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물었다.
겨울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그녀는 잠시 아무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나간 기억속 어떤 것을 떠올려보려 애쓰는 것 같기도 했다.
난 그녀에게 있어 겨울이 어떤 기억, 어떤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지는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을 입밖으로 배뱉었을 뿐이다. 나에게 있어 겨울은 바이올린.
출근하는 길, 스쳐지나가는 버스 창밖의 풍경들은 야윈 햇살에 비쳐 모든게 갸날프다. 날카로워진 감정의 칼날위로 바이올린 소리가 미끄러진다. 에이는 듯한 바람이 더해지고 난 몇 해전, 혹은 몇 달전의 여름과 가을과 봄을 생각한다. 겨울은 감정의 저장고이다. 내가 꺼내보고 싶을 땐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그런 접근성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 일방통행식 저장고. 그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지나간 시간들에 존재했던 감정 하나가 현재의 상태처럼 훅 되살아나기도 하고 그 감정들을 함께 그녀들의 표정과 말투와 웃음짓는 방식들이 몇가지의 이미지가 되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창 데이트를 하던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를 옆에 두고 멀리 서 있는 산과 들을 바라보며 바위고개를 불러주셨다한다.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바위고개를 들을 때마다 눈앞이 흐려지신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핀꽃 진달래꽃은 우리님이 즐겨즐겨 꺽어주던 꽃
님은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사랑이 바위고개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곡 그 집앞이기도 하다. 또 누군가에게는 한시간동안 혼자 들이킨 새벽공기일 수도 있다. Yuichi watanabe의 last kiss이기도 하고 새벽 4시까지 이어진 그리움의 전화통화이기도 하다.
우린 각각의 겨울에 관한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늘 그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겨울을 맞이하거나 겨울을 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을 지내는 동안 늘 어김없는 불시에 감정의 저장고에서 어떤 기억하나가 되살아난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은 "가곡 바이올린 2집" 8번과 10번 트랙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겨울이 느껴지는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