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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Aug 04.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요즘 우리는 결혼식, 장례식 경조사가 있을 때에만 다 같이 모이는 것 같아! 만나기 왜 이렇게 힘들어??”

“장혁오빠 요즘 어떻게 지내? 서영이는 이번에 이직했다며! 새 회사 생활은 어때?”

“다 같이 사진 한 번 찍자!”


이렇게 오랜만에 모두 모이니 할아버지 곁에 쪼르륵 둘러앉아 사진을 찍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 사진은 아직도 제 핸드폰에 있고, 꺼내보지 않아도 눈 앞에 선명하게 보입니다. 꼬마 시절, 악동 같이 짓궂었던 저와 사촌들은 할아버지 집에서 못된 장난을 많이 쳤죠. 그 시절 우리들은 친구보다 더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 집에서의 일들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가끔 꺼내먹는 보석 같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사실 몇 시간 전에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울고 있던 저희들입니다. 소식을 듣고 회사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바로 달려오고 날아온 나의 사촌들. 우리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당신의 영정사진을 보고 차례대로 엉엉 울고 추스리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회사 사람들과 회식을 하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저는 이 날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오열하는 소리를 듣고 엄마와 이모, 사촌동생 문영이가 달려와 저를 앉히고 함께 눈물 젖은 대화를 나눴죠.


어렸을 적에, 당신을 많이 미워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여리고 섬세했던 그 시절의 저한테 당신은 모진 말을 많이 하셨죠. 19살,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저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거센 바람에 풀잎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듯, 시험 점수 하나하나에 좌절하고 무너졌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좋은 대학에 합격한 저에게, 왜 그 정도밖에 못 했냐며 저를 혼내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큰 상처를 입은 채로 아파하며 집에서 뛰쳐나와 버렸습니다.


당신은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부터 ‘여자는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지키는 게 가장 큰 의무이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제가 대기업에 들어갔을 땐 회사에서 하루빨리 저희 언니의 신랑감을 구해오라 해서 당황하게 만드셨죠. 그 시절, 저는 대학에서 교양 강의로 페미니즘 수업을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면 꽤나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차에 타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부모님께 ‘외할아버지는 대체 왜 저래?’ 하며 엉뚱한 곳에 짜증을 냈던 저였습니다.



할아버지, 이처럼 가끔 당신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깨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던 당신은 저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셨죠.

‘이제 정해진 길을 가야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너희 세대는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에 따라 성공이 결정될 거야.’

문득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 연설이 떠오르던 순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런 말을 해주셨던 당신은 정작 공부만 한 우물로 파서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이 저런 말을 손녀에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문과를 나온 걸 후회했던 시절,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도 제게 해주셨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면, 기술자들은 가장 먼저 대체될 거야. 그 때 다시 한 번 인문학과 사람의 통찰력이 중요해질 거다.'

당신은 예언자였던 것일까요? 요즘 챗GPT와 각종 AI서비스를 업무에서 활용해 보며, 당신이 그렸던 세상의 모습이 한 뼘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기술에 대체되지 않을 만한 기획력과 해석능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느끼는 하루하루입니다.


‘혼자서도 잘 살아갈 자신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 되면 결혼을 해라’

이 말 역시 너무나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당신이 해주신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의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여성의 주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어른이셨구나 느꼈습니다. 그리고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당신의 말을 가슴 깊이 이해했습니다. 나 자신 먼저 바로 설 수 있어야 그 어떠한 관계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요.


당신은 저를 정말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사내대장부 같았던 저를 보며, 쟤는 욕심이 많으니 꼭 큰 인물이 될거라며 두고 보라고 했다죠. 비록 그 정도로 큰 인물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당신은 그 때부터 저를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하얗고 눈이 커다란 예쁜 아기였던 저를 잊지 못하셨습니다. 5년 동안 잠깐 부산에 내려가있던 저희 가족을 종종 만나러오셨고, 그 때마다 당신은 저를 등에 업고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저를 너무나도 사랑했다는 얘기를 또 한 번 해주셨고 또 저를 울게 했습니다.


할아버지, 당신은 저희 가족에게 정말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 저의 오만한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고리타분하고, 상처만 주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사람들의 아픔이 뭔지 헤아릴 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모진 말로 인해 혈연의 의무를 끊어버리고 싶었을 때마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당신은 누구보다 사랑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셨습니다. 당신의 통찰력에 저는 항상 감탄했습니다.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주신 당신 덕분에 저는 친척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저는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하는 진취적인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당신은 저의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아끼고 사랑한, 그녀의 아버지셨습니다.


그렇게 작년 겨울, 미워도 했고 사랑도 했던 당신을 떠나보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당신이 정말 그립습니다. 입관 때 보았던 당신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눈물이 핑 돕니다.


할아버지. 저는 당신의 사랑과 가르침 속에서 세상을 향한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오만한 편견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사람 사이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반드시 존재한다지요. 하지만 당신으로 인해, 기꺼이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는 노력이 사랑의 참된 의미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우리들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자랑스러운 당신의 한 조각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부디 지켜봐주세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22.12.01 정말 추웠던 겨울날,

돌아가신 나의 외할아버지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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