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10탄
3박 4일을 내리 달려 치타에 오후 5시쯤 도착했다.
저녁을 뭐 먹을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짝꿍이 아침부터 치타에 도착하면 햄버거를 먹겠다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검색해 둔 햄버거집은 도심 중심에 있는 작은 영화관 안에 있는 햄버거 가게였고 겨우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햄버거를 먹으러 들어갔다.
메뉴판 그림만 보고 세트메뉴 하나와 단품 하나를 시켰다. 햄버거의 맛은 훌륭했고, 세트메뉴로 함께 나온 감자튀김은 감자는 러시아 감자가 최고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 만큼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얀댁스를 검색해 무료 24시간 개방 주차장을 찾아보니 근처에 작은 식료품점 주차장이 있었고 그곳으로 자리를 이동해 과일, 물, 식자재를 조금 사고는 점원에게 여기 주차장에 밤새 주차해 두어도 된다는 확인을 받고 레디 안에 들어가 따듯하게 히터를 켜고 잠을 잘 준비를 하는데 짝꿍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허리를 펴지 못했다.
다행히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비상약 중에 복통에 쓰이는 약이 있어 먹이고 아끼던 핫팩을 터트려 짝꿍의 배에 갖다 대었다.
타지에서 갑자기 장이 뒤틀리는 고통으로 아파하는 짝꿍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있는 짝꿍의 발이 차가워지지 않게 주무르는 정도였고 빨리 아침이 와서 병원이라도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자!”
“근데 우리 여행자 보험도 안 들어서 병원비가 상당할 텐데 어쩌지?”
“그게 문제야?! 러시아 소도시 병원 상태를 믿을 만 한지가 걱정이지.."
“…”
아픈 와중에도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기 해외 여행자 보험은 비싸기도 했고, 그마저도 러시아는 보험이 커버해 주는 국가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서도 아프면 큰 고생인데 러시아에서 아프다니...
처음 여행을 떠날 때 걱정했던 딱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긴 여행을 하며 아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짝꿍이 아프다고 하니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번역기 만으로 병원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의료시스템을 믿을 수 있을까?
여행자에게도 의료지원을 해줄까?
등등
여러 고민들이 머리에 쌓여갔다.
다행히도 약효가 있었던지 점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쪼그려 앉아만 있던 짝꿍이 벙커배드까지 올라와 움츠리고라도 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누워있다 보니 잠이 들어 그렇게 아침이 왔다.
잠을 좀 자고 일어난 짝꿍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우리 다음 도시로 바로 출발하자. 치타에 더 머무르기 싫어졌어"
“그래! 나도 별로 안 궁금한 도시야”
우린 그렇게 치타에 안 좋은 기억을 버리듯 다음 도시 ‘울란우데’로 떠났다.
다음 도시는 치타에서 600km 정도 떨어진 울란우데를 네비에 찍고 출발했다.
다시 지평성 너머로 쭉 뻗은 왕복 2차선 도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노란 들판, 어디가 양지이고 어디가 음지인지 알 수 있는 발자국도 없는 하얀 눈이 나타났고, 그렇게 시베리아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잠시, 얼마쯤 달렸을 까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바람까지 세게 불어 레디가 휘청 휘청 거리기 시작했다.
눈보라에 시아는 안 좋았고, 돌풍이 부는 바람에 핸들이 돌아가지 않게 꽉 잡느라 손에서 땀이 났다.
400km 정도 달리니 저녁 6시가 되었고, 카페를 찾아 조금 더 달리다가는 금방 어두워질 거란 판단에 시베리아 횡단 차량을 위해 정비도 하고, 잠시 쉬어갈 수도 있게 만들어 놓은 차량 쉼터 같은 곳에서 하루 차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쉼터는 카페와는 달리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차량 지나다니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무엇보다 주차장이 아니기 때문에 구획도 없고 가로수 불빛도 없어서 자칫하면 큰 화물차가 부주의하게 주차를 하다가 우리 레디를 박을 수도 있어 웬만하면 차박지로 정하지 않는다. )
눈길 운전이 피곤했던 탓인지 간단히 스파게티로 저녁을 해 먹고, 따듯한 차 한잔을 마신 후에 기절하듯 잠에 들어 다음날 아침까지 꿀잠을 잤다.
우리 부부는 차박지가 안전하다 느껴지면 운행을 마친 후 맥주를 마셨다.
여행을 마치고 러시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도시들의 로컬 맥주를 맛보는 것일 정도로 우리 부부는 맥주를 사랑한다.
짝꿍은 치타 이후 맥주보단 차를 마시겠다며 한 동안은 차를 마시더니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그 이후 여행이 끝날 때까지 배앓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