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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an 25. 2024

길 위의 약속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곧 이 글을 읽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문장이 당신을 향해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어느 날 당신은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이 길 위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길 위에서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무한하게 넓은 그 길 위에서는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신이 남긴 황금빛 자취에 의해 보호 받습니다. 그리하여 그 기억은 평생을 지켜줄 평화로운 안식처가 됩니다. 맑게 빛나는 눈은 아름다운 신기루를 만들어내고, 일생 동안 그 환영을 쫓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곧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나만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훌쩍 자란 당신은 그 길 위에서 방향을 잃어 헤맬 것입니다. 행복과 고통, 이 두 단어가 서로 반대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걷는 길은 신과 악마, 기쁨과 슬픔, 꿈과 좌절로 어지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곧 알아차립니다. 문 뒤에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생의 감각은 영혼이 만들어낸 세계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떤 세계의 문을 열고 걸어갈 지는 당신의 선택임을. 그래서 하나하나 시험해보고 쌓아 나갑니다. 어떤 것이 당신을 매료시키는지, 어떤 것이 괴롭게 만드는지. 새로운 발견에 마음을 열고, 결과에 따라 그림의 윤곽을 조정해 가면서요.


그리고 카드를 고르듯이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잘못된 선택을 할 때마다 가능성도 하나씩 줄어드네요. 한없이 뻗어 있던 길이 차츰차츰 좁아짐에 슬퍼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불안을 느낄 때마다 길은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해가 지는 걸 두려워하며 그대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해가 뜨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또 길을 나서지만 걸어도 걸어도 그 길을 나아가지 못합니다. 발이 온갖 잡념에 묶여 있거든요. 그러자 뒤에서 걷는 사람들이 온통 당신을 앞질러 갑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생각합니다. 마침내 얼어붙은 길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제서야 불안과 괴로움을 끌어안은 채로 걸어가는 법을 터득합니다. 그리고 한겨울의 풍경에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거울처럼 모든 걸 순수하게 반사시키는 눈과 얼음의 정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이제는 달라진 길 위에 서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과 함께 길을 걷게 됩니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의 손을 잡게 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잃어버렸던 유년의 기억, 죽지 않고 흐릿하게 살아있었던 당신의 모습과 재회합니다. 그 때 바라보는 풍경은 온통 생명과 환희로 넘쳐납니다. 그 길 위에서 색색의 꽃이 만발합니다. 모든 순간이 찬란한 봄이자, 하늘 위 영원에 가 닿는 천상의 사다리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눈동자 속에 그의 눈이 반사되면 고정되었던 시선 역시 해방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 멀리 다른 곳, 다른 세계의 아른거리는 신비로운 그림자까지 볼 수 있게 되겠죠. 그는 마음 깊숙이 숨겨 놓았던 아픔에까지 투명한 빛을 비추고 함께 울어줄 것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서는 애써 밝은 척할 필요 없이 온전한 당신으로 설 수 있겠죠. 그러다 갈림길에서 그의 손을 놓는 순간, 영혼까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길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의 환영을 마주할 때마다 저 멀리 도망치게 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와 닮은 순간들을 무수히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작별은 이미 이루어졌어도 끊임없이 지속되는 일이기에. 당신이 듣는 음악 속에서, 당신을 감싸는 빛 속에서, 살결에 닿는 감촉 속에서, 그와 닮은 눈동자 속에서 계속 그를 마주합니다. 온 세상에 드리워지는 흔적 속에서 달아나려고 해도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체념합니다. 그 대신 마음껏 아파하며 그것들을 삼켜버립니다. 그러면 당신의 눈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는 법을 알게 됩니다. 곧 추억은 흩어져 희석됩니다. 그래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던 풍경 만큼은 기억 속에 남깁니다. 그리고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정신을 차려보면 또 다른 사람과 함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먼 훗날, 그 길 위에서 당신의 눈을 쏙 빼 닮은 작고 연약한 생명체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꾸밈 없는 순수를 통해서 어린 시절의 낙원이 선명한 색으로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그 아이의 세상은 온통 당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함께 하는 회전목마 위에서, 관람차 위에서 생각합니다. 이 아이가 반짝이는 한 여름 밤의 꿈을 영영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훗날 성숙한 여인이 되었을 때 돌이켜볼 어린 날의 꿈을, 푸르른 하늘을 닮아 쏟아지는 그 웃음을. 그러자 조금은 무겁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짊어질 십자가의 무게는 대신 가져가 버리고 싶다고. 그렇게 어깨가 조금 무거워진 당신은 준비합니다. 아이의 빛이 타오르는 걸 지켜본 뒤 길 위에서 물러나는 순간을.


지금까지 당신은 수많은 모래 폭풍을 만나왔습니다. 그 길 위에는 가족, 경쟁, 실패, 질병, 고독이란 이름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죠. 순탄하지 않은 길 위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는 땐 다른 사람으로 인한 구원을 간절히 바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깨닫죠, 그게 인생의 일부라는 걸요. 그리고 다짐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태풍의 눈 한복판으로 들어가 나 자신을 마주하겠다고요. 산다는 건 참 오묘한 것 같습니다. 무언가가 깨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기도 하고, 괴로웠던 기억은 시간이 흘러 무감각하게 색이 바래기도 하니까요.


이제 땅거미가 지자 당신은 생각합니다. 일생 동안 길은 어둡게 사라져만 왔다고. 나는 답합니다. 길이 좁아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새로운 길 위를 걷고 있는 거라고. 저 멀리서 바라보면 평행으로 뻗어 나간 수많은 길이 당신만의 우주를 만들어 냈다고. 그 모든 한 걸음 한 걸음은 단순히 스쳐 지나간 게 아니라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라고. 길을 나서지 않았으면 만나지도 못했을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떠올려 봅니다. 점처럼 퍼져 있는 이야기들을 선으로 연결해보면 그 모든 것이 지금 당신의 눈, 표정, 영혼, 심장을 이루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을 곁에서 함께 걷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후, 당신은 다시 누군가를 위한 문장을 쓰게 됩니다. 그 길 위에서 함께 걷겠노라고. 홀로 외롭게 아파하며 울고 있는, 행복해지는 법을 잊어버린 그 누군가를 위해. 생의 동일한 과정을 살아낼 그 수많은 누군가들에게. 슬픔이 다가와도, 우리가 함께라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우니까요.*


Maybe the world is a beautiful place

Even when sorrows appear


As long as I fix my eyes on your face

I know that love is near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워 슬픔이 다가와도

그대와 내가 함께라면 웃을 수 있어*




*가브리엘 샤넬의 말, Sarah Kang의 <Maybe the World is a Beautiful Place>노래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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