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회복지공무원이 자살시도자를 만난 아찔한 스토리
일상적인 나날이었다.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하여 3개월에 한 번씩 내려오는 사각지대 추정 명단을 걸러내고 상담하던 중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는 OOO주민센터 복지담당 OOO주무관입니다."
"어?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요?"
순간 무슨 말일까 싶었다. 뭘 어떻게 알고 전화했다는 말인지.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약주를 하신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오늘 힘들어서 죽으려고 여기 저수지에 와있거든. 내가. 내가 힘이 듭니다. 흐윽."
"선생님~ 어디쯤이세요? 저희가 갈게요. 선생님 고민도 좀 들어드리고 싶어요 저희랑 대화 좀 하셔요."
"내가 힘들다 힘들어.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이런 전화받아서 기쁘네. 고마워요."
그러고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비상이었다.
다른 직원에게 112 신고를 부탁하고 차를 타고선 무작정 인근에 있는 저수지란 저수지는 다 뒤지고 다녔다.
거의 모든 저수지를 다 찾았는데 그는 없었다. 우리는 그를 살려야 했다. 간절했다.
관할지를 넘나들며 미친 듯이 저수지를 찾다가 지역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산불감시원을 우연히 만났다. 지역 내 저수지의 개수에 대해 물었는데 우연히도 우리가 찾는 사람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으슥한 곳에 저수지가 하나 더 있는데 아마 거기에 있을 거라고 했다.
달려가보니 으슥한 저수지의 끝에 누군가 음악을 틀어놓고 모든 걸 포기한 듯 힘없이 앉아 맥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경찰에 전화하여 위치를 알려주고는 조심스럽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주변에는 소주 몇 병과 과자 하나 그리고 트로트가 흘러나오는 효도라디오가 있었다.
"노래 좋네요 선생님. 소주 좀 드셨어요?"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어이고? 어찌 찾아왔대?"
"아유 저희가 선생님 찾으려고 엄청 돌아다녔어요.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까 좋네요."
"이거 한 잔 할라요?"
나는 괜찮다고 하며 한 번 더 웃었다. 농담도 건네고 장난도 치며 그의 경계심을 누그려 뜨리려 애썼다.
그 덕분인지 그는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경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연락을 받고 나타난 경찰을 보자 분위기는 180도로 달라졌다.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으켜주면 집으로 되돌아가겠다던 그는 경찰을 보는 순간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저수지로 몸을 집어던졌다.
그의 안경이 먼저 물에 잠겨 사라졌고 얼굴 또한 잠기기 시작했다.
모든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얘졌지만 나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나 혼자 성인 남자를 끌어올리기엔 부족했고 경찰분들이 추가로 달려들어 그를 저수지에서 꺼낼 수 있었다.
옷은 젖었지만 생명에 이상은 전혀 없었다.
입원치료가 필요했다. 이대로 술이 취한 그를 돌려보낸다면 다시 한번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같이 살던 배우자가 그의 복귀를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보호자 동의입원(과거 강제입원, 환자의 직계가족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의 전문의의 결정이 있으면 본인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가능)을 결정하고, 거기 있던 온 직원이 그의 몸을 번쩍 들어 그를 경찰차에 태웠다.
그때 나는 한창 심한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와 약복용을 하고 있던 차였는데,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을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매일 죽고 싶어 하는 내가, 죽고 싶은 사람을 살렸는데, 살린 게 잘한 일인가 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우린 그가 죽고 싶어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 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린 그가 자살을 시도한 사연과 경찰을 본 순간 급 돌변했던 그의 태도에 대해서 배우자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도 한 번 있었던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우리는 오늘도 병원에 보내고야 말았다는 죄책감이 들었었는데 배우자와의 상담을 해보니 우리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알코올사용장애(구. 알코올중독)를 겪으며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고 그 치료를 위해 결정했던 정신과 입원치료에 대해 불만을 품고 퇴원한 이후부터 배우자를 괴롭히고 있었고 반복적인 자살 시도 또한 그녀를 힘들게 하고자 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린 그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그가 자살시도를 벌였을 때, 보호자 동의 입원을 막고자 배우자에게 이혼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전에는 배우자와 자녀 1명의 동의만 있으면 동의입원이 가능했는데 이혼소송으로 인해 배우자의 동의 권리가 없어지면서 자녀 2명의 동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멀리 사는 아들은 평일에, 그것도 갑작스럽게 회사에 연차를 내고 달려올 형편이 되지 못했고 결국 유예기간인 3일이 지난 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배우자에게 살얼음판 같은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우린 남편과 떨어져서 지낼 것을 권고했지만 아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에 잦은 순찰을 부탁하고, 우리의 연락처를 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전화를 달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어찌 되었던 잠시 자살고위험군인 내가 자살시도자를 살린 묘한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때도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 그를 살리고 그의 가족들을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마음이 힘들다면, 답답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세요.
내과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고 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한답니다 :)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야!'라고 생각하지 마셔요.
감기처럼, 잠시 마음에 감기가 든 것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