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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 '레디'의 출생신고

퀴어부부의 자작 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3탄

by 공구부치 Nov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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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즈비언    : 디스커버리


어떻게 캠핑카를 직접 만들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자동차정비사로 전업했을 때로 돌아간다.


난 어렸을 때부터 잘 고치진 못해도 고장내기는 잘했다.

다이얼을 돌릴 때마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신기해 라디오에 볼트를 풀어 분해하고 이것저것을 살펴보고는 아무것도 알아낸 것 없이 다시 조립한 다음부터 라디오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다.


엄마에게 고장 냈다고 이실직고하자

“라디오 안은 어떻게 생겼던?”라고만 물으셨다.

엄마는 언제나 고장 낸 것보다 내가 본 것과 만져본 것에 더 관심을 가져 주셨고 의기양양해진 나는 드라이버를 가지고 여기저기를 풀고 조이는 놀이를 계속했다.

그런 기억으로 겁도 없이 자동차정비를 한다고 덤빈 것이다.


학원에서 자동차정비자격증을 따고 직원이라곤 나뿐인 카센터에 취업하자 내가 생각하던 공구를 다루고, 고장 원인을 찾아 고치는 일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너 같은 애들은 돈을 내면서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사장은 손이 느리고 서툰 나에게 기술을 습득할 기회보단 대부분 청소와 타이어 옮기기 같은 일을 시켰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월급에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하며 일요일에만 쉴 수 있었던 그때

‘인생이 이렇게 한 번의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가…..’ 절망했던 기억이 난다.(눈물도 흘렸던 것 같다)


그래도 운 좋게 점점 더 나은 업장으로 몇 번의 이직을 통해 생활의 균형을 찾고, 좋은 선배들에게 기술을 배우며 현장에 머무를 수 있었고,  그렇게 쌓인 경험과 자신감으로 캠핑카를 만들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주 5일제, 공휴일은 다 쉬는 곳으로의 이직으로 캠핑카를 자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평일에는 회사로, 주말에는 화성에 있는 공방으로 출근을 했다. 어디에 출근을 하던 내 머릿속은 캠핑카로 가득 차 있었다.


캠핑카 만들기의 첫 시작은 용접이었다. 살면서 용접까지 할 줄은 생각도 못해봤지만 막상 해보니 소질이 있었다.

용접을 할 때 튀기는 불똥이 무섭지가 않았다. 종종 정수리에 불똥이 튀면 알아서 식을 때까지 뜨거움인지 따가움인지를 견뎌야 했지만 두피가 두꺼운 탓인지 참을만했다.

그라인더 작업 중에 손에 힘을 풀려 놓쳐버리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일도 주로 하는 일이 전완근을 사용하는 일이라 안전하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이었던 것이 면이 되고, 면이 공간이 되며 공간이 집이 되는 과정을 직접 만들며 재미있고 신기했다.


각파이프를 용접해 만든 뼈대에 외장을 입혀 면이 만들어질 무렵 그해 가을 노란색이 맘에 들어 로젠택배차였던 화물차를 중고로 샀다.

이후 2주 동안 매일 빨간색인 서부간선도로를 지나는 출퇴근길을 중고 수동 택배차로 운전하며 어디 고장 난 곳이 없는지 살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수와 엔진경고등이 발견되어 중고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이제 미뤄둔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왔다.

택배차의 화물칸을 떠어내고 그 자리에 그동안 만든 캠핑카 캐빈을 얹어 고정했다.

이제 과태료를 내지 않으려면 다음 자동차종합검사는 화물차가 아닌 캠핑카로 받아야 했고, 그러려면 다음 해 6월까지 캠핑카를 완성해 구조변경까지 완료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생겼다.


짝꿍도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화성 공방에서 같이 일을 했다.

사무직으로만 일하던 짝꿍은 처음엔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며 미안해하더니 막상 일을 해보니 할만한지 도움을 넘어 많은 부분을 직접 작업하며 어깨를 으쓱하였다.

짝꿍과 둘이 일할 때는 언제나 즐거웠다. 빨리 집에 가자고 졸라대는 짝꿍을 달래면서 조금더 해보려 애쓰긴 했지만 말이다.


항상 큰 일은 혼자 일 할 때 일어났다.

작업을 할 때 항상 곁에서 애교를 부리던 고양이의 이름까지 지어주고 밥을 챙기며 친해지던 어느 날 밤 귀엽기만 했던 고양이가 공방으로 쥐를 물고 왔던 날도 그랬고,

탁상드릴에서 뚫고 있던 철근이 드릴과 함께 돌며 오른쪽 중지손가락을 쳤던 날도 혼자였다.

설마 골절은 아니겠지 하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중지 손가락에 선명한 금이 보였다.  

처음 정한 예산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자 공방 사용비라도 아끼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하며 지쳐있었던 나는 손이 부러지는 덕에 강제로 한 달 정도 쉴 수 있었고 체력을 보충해 무사히 데드라인 안에 구조변경까지 끝낼 수 있었다.


2021년 6월 3일 드디어 택배차에서 캠핑카 레디로 다시 태어났다.

캠핑카로 구조변경된 등록증을 받은 그날은 한 땀 한 땀 무엇하나 남의 손을 거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부부 손으로 만든 레디의 출생신고를 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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