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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숙 Apr 01. 2022

사월이 오면

라일락 그늘에 앉아 - 오세영


라일락 그늘에 앉아 -오세영
 
 맑은 날,
 네 편지를 들면
 아프도록 눈이 부시고
 흐린 날,
 네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둡다.
 아무래도 보이질 않는구나.
 네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썼을까.
 
 오늘은
 햇빛이 푸르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네 편지를 읽는다.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무슨 말을 썼을까.
 
 날리는 꽃잎에 가려
 끝내
 읽지 못한 마지막 그
 한 줄.


  겨우내 마른가지로 있던 라일락 나무에 어느새 꽃봉오리가 맺혔다. 라일락 향기를 떠올리며 ‘라일락 그늘에 앉아’ 시(詩)를 읽는다. 편지 같기도 하고 시(詩) 같기도 한 편지 시를 읽는다. 막막한 그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른다. 분란과 혼곤함의 사월이다. 습관적으로 나뭇가지를 당겨 냄새를 맡아본다. 요즘은 꽃이 펴도 계절의 특성이 사라져 가서인지 라일락꽃향기도 예전처럼 강렬하지 못해 섭섭하다.


 내 나이 열일곱, 그 시절 라일락꽃은 향기가 짙었다. 고등학교 담벼락에 붙은 좁은 화단에는 라일락이 울타리처럼 심어져 있었다. 봄이면 운동장 가득 향기가 퍼져 아침 등굣길을 설레게 했다. 주초 고사나 월말고사 점심시간에 흰 양말을 신은 여학생들이 교정을 거닐면서 햇볕을 쬐는 때도 라일락이 꽃필 때다. 우리들은 굳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까지 가지 않았다. 라일락 나무가 있는 담장을 따라 되도록 먼 길을 돌아 교실로 갔다. 그때 우리들은 겉으로는 형이상학의 어떤 경지를 추구했지만 내면 깊숙이 세속적인 호기심이 더 많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콧속을 자극하는 꽃향기 속에 잠시라도 더 머물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여고 일 학년 때 학교의 오래된 서클 중 하나인 ‘Y-Teen’이라는 서클에 가입했다. 기독교 서클인데 종교적으로 한창 고민이 많을 때라 망설임이 없었다. 서클이라고 해봤자 그다지 활동이 많지 않았다. 교내 봉사활동으로 휴지를 줍거나, 선생님들 구두를 닦았다. 또 가끔 이웃 남자고등학교 YMCA 서클과 ‘Sing a long Y’ 모임을 가졌다. 연말에는 시낭송을 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다.


 그 모임에는 이야기가 제법 잘 통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가끔씩 설레는 마음도 일었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이라는 대학 진학이 갈리면서 얼굴 볼 기회가 줄어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지방대 선택으로 한동안 코를 땅에 박고 다녔다. 대학 일 학년 솜 햇살 같은 삼사월을 어느 곳에도 눈길 주지 않은 채 서울 간 친구 편지만 기다렸다. 처음 원고지 뭉치로 오던 편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얇아지더니 급기야 뜸해졌다. 가끔씩 안부편지만 올뿐이다.


 사월이었다. 학교로 가는 과수원 나무 울타리에 라일락꽃이 눈부시게 피어있다. 결코 그 꽃을 고등학교 때처럼 내 미래를 담아 쳐다볼 수 없었다. 풍비박산 난 집과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엄마 상태는 앞이 보이질 않았다. 자연스레 나의 편지글도 현실 굴레에 대한 참담함이 실려 있었을 것이다. 갈등이 오가던 마지막 편지에 친구는 T. S 엘리엇의 시(詩) ‘황무지’를 보내왔다.


 ‘황무지’ 시 전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첫 연 만으로도 절망의 반대편에 있는 생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특히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는 문장에서 희망의 흰구름이 뭉게뭉게 솟아나는 것 같았다. 현실에서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나의 간절함이 시에 투영이 됐었나 보다.


 시의 문장이 샘물처럼 내 생의 뿌리에 물기를 대주었다. 만약 라일락이 아니고 진달래였다면 이 시가 그렇게 강렬하게 내게 꽂히지 않았을 것이다. 라일락은 곧 나의 열일곱, 학교 교정에서 꿈꾸었던 무지개와도 같았다. 시가 어떤 폐허의 요소를 내포한다 해도 상관이 없었다. 메마른 땅 위에 신의 젖줄 비가 내려 만물을 소생하게 하듯, 시를 암송하면서 그 시의 에너지로 몇 번의 겨울을 견뎌냈다. 그리고 새롭게 봄을 맞았다.


 봄볕에 게으름이 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죄를 짓는 것이 낫다’ 던 엘리엇의 사월 예찬을 되새긴다. 젊은 날, 방황조차도 사치라 여기며 자학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자학은 천민이 하는 짓’이라고 냉정하게 나를 비판하던 친구의 편지를, 맑은 날 펼쳐보면 아프도록 눈이 부셨다. 흐린 날 친구의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두워졌다. 한동안  ‘사월’이라는 말만 들어도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라일락꽃을 찾았다.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잊혔다. 지금 나는 여기서 추억을 반추하며 글을 쓴다. 편지의 짧은 글귀가, 편지 속의 시가 황무지 같았던 내 스무 살 겨울을 견디게 했다. 이제는 햇빛이 푸르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목젖이 아프도록 크게 웃을 수 있는 편지를 쓸 수 있겠다. 청춘의 나에게 또 너에게 쓰고 싶었던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해야 시간의 무게를 다 담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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