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들 30대 중반 즈음 되면 회사 안 다니고 있을 줄 알았잖아. 벌써 그 정도의 나이가 된 걸 보면 가끔 기분이 좀 이상해질 때도 있어.
2015년 6월 1일, 인턴으로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한 우리 6명. 6개월이나 늦게 들어온 나머지 10명과도 입사 동기로 묶였지만 내가 진짜 친구로 생각하는 건 너네 5명 뿐이야. 경쟁 없이 전원 다 정규직 전환이 될 걸 미리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친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회사에 다니다 보면 서러운 일이 참 많은데 그 와중에 위로해준다고 ‘부둥부둥이들’이라고. 나 11층에서 유명했잖아. 잘 알려주지도 않고 층에 다 들리게 소리 지르고 깨는 사람이 내 사수여서. 사람들은 누가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지 고개를 돌려 놀라다가, 불쌍해하다가, 나는 자연스럽게 ‘착하고 맷집이 좋은’ 사원이 되어있더라. 맷집이 좋은 게 아니라 어쩔 줄 모르고 있었을 뿐인데. 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는 벽을 느꼈던 경험은 처음이었고, 성인이기 때문에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 패배감을 인정해야만 했어. 그렇게 화장실에 숨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
아이러니하게 바로 그의 ‘덕분에’ 나는 일을 잘 하게 되었어. 원하지 않았던 스포트라이트도 받았고. 강제로, 내 역할이 아닌 몫까지. 그런데 그 이후로 나도 조금은 잘못 살았던 것 같아. 윗사람이 무능하면 무시했고, 팀장 평가에 ‘좀 더 효율적으로 일했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쓴 적도 있었으니까. 비슷한 경험을 거친 혹자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있었겠지. 근데 바로 그 해 연말, 그 팀장님이 좌천되는 걸 보며 느꼈던 내 심정까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후련하기보다는 정말 많이 죄송했어. 내 평가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죄책감에 시달렸어. 사실 생각해보면 그 분은 일은 잘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한테 권한을 많이 주시고 믿어주신 점도 있었거든. 그 일 이후로 쭈뼛거리고 있던 나한테 가끔 다가와서는 요즘 잘 지내냐고, 야근은 많이 안 하냐고 먼저 말을 건네주셨어. 그 때 깨달은 것 같아. 회사가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내가 어렸을 때 일의 최전선에서 나를 보호해줬던 선배들에 대해 가끔 생각해. 정신차려 보니까 그 때 그 선배들 나이가 되었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바라보고 읽어낼 수 있는 시선이 이제는 내게도 생겼어. 조직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데 아들 사진을 걸어놓고 버티는 50대 팀원 분. 사내 정치에서 밀려 좋은 프로젝트를 하나도 받지 못하는 옆 팀 팀장님. 조직에서 저마다의 괴로움을 짊어진 그 장면들은 마음이 쓰여서 자꾸만 나를 멈추게 해.
너네를 떠나 첫 이직을 했을 때는 마음이 좋지 않았어. 우리 일 특성 상 좋은 브랜드를 만나는 게 꽤나 중요한 문제였잖아. 소리는 대부업을 맡다가 질려버렸고, 나는 클라이언트가 자꾸 일을 무산시켜서 치를 떨었지. 그 때만큼 살면서 이직 준비를 열심히 할 일이 또 있을까? 여름 휴가 중 비행기에서 잠도 안 자고 포트폴리오를 만들 정도였으니. 우리 일은 도중에 엎어지는 경우가 참 많았잖아. 말도 안 되는 이슈로 갑자기. 예전 팀장님은 그런 걸 참는 게 우리가 월급을 받는 이유라고 했지만, 난 내 결과물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게 괴로웠어. 마음 속에는 시작과 과정이 선명하게 각인되었지만 어쨌든 매듭짓지 못한 것. 외부 요인으로 인해 생명을 불어넣지 못한 채로 사장되어버린 수많은 것들.** 어쩌면 세상에는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던 것 같아. 그런 일들이 항상 더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어쩌면 이루지 못한 것들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어.
9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참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 원우오빠 일이 제일 기억에 남아. 지방에 내려가서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3분인가 늦어서 아예 접수 기회를 날려버린 적 있었잖아. 회사의 수 백억이 걸린 입찰이었고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몇 주 간 달라붙어서 준비한 일인데, 내가 날려버렸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해. 나였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괴로웠을 것 같아. 오빠가 울면서 전화했을 때 팀장님과 사수 분은 책임을 묻지 않고 서울에 올라온 오빠를 따뜻하게 맞아주며 술을 사줬다고 했지.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가끔 농담 식으로 그 얘기를 꺼내는 오빠를 보며 많은 걸 느껴. 예지언니도 마찬가지였어. 언니 가족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좀 놀랐거든. 세상에는 아픔을 권력처럼 휘두르는 사람도 있고, 타인을 안아주기 위한 토대로 삼는 사람도 있잖아. 언니는 후자였고. 인생의 모든 모습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믿지는 않지만, 망가진 형태일 지라도 수용하고 내보일 수 있는 태도는 곧 자존감인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그런 모습들을 자꾸 닮고 싶은 거고.
