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로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할아버지의 이야기
인사발령을 받고 한 달 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였다며 할아버지 한 분이 씩씩거리며 찾아오셨다. 다짜고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우리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그와의 첫 만남은 그러했다.
할아버지의 꿈은 딱 하나였다. 내 집 마련.
우리네 사회구성원들이 꿈꾸는 것과 같지만 조금 다른 소박한 꿈.
씩씩거리는 할아버지를 달래고 상담을 이어갔다. 집도 가지지 못했는데 무엇 때문에 자신을 중지시키냐며 어르신은 막막해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평생 남의 집만 전전하던 할아버지는 컨테이너 하나를 놓고 안정적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에 모아놓은 돈으로 땅을 샀다고 했다. 그것도 몇 년이나 지났다고. 그러면 왜 아직도 집을 짓지 않았냐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가 기초생활수급자 보장이 중지된 사유가 금융재산이 많아서였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땅을 샀고 컨테이너든 뭐든 지어서 그만큼이 일반재산으로 바뀐다면 보장 중지 결정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질문을 들은 어르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집을 지을 수 없는 땅을 구매했다고. 할아버지가 집으로 되돌아가신 뒤, 해당 지번을 검색해 보니 도로를 내고 남은 삼각형 모양의 자투리 땅이었다. 세 면이 모두 도로인 땅.
주말에 시간을 내어 그 주소지를 직접 찾아가 보니 더 답이 없었다. 마을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전기든 수도든 다 자부담을 내서 해야 할 일이고, 자부담을 낸다고 하더라도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다. 특히 수도문제가 그러했다. 왜 와보지도 않고 땅을 구매하신 걸까 싶었지만, 할아버진 고아로 자라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평생 일만 했다고 했다. 친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땅을 구매할 때는 직접 가서 보고 사야 한다, 무엇을 조심해야 한다 이런 걸 알려주는 사람 역시 없었을 것이다.
이쯤 되니 팔십 넘은 노인이 평생 비닐수거해서 되팔고 박스 주워서 되팔아 모은 돈을 사기 친 이들에게 화가 났다. 할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과오만 원망하며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이 없으면 삶에 무슨 재미가 있느냐며.
관공서에 잘 오지 않던 어르신은 오랜 시간 우리와 신뢰를 형성한 뒤부턴 그저 커피를 마시러 오기도 하였다. 세상 어디를 가도 반겨주는 이가 없는데 관공서에 오면 반겨주는 우리가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들렸다. 할아버지가 거주하는 집주인이 할아버지를 때렸다는 소문.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아 경찰이 여러 번 출동하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폭력까지 행사됐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좁은 동네에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걱정이 된 우리가 할아버지를 찾아가려는 순간, 그가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커피를 마시러 왔다며 웃으며 들어온 할아버지의 눈에는 피멍이 들어있고 이마에도 혹이 나있었다. 소문도 모르는 척 그저 어쩌다 다치신 거냐고 묻는 우리의 질문에 어르신은 '혼자 넘어져서 그래. 나이 들면 자주 이래. 안 아프니까 걱정 마.'라며 우리를 달랬다.
그러고 나서 몇 주 뒤, 갑자기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 그런다며 시무룩하게 우릴 찾아오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내 집이 아니라 또 다른 남의 집, 인근 지역의 원룸으로 이사를 가셔야 했다. 그리고 이사를 가신 지 한 달쯤 되었을까. 갑작스레 사망하셨다.
나의 첫 글에 나왔던 할머니 못지않게 이 할아버지 역시 내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땅만 제대로 된 게 있었다면 어떻게든 후원을 끌어모아 가설건축물을 놓고 신고해서 어르신만의 집을 지어줄 수 있었는데, 아니면 우리가 할 수 있는데 못한 게 있지 않았을까라는 게 우리의 한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으리라.
머나먼 저 세상에서는 당신이 멈춰서는 그곳이 편하게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집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부디 편하게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