일에 바쁘셨고, 주말에는 피곤해하시면서도 동생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을 맡아서 하셨죠. 


주말 오후 제가 방에 있으면, 방 문 틈새로는 엄마가 친구에게 전화하는 목소리가 들렸고요. 


동생 뒷바라지하는 것이 피곤하다고 말씀하면서도 그 말에서 느껴지는 뿌듯함이 저한테까지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친구분이 “그럼 은아는 요즘 어때?”라고 물어보시면 “은아도 잘하지~”하셨죠. 그런데 엄친아 동생과는 달리 제 이야기는 금방 끝이 났죠. 당연했죠. 뭐 특별한 게 없으니까요. 


저는 성격이 정말 모났었어요. 예민의 극치에다가,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날이 서가지고 타인을 상처 입혔죠. 솔직히 저희 가족들이 제일 힘들었을 거예요. 특히 동생이요. 제 동생은 엄청 순했거든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고, 성격도 진짜 좋았어요. 제가 진짜 난리를 쳐도 그냥 받아줬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동생한테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항상 동생은 그런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런 제게도 한 가지 특별한 부분이 있었는데, 유독 마르고 작았어요. 


제가 3월생인데,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6학년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초등학교 2학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언제나 전교에서 제일 작은 아이였고요. 


위장은 약했고, 한약은 거의 입에 달고 살았지요. 1년에 2번씩은 꼭 먹었으니까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외모에 민감할 사춘기 시절을 그렇게 보냈으니 외모 콤플렉스도 심했고요. 저는 마른 제 몸이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어요.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뭘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고요.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았지요. 


그러다가 성인이 됐는데, 공황장애가 생긴 거예요. 


잘 살다가 갑자기 죽음의 공포를 맞닥뜨렸고 잘 타던 지하철도 못 타게 된거죠. ‘와 내 인생 진짜 왜 이러냐?’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내가 대체 전생에 무슨 죄가 있길래 이런 일이 생기냐?라는 불평도 진짜 많이 했죠. 


그럼에도 살아야겠으니까, 발버둥을 쳤어요. 공황장애 증상에 술을 마시는 건 금물이지만 청춘을 불안함에 살다 보니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날은 나를 놔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클럽을 갔습니다.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저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죠. 종종 만나서 같이 운동을 했어요. 저한테는 ‘운동’이라는 것이 거의 처음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 몸에 대해 엄청난 콤플렉스가 있었거든요. 자존감도 낮았고요. 


제 남편이 나중에 얘기해준 건데, 데이트 초기에 만나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겼던 적이 있거든요? 제가 거식증인 줄 알고, 잠깐 피했었대요. 그 얘기 들었을 때 많이 속상했죠. 와. 자존감이 더 떨어지고요. 


그럼에도 그와 만나서 운동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더 멋진 여자가 된 느낌이랄까요? 점차 운동이 주는 행복감을 알게 될 때쯤 여러 가지를 병행하며 자연스레 공황발작이 나타나는 빈도도 급격히 줄었어요.


몸이 좋아지니까 마음도 같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알게 됐어요. 몸과 마음은 절대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걸요. ‘몸은 내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말이 진정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운동에 빠져들고, 건강에 엄청나게 관심이 생겼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서 운동은 정말 필수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시기, 저는 이직의 왕이었습니다. 다른 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직을 7번이나 했는데요.


https://brunch.co.kr/@lilybuuns/60



이 당시에는 이제 더 이상 광고/홍보 쪽은 못해먹겠다! 하는 마음으로 영어를 가르치던 중이었어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인 거죠. 당연히 불안했고요. 


그럼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공황장애의 역할이 컸어요. 이전까지는 막연한 성공을 위해서 살았다면, 이제는 내 하루하루의 행복의 중요성이 더 컸거든요. 내 하루가 행복하다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믿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운동’과 ‘영양학’에 빠져서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그랬지요. 인생이 되게 많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무언가 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지더라고요.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사실 제 관심은 100% 그쪽에 있지 않았거든요. 


마른 여자가 살을 찌우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되는 이야기 이런 것들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러기에는 이 이야기가 대중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이 되더라고요. 왜, 많은 분들이 다 살 빼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내 이야기가 과연 먹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쉽게 도전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대학 친구와 연락이 닿았어요. 제가 문예창작/광고홍보를 복수 전공했는데, 문예창작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어요. 