아 근데 그거 알아? 나 사실 너네 중 한 명이 속한 팀의 누군가를 짝사랑했었다? 차마 말은 못했지만 1년 좀 넘게 좋아했어. 잘 안되면 같은 회사에서 불편하게 봐야할텐데 적극적으로 뭘 하기보다는 그냥 멀리서 바라만 봤어. 다른 사람은 없었냐고? 아무도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그 때는 그 정도로 누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면 앞뒤 안 가리고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사람이 변하더라. 이제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빠르게 포기할 줄 알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 하루 사이에 남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별로 연연해하지 않는 그런 내 모습이 좋기도, 싫기도 해. 내가 너네 소개팅도 참 많이 시켜줬지? 거짓말 아니고 1명당 3명은 시켜준 것 같다. 아 물론 신영이 빼고. 신영이는 대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사랑을 굳건하게 지키고 결혼에 골인했으니까. 나 그 결혼식 가서 펑펑 울었잖아. 10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텐데 사랑을 지켜내서 대견하다는 사회자의 말을 들으면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성장과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너의 곁에는 무려 10년 넘게 그래준 사람이 있었구나.
사실 진지한 이야기만 했지만 바보 같은 추억들도 그만큼이나 많았다. 소리랑 나랑 포켓몬 엄청 잡았던 거 기억나? 나 게임 한 번 빠지면 식음 전폐하고 잠도 안 자고 하잖아. 같이 외근 나가는데 너한테 운전 맡기고 옆에서 계속 몬스터볼 던져서 미안했어. 우리 회사 건물이 딱 체육관이었잖아. GPS기반으로 그 부근에서 레벨이 제일 높은 사람이 체육관 관장이 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소리랑 현석 대리님이 날마다 번갈아서 관장으로 올라왔던 게 너무 웃겼던 거 있지. 현석 대리님은 아이디를 실명으로 했는데, 너는 닉네임으로 한 정체불명의 유저였다 보니까 대리님이 이거 대체 누구냐고 역정을 냈었잖아. 콜드플레이 콘서트 끝나고 흥을 주체하지 못해서 종현오빠랑 예지언니랑 같이 클럽 갔던 것도 기억나. 일요일 밤이었는데도 새벽 네 시까지 놀고 그 다음날 애처롭게 졸린 눈으로 만나서 커피마셨잖아. 6명이 함께 전주 여행 가서 온돌방에 지그재그로 누워 응답하라 1988 몰아봤던 기억도 선명해. 밖에 나가지도 않고 따뜻하게 지지는 거 좋아한다고 서로 ‘지짐충’이라 놀리다가 한 명씩 기절해서 잠들고. 그래도 6명이 나란히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은 하나 남겼다. 그 사진 속 우리, 왜 이렇게 어리고 볼이 빵빵하니?
있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계속해서 변하는 게, 그리고 때로는 변해야만 하는 게 곧 사람이라 생각해. 그리고 그런 변화들을 이끌어내는 건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조각들, 그리고 그 퍼즐을 맞춰서 삶을 다시 바라보는 성찰이야. 예전과는 달리 열정과 속상함 모두에 많이 무뎌졌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고 가끔 힘에 부칠 때는 조금 내려놓기도 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조금 더 유연해졌어. 날카로운 말에 아직도 상처는 받지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풀기도 해. 9년 전보다 좋은 사람이 된 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어. 이제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분리할 줄 알아. 내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다른 동료들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해졌어. 유능하다는 말도 좋지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을 더 듣고 싶기도 해. 좋은 변화라고? 글쎄, ‘좋은 변화’가 뭘까? 내가 살아가기 편하게 되는 것, 아니면 타인에게 더 우호적인 사람이 되는 것, 둘 중 뭐가 더 좋은 변화일까? 너네 생각은 어때? 어쨌든 나는 복잡하고 섬세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너희를 좋아해. 냉철한데 차갑지는 않은 그 언어의 온도도. 그 말들은 모든 게 일직선으로만 통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항상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줬으니까. 그 말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사랑할지 가르쳐줬고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줬으니까. 내가 변한 것만큼이나 너희도 참 많이 변했어. 그래도 가장 지키고 싶었던 마음들은 아직 지켜내고 있어? 인생은 결국 평생 내면 세계를 넓히고 다듬어가는 여행인 거잖아. 뭐가 됐든 지켜봐 주자. 너희에게 있어 분명 나 또한 그런 존재일 테니까.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들은 가명입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