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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eter 정민 Mar 25. 2024

그대, 나의 동료가 되어라!

카카오톡 오픈채팅 광고에서 표현한 ‘트라이브십’을 생각하며

‘우리는 매일 대화를 하지. 그런데 말이야.

늘 대화하던 방. 그 바로 옆, 0.5cm만 이동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려.’


한 남성이 지인들과의 채팅방을 보던 중, 시선을 돌려 오픈채팅 탭을 클릭한다. ‘같이 게임하실 분?!’ 장면이 전환되어 그는 높은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진다. 배틀그라운드 게임 화면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곁에서 함께 낙하하고 있던 사람이 건투를 빌어준다. 지상에 착륙한 남성은 ‘일단 풀피 채우고 저만 따라오세요’라 외치는 동료를 따라 즐겁게 뛰어간다. 장면이 바뀌어 이번에는 ‘유기 동물 임시보호방’이 나타난다. 이를 클릭하자 잔디밭에서 동물을 보살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강아지를 입양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쓰던 쿠션과 그릇까지 챙겨주겠다고 하는 따뜻한 대화가 채팅방을 채운다. 이번에는 ‘마케터’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본다. 곧 ‘마케팅 이직 정보 공유방’이 나타난다. 이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어떤 경력이 입사에 도움이 되는지 등 실질적인 정보들이 오고 간다. 카카오톡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오픈채팅방이 다양하게 있음을 알리며 광고는 막을 내린다.


‘늘 하던 대화, 바로 옆에서. 세상의 모든 관심.

카카오톡 오픈채팅.’


이 광고를 보고,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제시한 ‘트라이브십(Tribeship)’ 개념이 떠올랐다. 이는 자신의 취향, 관심사와 뾰족하게 맞닿은 사람, 혹은 커뮤니티를 찾아 연결되는 관계이자, 혈연, 학연, 지연을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체를 뜻한다. 트라이브십의 시대에는 스스로의 취향을 얼마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지, 그 취향을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즐기는지가 선망 받는 사람의 기준이 되며, 촘촘하고 좁은 관심사를 기반으로 형성된 커뮤니티가 각광 받는다.* 이러한 관계를 ‘부족’에 비유한 건, 그만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 것 같다.


내게도 부족 같이 소중한,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가 하나 있다. 독서모임 겸 에세이 클럽. 이 부족 사람들,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서로가 쓴 에세이를 읽은 후, 감상을 손바닥 길이만큼의 긴 댓글로 전해 생각을 겹겹이 쌓아주는 사람들. 각자가 꺼낸 내면 세계를 바로 그 정확한 지점에서 찰떡 같이 알아차리고, 비슷한 경험을 꺼내 다른 문장으로도 번역해주는 사람들. 글의 구조와 어조, 단어들을 함께 살펴주며 더 탄탄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 멤버 한 명 한 명 빠질 때마다 아쉬움에 울고,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며 넥스트 스텝을 응원해주는 사람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할 지도 모르는, 이 사람들을 처음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엔 그냥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막연하게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읽는 속도가 빠른 사람으로서, 비슷한 독서량을 가진 사람을 현생에서 만나기는 굉장히 힘든데, 이 16명의 멤버들 중엔 한 작가에 대해서, 한 장면에 대해서, 그리고 한 인물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아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이 클럽의 채팅방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꺼내기도 힘들고, 핑퐁도 불가능한, 그런 범상치 않은 대화들이 오고 가는데,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여러분, 비문학 추천 좀 해주세요~!! 인문학, 사회학, 뇌과학 분야 특히 선호합니다’

‘요즘 지적 호기심 뿜뿜 하시면 행동경제학 책 <생각에 관한 생각> 추천해 드립니다. 근데 700쪽이 넘는 슈퍼 벽돌책이에요..‘

‘오, 저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추천해요. 같은 벽돌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는 책이에요.’

