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날은
유난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분명 해야 할 일은 있었고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몸이 아니라
생각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을 자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잠깐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불 속은
쉬는 공간이 아니라
생각이 더 선명해지는 공간이 된다.
아까 봤던 장면들이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는
이미 도달해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시작점부터 달랐고
누군가는
내가 아직 가지 못한 곳에 있었다.
그 장면들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나는
내 속도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타인의 속도로
나를 재기 시작한다.
그 속도는 빠르고
선명하고
결과가 보인다.
반면
내 시간은
느리고
흐릿하고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비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속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기준을 바꿔버린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그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행동은 멈춘다.
그래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비교를 멈추기 위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비교는 더 또렷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와
어딘가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을 것 같은
누군가를 동시에 떠올리게 되니까.
그래서 결국
알게 된다.
문제는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속도를
잘못 가져온 것이었다는 걸.
나는
나의 시간을 살고 있었는데
측정은
타인의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그건
처음부터 맞출 수 없는 게임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도망이 아니라
리셋으로.
타인의 속도를
잠시 끄고
내 호흡으로 돌아오기 위한 시간.
다시 나와
책상에 앉았을 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지만
하나만은 분명해진다.
나는
다시 내 속도로 돌아왔다는 것.
느릴 수는 있어도
멈춘 건 아니라는 것.
오늘도 나는
조금 느리게
하지만 계속 가고 있다.
당신은 지금
이불 속에 있는가,
아니면
다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가.
#아직이불중 #이불밖은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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