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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부부의 자작 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1탄

by 공구부치 Nov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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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교회를 찾는 모태신앙인인 나는 ‘맘껏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만 주세요’라는 기도만 했다.


스스로를 속이며 남자도 만나봤지만 연애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고, 두 번의 여자와 연애는 주변 모두를 속이며 구질구질하게 끝이 났다.


29살이 돼서야 벽장 밖으로 나와 ‘동인련’이라는 인권단체에 가입해 무지개 깃발아래 자유를 느꼈고, 그녀를 만난 곳도 동인련 단체 모임이었다.


그리고 ‘동인련’을 알게된 것은 주일 목사님의 설교에서 소개된 육우당의 시를 통해서 였다.


나는 처음 느끼는 해방감에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서명운동, 차별금지법 제정 집회 같은 제법 정치적인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얼굴을 내비친 덕에 빠르게 단체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호감이 가는 외모에 팔다리가 길어 뭘 입어도 멋졌고 게다가 단체의 대표로 많은 레즈비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대를 무심히 듣던 중 그녀가 1년 전 애인과 헤어진 이후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단체에 더욱 깊은 애정이 생긴 것은 숨기지 못하는 사실이다.


우연인지, 노력인지 회원 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들을 카톡으로 공유할 목적으로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하고 '공적인' 문자만을 주고받으며 한 달쯤 지났을까?

무슨 용기가 나서였는지

‘30살이 되려니 많은 고민이 생겨요. 시간이 되시면 먼저 30대를 살고 있는 선배님으로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

라며 문자를 보냈고, 거절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흔쾌히 나의 만남 요청을 받아 주었다.


우린 퇴근 후 지금은 없어진 상수동 거리 건물 2층에 있는 작은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7월 초 아주 시원한 여름 밤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던 기억이 난다.


대화는 끊기지 않았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어 막차시간이 다돼서야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서며 직감했다.


‘이 사람이구나.‘


그 만남 이후 나의 구애가 시작되었고 보름쯤 지나 우린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

사귀고 꽤 시간을 지났을 무렵 물었다.

“나한테 호감이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만나자 했을 때 흔쾌히 만나준거 아니야?”

“그랬나..? 하긴 그랬던 것 같기도 해. 너무 촌스럽게 생긴 데다 순진해 보이는 네가 재미있었던 것 같아.”


사귀고 얼마 안 가 나는 가끔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동차 정비를 배우기 시작해 자동차 정비사가 되었다.

그때 우린 둘의 월급을 합쳐도 300만 원이 안 되는 가난한 30대 커플이였다. 당연히 자가용이 없던 우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데이트를 했고,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답게 몸 한구석은 닿아 있어야 했다.

그런 우리를 혐오가 가득한 눈으로 쏘아보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우리 세계여행 갈래? 우리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길거리에서 손잡고, 뽀뽀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그런 나라들을 가보고 싶어”

“그래! 우리 5년 후에 가자!”


 ‘5년 후에 가자 ‘라는 말은 세계여행이라는 꿈만 같은 우리의 약속이 막연하게만 느껴지지 않게 해 주었고 결국 5년이 아닌 10년이 흘러 우리는 양가 친인척과 지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우리가 직접 한 땀 한 땀 만든 캠핑카 ‘래디’를 타고 유라시아횡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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