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는 왜 우리가 서울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했을까
‘도시의 표정은 그 도시의 여자와 닮았다.
우리의 도시에는 발길을 사로잡는 순간들이 있다.
그곳에는 고민을 멈추지 않고 치열하게 움직인 당신의 열정이 스며 있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찾다 보면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이 도시의 빛나는 순간을 만드는 건 언제나 당신이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헤라의 브랜드 필름 ‘서울리스타’ 편이다. 한강, 여의도 빌딩숲, DDP, 남산타워, 숭례문, 독립문 등 서울의 풍경들이 좌우대칭의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펼쳐지고, 그 아름다움이 브랜드로 전이된다. 개인적으로 페르소나를 활용하는 광고 기법을 좋아하는 편인데, 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했던 사례는 없었던 것 같아 인상 깊게 봤었다. 이 필름의 광고 모델 전지현은 헤라의 뮤즈이자, 서울 사람들로 대표되는 유저의 이미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뒤이어 블랙핑크의 제니를 모델로 발탁해, ‘한계가 없는 도시, 서울’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결합시켜 이야기하는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대세감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서울이란 도시를 사랑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헤라는 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닮아 있다고 말 한 걸까. 내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나는 마음이 조금 불안정할 때마다 거리로 나가 머물다 오는 습관이 있다. 말하자면, 세상이 나를 흔들어 놓을 때, 나의 내면으로부터 거부당하는 듯할 때, 그래서 투명하게 나 자신일 수 없을 때 말이다.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시선을 밖의 거리로 돌린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는 언제나 내면의 평화를 되찾아 오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서울의 거리와 카페에는 삶이 흘러 넘치며, 누구나 원한다면 한나절, 반나절 동안 그들 곁에서 익명의 관찰자가 될 수 있다. 열심히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 아니면 평온한 얼굴로 휴식하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들은 내게 있어 삶 그 자체였다. 그 일련의 몸짓들이 내게 에너지를 주리란 것을, 혼란스러운 감정을 누그러뜨려 주리란 것을 믿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얻게 되는 위안이었다. 이게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을 자처하며 내가 거리로 나가는 이유이다.
미국의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은 저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를 통해 도시의 모든 거리에서는 익명의 사람들이 벌이는 몸짓들이 공연처럼 펼쳐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은 그들을 통해 상상력과 이해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들이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울리고, 그 얼굴과 몸짓이 눈앞에 떠올라 나는 혼자 웃는다. 나는 여기에 대화를, 저기에 해석을, 또 그다음 어딘가에는 논평을 덧붙이며 그 장면들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는 내가 시간을 뒤로 돌리며 나와 마주치기 전의 그들을 상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는 흠칫 놀라, 내가 하루의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막 나를 지나간 시간에 형태와 질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하루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이 이제 나와 함께 방 안에 있다. 그들은 친구가, 거대한 친구들의 집단이 되었다. 그들은 내게 서사적인 충동을 되돌려준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게 해준다. 내 삶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도록 나를 일깨워준다.'
책 속 문장처럼, 거리의 사람들이 삶의 궤도를 확장시켜주는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면, 홍대입구 역에서 아이돌 생일 광고 앞에 선 채로 해맑은 웃음을 띠며 인증샷을 찍는 팬들. 버스킹이나 디제잉을 하며 열정적인 청춘을 살아내는 사람들. 주말에는 일을 쉬는 나를, 일터에서 마주하는 직종의 분들. 그들은 거리의 관객인 내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지난 달 방문했던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 분은 개인 샵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며, 손님이 디자인해줬다는 로고를 보여줬다. 어린 나이부터 미용 일을 배웠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개인 샵을 차리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그녀의 치열한 삶이 부러워졌다. 자주 가는 식당의 사장님은 몇 달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슬픔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슬픔을 달래 주러 놀러 오는 딸과 손녀딸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며 말했다. ‘부모의 빈 자리는 아이들이 채우는 것 같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그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슬하의 아이들에게 다시 전달하며 쓸쓸함을 달래니, 그렇게 보면 결국 사랑은 세상의 다른 곳으로 돌아가 그 크기 그대로 존재하겠구나. 타인의 경험과 나의 상상이 교차하는 순간 탄생하는 이러한 생각들이 뻗어 나가, 결국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줄 것만 같다. 이처럼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들 그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한편, 아무도 없이 정적에 둘러싸인 밤 거리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마치 다른 세계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 곳에서는 일상적인 대화도 특별하고 마법 같은 장면으로 연출되곤 했다. 누군가와 나란히 걸으며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들처럼 한없이 뻗어 나가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하면 공기 중에는 독특한 활기가 가득 찬다. 그러면 마치 비밀의 공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는 젊음만이 마주할 수 있는 밤의 마법이자, 생동감의 감각이다. 그럴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면 까만 밤하늘을 스크래치로 벗겨낸 것처럼 하얗게 흩뿌려진 달과 별, 길에 희미하면서도 몽환적인 빛을 던지는 가로등이 있다. 그렇게 서울의 야경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즉흥적인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밤의 거리가 불러오는 기억들은 힘이 세다. 스쳐 지나간 사람들, 특정한 장면 속 상대방의 표정, 움직임, 그 장면을 채웠던 대화들. 그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게 그 사람인지, 그 장면인지, 아니면 그 시절인지 모를 정도로 이상한 노스탤지어에 휩싸이게 된다. 멀어지는 이들을 쉽게 보내지 못하고 붙잡으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된다고 하던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도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다시 그려낼 수 있는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건 감사하면서도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도시는 우리가 지켜보고, 느끼고, 위로 받고 싶어하는 바로 그 시선만큼의 가능성을 되돌려준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걷는 이 거리들을 보며 떠올리고 기대어 살 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 도시의 풍경 역시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그래서 헤라는 이 도시의 빛나는 순간을 만드는 건 언제나 우리들이었다고 말했나 보다.
*비비언 고닉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에서 일부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인용한 광고 : 헤라, HERA loves SEOULISTA 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