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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Oct 12. 2023

애도

지금은 목요일 저녁 7시야. 문득 2주 전의 그 목요일은 네게 어떤 의미였을까 감히 헤아려 보게 돼. 연휴를 앞둔 10월 5일 목요일,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모임에 가는 길이었어. 바로 그 날 밤에,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인 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 그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은 건 그 다음날 오전, 회사에서였어.

‘*혜인의 모친 故이**님께서 영면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드립니다.’

카톡을 보자마자 너무 당황스러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대체 왜? 곧장 회의실에 들어가 전화를 하니 황망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어떻게 된 거야? 너 괜찮아? 그렇게 됐어.. 심장마비.

 

한글날 연휴를 맞아 2박 3일 여행을 갈 예정이었어. 장례식장이 멀어 소식을 들은 당일에는 찾아가지 못하고, 갈아입을 검정색 옷을 주섬주섬 챙겨 여행을 떠나는 아침에 조문을 갔지. 빈소로 찾아가 영정 사진과 마주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 19살 때부터 서로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눠온 우리였기에. 분명 너의 어머님 역시 내 이름을 함께 친근하게 부르며, 이야기도 많이 전해 들으셨을 거야. 직접 뵌 적은 거의 없지만, 우리 우정의 긴 역사만큼이나 친밀감을 느끼는 존재였기에 슬픔이 나를 덮쳤어. 그래서 그 날 그 시간엔 어머니를 잃은 너보다 조문객에 불과한 내가 더 많이 울었을 거야.

 

혜인아. 7년 전, 내가 신입사원이 되고, 네가 대학원에 진학해 함께 괌으로 휴가를 갔을 때가 기억나. 꽤나 럭셔리한 리조트에서 수영을 하며 반짝이는 청춘의 순간을 만끽하던 순간에, 우리 얼굴은 티 없이 맑았어. 철 없고 용감했지. 그 때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했어. 바다의 수평선과 겹쳐져 무한히 뻗어 나가는 그 곳의 인피니티 풀처럼, 너와 나의 가능성도 한없이 뻗어 나갈 수만 있을 것 같았어. 5년 전, 갑자기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다며 나를 놀라게 했을 때도 너는 너무나 확신에 찬 모습이었어. 우리나라 3대 호텔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비즈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신부를 보며, 이제 너는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가진 게 많은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했어. 예쁜 얼굴, 아나운서 출신에, 자기 사업으로 탄탄한 중견 기업을 이끌고 있는 시댁과 자상한 남편을 둬 평생 걱정 없이 살 터였으니.

 

그런 네가, 다음 달 둘째 출산을 앞둬 배가 산 만하게 부른 임산부가, 모친상을 당해 검은색 한복을 입고 퀭한 눈으로 손님을 맞고 있는 걸 보니 너무나도 허무했어. 혜인이 너는 어머니께 많이 의지하는 아이였는데. 왜 하필 네가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할까, 인생은 왜 이럴까. 그러다가 오래 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까지 떠오르더라.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고, 누구나 살면서 짊어져야 할 고통의 양은 비슷하고 인생은 길어'

친구들과 깊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말이 와 닿는 순간들이 있었어. 지금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인생의 꽃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는 10대 때 이유 없이 왕따를 당했다더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은 치유되지 않는다며 내 앞에서 울었어. 누군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걸 보며 자랐다며 씁쓸하게 웃었어. 한편, 가족, 사랑, 돈, 일 등 인생의 모든 방면에서 때가 묻지 않은 사람은 본인의 건강이 문제되거나,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기도 한다는데 바로 이번 너의 일이 그랬어. 그래서 무서웠어. 불행이라는 건 에너지 파동의 형태로 세상을 떠돌다가 행복한 사람을 기어이 찾아내 습격하는 건 아닐까 해서.

 

그 뒤로 자꾸 삶이 두렵게 느껴져. 환갑이 넘은 부모님이 걱정되었고, 살면서 맞닥뜨릴 각종 이별도 무서워졌어. 어렸을 때 한없이 우러러만 봤던 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강하지 않고, 세상의 곤란으로부터 나를 구해주지 못하니까.* 가끔은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처럼, 부모와 자녀의 시간 역시 거꾸로 맞물려 돌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 인생의 깨달음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항상 한 발짝 늦게 도착하겠지만, 체력적으로는 이제 부모님에 월등히 앞서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복잡한 마음이 들어. 어떤 사람은 20대 때 어머니, 아버지를 모두 잃은 후 슬픔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던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이처럼 이별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인 걸까.

 

‘꽃이 피면 비바람이 잦고, 인생에는 이별이 많나니.’*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중 필연히 상실을 겪게 돼.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사랑할 사람을 찾아야만 하고, 때로는 마음을 터놓고 울면서 위로받아야 하나 봐. 구김 없이 자란 내게도, 몇 년 전 불면증이 올 정도로 힘든 일이 있었잖아. 그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일깨워주었고, 너도 그 중 한 명이었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준 사람들도, 오히려 쓴 소리를 건네며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도 선명하게 기억해. 분명한 건 내가 가장 어두웠을 때, 그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곁에 있음을 알리고 나를 밝혀주었다는 점이야. 그로 인해 나 역시 훗날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워주리라고 결심했어.

 

혜인아. 잘 산다는 건 대체 뭘까. 나이가 더 들고 어머니를 떠나보냈으면 덜 아팠을까 상상하고, 어머니께 더 잘 할 걸 하고 후회하는 너를, 안아주고 함께 눈물 흘리며 깨달은 게 있어. 친구는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존재라는데, 내가 그런 따뜻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기를, 앞으로 더 많은 걸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어. 타인의 아픔에 냉담해지지 않고 싶어.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외로움*도 있겠지. 그래도 이에 대한 내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의 내면과 만나면 그 폭을 좁혀갈 수 있지 않을까.그리하여 온기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모닥불을,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 줄기의 촛불을 기꺼이 내어주고 싶어. 다음 달, 선물처럼 다가올 둘째 아이가 상실의 아픔을 희석시켜 주기를. 네가 보낸 장문의 카톡을 읽고 너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썼어. 사랑해 혜인아.


'정민아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네 일처럼 와줘서 너무 고마워. 덕분에 위로도 받고 상도 잘 치렀어. 진짜 큰 힘이 되었어. 언제라도 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불러줘.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함께 나눌게. 지금은 장례 후에 경황이 없어서 문자로 인사를 대신하지만, 일이 좀 마무리된 후에 만나서 또 이야기하자.'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김애란의 <잊기 좋은 이름>, 아이유의 <Love Poem> 에서 문장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친구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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