‘저는 왜 요즘 이런 게 재미있죠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ㅎㅎㅎ 마약의 역사, 영화 속 마약 등을 알려주는 발칙한 교양서인데, 엄청 흥미로운 거 있죠’

‘저 지금 살고 있는 집 보러 왔을 때, 살고 있던 사람 책상에 <생각에 관한 생각>이 있어서 아 이 집 살아도 되겠다~ 생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혹시 여행에세이도 추천해주실 책 있을까요?!’

(역시 전투적으로 올라오는 답변들)

‘#쉬운 천국’

‘#나의 뉴욕 수업’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그 좋았던 시간에’

‘여기 무슨 챗GPT 같아요’

‘챗GPT ㄴㄴ 책GPT’


말하자면, 어떤 카테고리, 어떤 내용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인공지능이 대답해주는 것보다 더 좋은 리스트를, 빛의 속도로 건넬 수 있는 사람들. 하지만 그 뿐이었다면 과연 이 정도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이들과 함께 글을 쓰며 나를 비워내면서 채우고, 세상과 인생을 배웠다. 멤버들은 각자의 기쁨과 슬픔, 열정과 좌절, 그리움과 소망이 담긴 에세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솔직하게 드러냈다. 정도와 모습은 달라도,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꿈과 고민들을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글들은 결국 내 세상이자 인생이기도 했다. 매달 15편 이상의 글을 읽으며 이들을 향했던 시선은 결국 나를 향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엉켜 있는 실타래처럼 내 언어로는 풀어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발견해, 결국에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는 나의 성장을 지켜봐 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내 성공과 실패의 증인이 되어줄 사람들. 내가 드러낸 생각의 조각을 통해 나라는 사람, 그리고 내 삶의 역사까지 이해해 줄 사람들. 원래부터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내밀한 감정까지 꺼내 놓는 것은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곧, 모든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이들은 나를 전적으로 응원해줄 거라는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겸손하게 타인의 내면에 다가가려고 하는 태도의 가치는 매우 컸다. 멤버들은 마치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수집이라도 하는 듯이 서로의 꿈과 감정, 살아온 궤적을 알고 싶어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의 종류 중에서 이러한 유대감도 분명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할 거라 믿게 되었다. 결국 내가 이 커뮤니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세상을, 더 사랑함으로써 인생을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클럽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이야기의 힘은 참 강하다는 점이었다. 인류는 예전부터 서사를 통해 살아가야 할 방향의 큰 줄기를 얻고, 이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래서 만약 내가 모르는 세상이, 감정이, 생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 이야기에 뛰어들어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중에 나온 유명인의 책이 아니라, 글쓰기 동료로 함께 하는 이들의 글을 통해 세상을 접하는 건 더 의미가 컸다. 이는 우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등한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각자의 기나긴 여정은 윤곽이 뚜렷한 서사로 묶여 한 권의 책처럼 두꺼워졌고, 이를 전적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몇 번이나 곱씹을 문장들을 만날 때면, 따로 메모해두거나 이미지로 캡처해 저장해 둠으로써 그 이야기들을 기억하려 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 내가 그 삶을 나눠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러자, 한 인생을 살면서 다른 모습으로도 여러 번 살 수 있게 되었고, 인생이 던지는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기는 듯 했다. 어느 순간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인생은 다채로워질 수 있는데, 이 시기에 만난 이야기들은 내가 정신적으로, 예술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부지런히 서로를 알아감으로써, 더 큰 유대감을 쌓아가는 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라는 책에서 접한 문장이 그 의미를 말해주는 듯하다.

‘사랑이란 곧 지성이다’

앞으로도 계속 감성과 지성의 교류로 이들과의 우정을 키워 나가길 소망한다. 계속 함께 읽고, 쓰고, 웃고, 울자. 서로의 팬이 되어주자. 우리 부족 영원하리.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Z세대 트렌드 2024>, 정현주의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에서 일부 문장을 인용하였습니다.

*인용한 광고 : 카카오톡, ‘세상의 모든 관심, 오픈채팅’ 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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