이 친구를 대학 졸업 후 처음 만났는데, 어이구. 완전 다른 모습이 되어있는 거예요. 40 킬로그램이 빠져있었지요. 


그리고 그 친구도 저를 보고 엄청 놀라더라고요. 저도 대학시절과는 달리 굉장히 자신감에 차있었거든요. 


그렇게 저희는 한참을 못했던 이야기 속에 빠졌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그때 빼빼 말랐던 저, 그리고 뚱뚱했던 그녀는 완전히 다른 몸을 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더라고요. 


몸은 달랐지만 서로가 안고 있던 것은 똑같았죠. 올바르지 않은 식습관, 낮은 자존감,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  


그런데 당시에는 서로에게 그러한 얘기를 하지 못했어요. 되게 자주 붙어 다녔음에도요. 왜냐면 그냥 각자가 재단했던 거예요. “아 쟤는 내 세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 왜냐면 쟤는 저러니까~” 이렇게요. 


그날의 만남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러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이야기가 합쳐지면, 정말 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다!”


물론 그 생각이 바로 실현된 건 아니에요. 친구에게 같이 글을 쓰자고 제안했을 때, 당시 친구는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고요. 친구가 마음의 문을 여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어요. 


그리고 기획안을 짜고, 하나하나 글을 쓰는데도 엄청 오래 걸렸어요. 글을 쓰면 내 과거가 엄청 치유가 되거든요. 글 쓰시는 분들은 다 아시죠? 


그냥 거의 꺼이꺼이 울면서 글을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처음에는 책을 내겠다는 생각, 감히… 전혀 하지 못했고요. 그냥 블로그 하나 개설해서 거기에다가 올렸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나하나 올리다 보니까, 어우- 이 이야기가 좀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출판사에 연락했죠. 진짜 기대 하나도 안 하고요. 던져본 거예요. 


여러 군데 투고한 것도 아니고, 그냥 대학교 때 알던 선배님께 몇 년 만에 연락을 드렸어요. 그분이 읽어보시더니, 어머 너무 괜찮다면서 책 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책이 나오기까지도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년 정도 걸렸어요. 그 2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마음고생도 진짜 많이 했죠. 


그런데 결국 모든 것들은 최선의 시간에 딱 맞춰서 이뤄지더라고요. 아마 더 일찍 나왔다면 힘들었을 거 같아요. 저도, 같이 글을 썼던 친구도, 당시에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거든요.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른 채 그냥 책만 나오게 되면 그게 얼마나 스스로에게 창피한 일인가요. 


그렇게 2019년, 제가 29살 때 저의 첫 책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브런치에도 올린 [3892 그녀들]이라는 책이에요.



첫 책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딱지도 받아보고 교보문고에서 강연도 하고. 정말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지만 꾸준하게 잘 읽히고 있어요. 정말 감사하죠. 도서관에서 저희 책을 만나면 애써 키운 자식을 사회에 보낸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가장 감사한 일은, 제 인생에서 또 하나의 멋진 스토리가 생겼다는 거죠. 이렇게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릴 수도 있고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제가 배우게 된 것들을 정리해볼게요. 





1. 내가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내 내면이 ‘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여주세요. 제가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내면의 말을 무시했다면, 책도 나오지 못했겠죠. 


2.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로 타인에게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내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라는 생각 많이 하시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그러한 삶에서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나옵니다. 매일매일 우리 다양한 경험 하고 있잖아요. 나의 경험은 정말 엄청난 가치가 있더라고요. 내가 한 경험들에 숨을 부여해주세요. 그 경험의 첫 생명은 내가 먼저 부여할 수 있어요. 


3. 내 이야기가 대중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면 생각을 조금 틀어보세요.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진리는 있더라고요. 우리가 각자가 하고 있는 모습은 다 다르죠. 그렇기에 각자의 해답도 다 다를 거고요.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개개인에게 정답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스스로의 답을 찾아내게 하는 것이지요. 


4. 행동을 합니다. 머리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이미 지쳐서 행동으로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행동해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의욕이 생깁니다. 


5. 흔들리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너무 잘하고 싶어서, 흔들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데 흔들리지 않으면 중심도 찾지 못하죠. 그냥 그것들을 충분히 허용하고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것. 그러면서 나만의 인생 영화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이 영화라면, 지금 이 하나하나의 경험들도 그 영화 속의 스토리가 될 수 있지요. 오늘도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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