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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숙 Jul 28. 2021

마음을 키우는 물길의 소리

물길의 소리 - 강은교

        

물길의 소리 강은교

     

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군, 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항거하는 소리, 물이 바삐 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소리,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 핥아대며 반짝이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물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


 이 시(詩)를 읽으면 외갓집 동네 큰 강이 은빛 거품을 내며 긴 머리칼을 비벼대는 모습이 떠오른다. 큰 강은 물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그 대신 큰 강 주변에 있는 나무와 바위, 또는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서로 부딪치며 속살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큰 강의 물줄기 소리는 물길이 머무는 곳에 따라 달랐다.  돌멩이나 바위나 나무뿌리나 달빛이나 바람이나  그 어느 곳에 물길이 머물든  나는 물소리를 냄새로 알아챘다. 큰 강이 휘돌아가는 곳에서는 엄마의 젖 내음 같은 물비린내 냄새가 났다.


 여름방학이 되어 오빠들이 외갓집에 오면 외할아버지 삼 형제가 사는 답풍리 논골 동네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멀리서 조카들이 왔다고 아재와 사촌 이모들이 철엽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이 집 저 집에서 준비한 하루 철엽 거리는 제법 많았다. 철엽 갈 때에는 솥과 쌀, 옥수수, 감자, 반찬 거리등이 주를 이뤘다. 오빠와 아재들은 지게에다 솥을 지고 쌀과 먹을 것을 자루나 대야 같은 데 담아서 가져갔다.

 

 철엽은 주로 큰 강 주변 너럭바위에서 펼쳐졌다. 그날은 하루 종일 너럭바위에서 밥을 해 먹고 논다. 우리는 강에서 멱을 감다가 배가 고프면 바위에 올라가서 옥수수나 감자를 먹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큰 강은 폭이 넓고 물길이 잔잔하고 유장하다. 작은 아이들은 물 가장자리에서 놀고 오빠들과 아재들은 깊은 곳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또 바위가 높은 곳에서 다이빙을 했는데 아재와 오빠들은 누가 더 높은 바위서 다이빙을 잘하는지 내기라도 하듯 풍덩풍덩 강물에 빠졌다. 나는 오빠들이 헤엄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며 개구리헤엄과 송장 헤엄을 배웠다. 송장 헤엄으로 흐르는 물에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면 뭉게구름은 손에 잡힐 듯 낮게 떠있었다. 산은 점점 앞으로 가고 산 위에 떠 있는 구름도 나를 지나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귀까지 물에 잠긴 채 얼굴만 내놓고 하늘을 바라볼 때면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무한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 행복감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떠내려가는 동안 온전히 길게 몸에 엄습했다. 몸이 물에 잠겨서 균형을 이룰 때 코로는 물비린내를 맡았다. 그때는 나도 송사리 떼 중 하나가 되어 물고기처럼 몸을 움직였다. 피라미들은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내 옆을 지나갔다.


 늦은 오후, 그 시간에는 모든 사물이 느리게 흘렀다. 큰 강의 물길도 물속의 물고기도 구름도 내가 둥둥 떠내려가는 물의 속도에 맞춰서 느리게 흘렀다. 더디게 아주 더디게 코끝에 와닿는 물비린내는 나를 온전히 강물에 스며들도록 했다. 강바닥에는 누가 어떻게 파놓았는지 모양이 다른 수많은 고랑들이 마치 산 짐승 다니는 숲길처럼 펼쳐져있었다.


 어떤 날에는 미꾸라지가 쏜살같이 도망가면서 파놓은 강바닥 모래 무늬를 들여다보면서 반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물속에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물이 급속히 차가워졌다. 해가 졌기 때문이다. 입술은 새파랗게 되고 아랫니와 윗니가 부딪치며 딱딱 소리가 났다. 찬물에 미련을 두고 조금 더 있다 보면 팔뚝이랑 넓적다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럴 때는 얼른 물 바깥으로 나와 너럭바위에 엎드렸다. 그러면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의 따뜻한 체온이 몸속에 들어와 금방 추위가 가셨다.


 위로 세 명의 사촌 이모들은 강물에 있기보다 주로 천막 안에 있었는데 우리들이 추워서 나오면 손톱에 돌 봉숭아 물을 들여 주었다. 돌 봉숭아는 바위에 있는 회색 문양인데, 돌에 피어있는 꽃 같기도 하고 버짐 같기도 하다. 그것에다 침을 뱉어서 오랫동안 돌로 문지르면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만들어졌다. 침이 부족하면 그것이 푸슬푸슬해져서 손톱에 잘 붙질 않았다. 돌로 가는 중에 중간중간 침을 뱉어서 회색 돌 봉숭아가 밀가루 반죽같이 쫀득해지도록 문질러야 했다. 손톱에 조금 도톰하게 돌숭아를 올려야 빨간색이 예쁘게 물들었다.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개의 돌 봉숭아를 갈아서 새끼손톱부터 그것을 올렸다. 열 개 손톱을 물들이려면 돌 봉숭아 여러 개에 침을 뱉어내야 하므로 다 끝내고 나면 입이 뻐근하고 얼얼했다.


 이모들은 손톱에 돌 봉숭아를 올린 다음 마를 때까지 강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같이 바위에 누워 강바람을 쐬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꼬맹이들한테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손톱 위가 빳빳하게 말라서 조여 오는데 그 위다 다시 돌 봉숭아를 갈아서 덧붙였다. 그러면 빨간색이 더 빨갛게 물들었다. 돌 봉숭아 꽃물에서도 큰 강에서 나는 물비린내가 났다. 마치 바위가 큰 강의 자식인 듯 같은 냄새가 났다.


  해가 뉘엿 지면 오빠들도 입술이 새파래져서 물속에서 나왔다. 우리들은 빤스도 갈아입지 않은 채 집으로 갔다. 가다 보면 어느새 옷은 강물의 냄새를 그대로 담고서 말랐다. 큰 강에 메기와 미꾸라지 피라미들이 살듯이 그 옆에 바위가 자식처럼 안겨있다. 우리도 큰 강의 자식인 물비린내 나는 너럭바위의 따뜻한 품에 안겨 여름 한철을 보냈다. 헤엄치는 우리들의 뼈가 단단해졌고 물살에 근육이 탄탄해졌다. 물속을 잠수할 때 천천히 유영하던 줄무늬 민물고기들은 우리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꼬리를 흔들며 지나갔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치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항거하는 소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그 소리는 물길에 서 있는 수많은 걸림돌을 돌아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내 마음의 물길 소리도 어느덧 큰 강의 물길 소리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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