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Oct 22. 2024

환경에 기생하게 되기 전에 공생의 길을 찾았으면 !

#1.
37개월 된 아들의 최애 동물은 단연 말이다. "어디 가고 싶어?" 물으면 대답은 "말 보러" 아니면 "말 먹이주러"
에버랜드, 서울동물원, 경마공원, 안성팜랜드, 집 근처 실내 동물원, 제주도에선 '말 먹이주기 카페'까지 다 가봤지만 질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동물, 특히 말을 찾는다.
-
2. 동물원을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친숙한 동물부터 신기하고 낯선 동물들까지 모두, 갇혀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가두어진 (아마도) 불행한 동물들. 어떤 SF 작품에서 보았듯, 어느 날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지구를 침략해 인간을 박제해서 보관하고 그들 기준에서의 '좋은 복지'를 제공하며 좁은 공간에 인간을 가두어둔다면, 우리는 불평 없이 살 수 있을까?
-
3. 외계 생명체가 봤을 때, 지구에서 인간의 위상은 어떨까?
1) dna라는 유전 물질의 집합.
2) 몇 개의 소기관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생명체들에 비해 특별한 장점 없이 밋밋함. 근육이 아주 발달하지도 않았고, 시력이나 청력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지도 않은.
3) 특이점 : 스스로를 '지혜로운 자'라고 칭함. 손가락이 잘 분화되어 있고, 두뇌 크기가 큰 편이긴 함. 유전 물질의 매개로 장점이 보임.
4) 종합 : 박제할 필요성조차 크지 않은 아주 소소한 생명체.
-
4. 인간 문명의 발전은 현재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어지러울 정도로 급변하는 시대이기에 더욱 걱정되는 것은, 비탈을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변화에 가속이 붙어, 어느 순간에는 정말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아닐지. 혹은 그 특이점을 이미, 지나버린 것은 아닐지. 이 대목에서 생각이 났던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정세랑 작가님의 <리셋>.




(p44) 생각해보면, 지렁이들이 내려오기 전에 끝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우리는 행성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고 무책임한 쓰레기만 끝없이 만들고 있었다... 모든 결정은 거대 자본에 방만히 맡긴 채 1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고, 15분 동안 식사를 하기 위해 4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플라스틱 용기들을 쓰고, 매년 5천 마리의 오랑우탄을 죽여 가며 팜유로 가짜 초콜릿과 라면을 만들었다. 재활용은 자기기만이었다. 쓰레기를 나눠서 쌓았을 뿐. 그런 문명에 미래가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멸종, 다음 멸종, 다다음 멸종.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지렁이들은 제때 왔다. 우리가 다른 모든 종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기 전에 와줬다는 게 감사할 정도다. 궤도는 가까스로 수정되었다. 나는 배낭에 들어 있던 은박 담요를 덮고 잠들며 가끔 웃는다. 내가 죽고 다른 모든 것들이 살아날 거란 기쁨에. 기이한 종류의 경배감에.




5. 리셋 이후, 인간은 지상에서의 권위를 잃고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문명이 주는 달콤한 편의를 직접 포기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도 머지않아 거대 지렁이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거대 지렁이는 '핵전쟁의 발발'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 존재인 '인공지능'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확실히 조금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 70억이라는 개체수로 온갖 엔트로피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는 인류는, 지구라는 거대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존재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을 보면 짐작이 간다.
-
6.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라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기엔 부끄럽지만, 또한 당장 아들의 생떼에 못 이겨 동물원을 갈 수밖에 없는 아빠이지만, 그래도 아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지구라는 환경에 대해 가르치고자 한다. 날이 좋을 땐 이제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도 한번 수거하러 나가보려 한다. 또 우습지만 장난감 블럭으로 말을 만들어줘 보았다. 나름 끌고 다니고 타기까지 하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좋았다.
-
7. 언제나 그렇듯, 작은 것부터 하나씩. 무언가 실천해 보는 것이 거대 지렁이의 방문을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훗날 인류는 멸망하겠지만, 그걸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버린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장난감으로 만든 말
작가의 이전글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진심일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