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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26. 2023

자녀를 믿지 마세요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준비해야하는 이유

어느 해 추석이 지난 시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네?"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확인해 달라고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연락이 안 되니 확인해 달라 이런 것도 아니고, 추석 연휴 동안 사망하진 않았는지 가정방문해서 사망 여부를 알려달라니. 세상에 이렇게 무섭고 당황스러운 말이 또 있을까. 그것도 자녀들이?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ct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알려준 집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 이리저리 찾아보니 오래된 낡은 집의 몹시 작은 방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어르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인기척이 없다. 침을 한 번 더 꿀꺽 삼키고 한 번 더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잠에서 깬 어르신이 우리를 쳐다본다. 실내는 너무도 지저분했고, 어르신은 거동을 하지 못해 누운 자리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켰지만 정신이 온전한 어르신은 요양병원에서의 대우를 참지 못하고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추석 연휴 동안에는 요양보호사도 들여다보지 않으니 며칠 동안 아무런 기본생활을 못하셨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까 싶어 우리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할아버지 슬하에는 여섯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그 긴 연휴 동안 거동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찾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가 가진 재산은 살고 계신 집 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했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어르신을 돌봐줄 요양보호사를 구해 교체하고 관공서의 방문과 도움도 잦아졌다.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공사도 실시하여 어르신이 누운 자리에서 불편하지 않게 먹고 자고 여가생활도 하실 수 있도록 배치를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도움을 드려도 한계가 있고 가장 불편한 건 어르신 본인이었다.


그렇게 홀로 1년을 넘게 버티던 어르신은, 무더운 여름날을 작은 방에서 나지 못하시고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몸이 점점 좋지 않아졌으나 한 번 모시고 병원을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다행히도 삭막한 요양병원과 달리 창 밖으로 강과 숲이 보이는 요양원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집 밖의 모습도 볼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을 어찌 버티셨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답답함에 1년도 못 버티고 또 나오시는 건 아닐까 하는 우리들의 우려는 기우가 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요양원에서 편안하게 생활하고 계신다.


이 모든 것은 행정의 개입으로 결정되었다. 자녀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찾아오는 자녀도 없었다. 어르신이 요양원에 가신 뒤에 지급된 재난지원금조차 우리가 요양원을 직접 방문하여 어르신에게 전달하고 왔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전달한 지원금도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서는 쓸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녀는 자녀일 뿐이다. 부모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부모를 부양하던 시절은 지났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부양을 행정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전화를 받고 있다. 자녀들이 나서면 해결될 문제도 행정의 개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행정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우리, 결혼을 했다면 부부가 함께.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준비하자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 자녀만 믿지 마세요. 스스로 준비하세요 우리의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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