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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l 16. 2024

희미해진 그린 라이트를 다시 밝히며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산호빛과 능금빛 초록색, 보랏빛과 옅은 오렌지색의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무늬와 바둑판무늬 셔츠들에는 인디언 블루 색으로 개츠비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데이지가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훌쩍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지금까지 <위대한 개츠비>를 총 3번 읽었는데, 위의 장면은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처음엔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셔츠들일까 시각적으로 상상해 보았고, 2번째는 대체 울긴 왜 우는 거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3번째로 읽었을 때는 개츠비와 데이지 모두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중위였던 개츠비는 전쟁에서 돌아와 연인이었던 데이지를 다시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부잣집 자제인 톰 뷰캐넌과 결혼한 후였다. 그는 데이지와 헤어진 이유가 자신이 가난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 밀주를 판매하거나 훔친 증권을 어둠의 경로를 통해 판매하는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그는 마침내 데이지의 집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저택을 구입한다. 여름 내내 꿈처럼 화려한 파티를 열었고, 그 축제 같은 장면들은 데이지의 이목을 끌었다. 그렇게 벼락부자가 되어 그녀와 재회하는 데에 성공한 개츠비가 보란 듯 그의 훌륭한 저택을 보여주는 것이 위에 인용한 장면이다.


‘집의 모든 장식물들은 데이지의 눈에 비치는 반응에 따라 재평가되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개츠비는 사랑하는 사람의 집에 켜진 초록색 불빛을 매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낭만적인 인물이었다.(*관용어구처럼 인용되는 ‘그린 라이트’의 유래) 사랑에 대한 그 순수한 동경과 진심이 그에게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부의 축적으로 데이지에게 ‘재평가된’ 이후 과연 그가 행복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츠비에게 찾아온 찬란한 행운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 ‘사랑’에 의해 시작된 그의 목표는 ‘돈’으로 조금씩 변질되면서 초록색 불빛 역시 그 찬란한 빛을 잃어버렸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 놓았던 머나먼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다시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편이 있는데도, 부자가 되어 돌아온 개츠비에게 흔들리는 데이지의 모습은 어떨까? 데이지는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에 솔직하다. 순수하게 부를 동경하는 그녀의 모습을 독자로서 나쁘게 볼 수만은 없었다. 분명 지금 이 시대에도 물질적 풍요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를 선사하니까. 돈이 충분한 안정감을 준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강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낭만적이지만 쓸 데 없기도 한’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 또한 제공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이지의 모습은 나약해 보였다. 과연 그녀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있을까 의문이 들게 했다.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 인생은 고통스러운 모습이 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개츠비와 데이지 같이 돈에 얽매여 살았던 때가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잘 해서 거액의 돈을 번 친구들과 비교했고, 이직으로 연봉을 40퍼센트나 띄웠다는 친구를 보며 박탈감을 느꼈다. 저만큼의 자산을 얼른 축적해야 하는데 하는 조급함으로 강박적인 절약을 하기도 했다. 천 단위로 주식을 굴리며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결핍은 충족되기는커녕 또 다른 결핍을 찾아냈다. 2020-2021년을 기점으로 집값이 말도 안 되게 치솟았던 시기가 있었다. ‘돈 밝히면 못 쓴다’가 아닌, ‘돈에 밝지 않으면 정말 못 쓰게 된다’고. 가장 빛나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 믿어왔던 신념까지 빼앗겨버린 듯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내 아이에게는 물려줄 수 없겠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겠다 등 불안정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음이 가난했던 그 시절, 나는 참 많이 초라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잊지 못할 날이 생겼다. 행복한 가정의 원형적 이미지가 머릿속에 심어졌던 날이었다. 그 날 나는 대중교통에서도 멀리 소외되었고, 가파른 비탈길 위에 있던 신혼집에 초대받아 놀러갔다. 여럿이 들어가기에 그 집은 꽤 비좁았음에도 굉장히 따스했다. 손님들을 위해 부부는 직접 차린 월남 쌈을 내왔다. 대학 동기 오빠의 배우자 분은 소파를 당근마켓으로 10만원에 싸게 구매했다고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TV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큰 책장이 있었다. 그 곳에는 두 권의 똑 같은 책이 스무 세트가 넘게 꽂혀 있었다. 결혼 전 둘은 같은 책을 읽으며 같은 듯 비스듬히 다른 생각을 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기억에 남을 만한 다정한 대화들이 견고하게 쌓였을 것 같다. 이 둘이라면 앞으로 설령 단칸방에 내몰린다고 해도 평생 지혜롭게 잘 살아가겠구나 하는 확신이 펼쳐졌다. 그 곳은 서로가 서로의 안식처가 되고,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처럼 보였다. 빛나는 것들은 결코 사라질 수 없고, 퇴색한 게 아니라 잠깐 잊고 있었던 거라고, 그들로 인해 깨달았다. 내 삶을 지탱해온 건 사랑과 우정,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교감이었다는 것을.


돈은 고갈되지만, 사랑은 축적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한, 사람은 돈 없이도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돈을 쫓는 사람이 아니었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고 해도 부의 축적이 내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다. 돈에 해박하지 못한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것보다는 더 낭만적인 초록색 불빛 하나쯤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고 싶으니까. 세상이 나를 흔들어놓을 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그 무엇보다 밝다. 앞을 향해 내달릴 것을 강요받을 때에도 그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이해 받고 응원할 때, 전적으로 믿을 때. 그런 순수한 기쁨의 순간들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그런 내게 있어 성공의 의미는 높이가 아닌 깊이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곧, 언제나 사랑할 용기를 낸다는 뜻이다.*



*김연수의 <사랑의 단상, 2014>에서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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