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모임 로칸디나 Dec 26.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더 파티>

색을 내려놓음으로써 드러나는 것들 <더 파티>, 나선혜

더 파티, 2017, 샐리 포터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색을 내려놓음으로써 드러나는 것들 <더 파티> 


   영화의 제목이 <더 파티>라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제목이 파티(party)로 정해진 이유는 아마도 영화 자체가 ‘정당정치’의 개념을 줄거리에 녹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7인의 등장인물이 모여 ‘디너파티’를 벌이기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제목이 붙은 연유야 어찌 되었든, 한정된 등장인물이 한 공간 안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대환장 파티’를 펼친다는 점에서 꽤 적합한 제목처럼 보인다.


   사실, 이처럼 ‘한정된 등장인물이 하나의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사건의 민낯이 드러나는’류의 이야기는 <더 파티>뿐만이 아니다. 영화로 훌륭하게 재탄생한 <대학살의 신>이나 최근작인 <완벽한 타인> 역시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맥락 안에서도 <더 파티>만이 가지는 특이점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특이점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그리고 그 성과가 시작되는 지점은, 당연히도 ‘흑백 화면’이다.

   흑백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색의 3요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흔히들 색상, 채도, 명도라는 3요소가 색을 구성한다고 하며, 우리는 이 3요소로 색의 정보를 인식하게 된다. 색상은 색의 독특한 성질을 담는 요소로서, 빨강을 빨강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여기에 채도와 명도가 더해지게 되는데, 채도는 색의 맑고 탁함을 나타내고 명도는 색의 밝고 어두움을 보여준다. 


   색상, 채도, 명도를 모두 가지고 있는 색을 우리는 ‘유채색’이라고 부른다. 반면 여기서 색상과 채도가 제외되어 명도만 남은 색은 ‘무채색’이라고 불리며, 이 무채색이 바로 우리가 흑백 화면에서 보게 되는 흰색, 회색, 검은색 등이다.


   이쯤에서, 유채색이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색상과 채도가 입혀져 하나의 이미지로서 다가왔던 색들에서 색상과 채도가 빠져나가는 과정 말이다. 빨강이었든 파랑이었든 색상과 채도가 빠진 뒤에는 명도라는 하나의 척도만 남아 ‘그레이 스케일’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게 된다. 부차적인 것들이 빠져나간 뒤 만들어지는 무채색은 우리의 판단을 단순 명료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무채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쩐지 이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과 매우 닮아있다. 영화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예정자로 임명된 ‘자넷’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로 시작된다. 손님으로 초대된 지인들 역시 자넷 못지않게 확고한 사회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들로 보인다. 

   

   (진심인지 알 길이 없는) 축하와 축복이 만발하는 파티 자리는 자넷의 남편인 ‘빌’의 중대발표로 인해 급작스레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후는 모두가 예상하는 바처럼 인물들의 어두운 면들이 밝혀지며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이는 마치 하나의 색에서 색상과 채도를 거둬내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이렇게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지식인들처럼 보였던 등장인물들의 사생활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관객은 이들의 밑바닥을 목격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어느새 사회경제적 지위와 같은 평가 잣대를 내려놓고 ‘누가 더 위선적인가’라는 하나의 평가기준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마치 ‘명도’라는 하나의 척도만을 가지고 색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영화 속에서의 흑백은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내포하며, 동시에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도 조응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무채색으로 펼쳐진 것은, 영화가 진행되는 71분이 곧 무언가를 덜어내는 과정임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혹은 관객들이 부수적인 것들을 제외한 채로 등장인물들을 마주하기를 바랐던 의도이지 않았을까?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들 속에서도 <더 파티>가 특이점을 갖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디즈가 만난 영화 <인 디 아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