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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을 넘다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16탄

by 공구부치


2024년 3월 29일, 횡단 18일차. 생에 딱 한번뿐일 즐라토우스트


우랄산맥에 접어들어 저녁무렵 즐라토우스트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와 본 도시의 첫 인상은 소박하면서도 생기있었다. 그동안 지나친 러시아 소도시 중 행인이 꽤 많아서일까?


잘 곳을 열심히 찾았다. 괜찮은 샤슬릭집에 꽤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사람좋은 주인장이 흔쾌히 허락해주어 맛있는 저녁을 먹고 주차장에 하루 묵어가기로. 식사 후 길건너 작은 가게에 맥주를 사러 갔다.


샤슬릭 주문중
하룻밤 동안 집이 되어준 식당 마당


러시아는 각 지역맥주 양조장이 있고 신선하며 가격도 저렴하다. 보통 제조한지 7일 정도된 맥주를 살수 있고 유통기한은 한달이다. 실처럼 가는 짭짤한 스트링 치즈를 실타래처럼 엮어서 파는 러시아 술안주도 조금 샀다.


즐라토우스트맥주와 매우 짠 스트링치즈


우랄산맥 초입은 넘 예뻤고 하루 묵어간 도시는 아늑하고 사람들은 따뜻했다. 다시는 올수 없을 낯선 마을이었지만 우랄산맥 산자락의 강과 지역 맥주, 작은 가게와 고양이, 아침을 먹은 카페의 친절함까지. 자동차여행의 매력은 관광지보다 이런 순간에 배가 된다. 즐라토우스트, 굳이 이름을 찾아 기억하기로 했다.


우랄산맥 산자락 강변의 멋진 트럭카페


유라시아 횡단을 하며 처음으로 한국이란 곳을 벗어나 앞으로 계속 달리는데 계속 땅이 이어지고 시간은 꾸준히 뒤로 가는 경험이 너무 신기했다. 마치 둥근 지구별에 살고 있다는 감각이다. 이렇게 달리면 두어달 뒤에는 이 대륙의 서쪽끝 호카곶에 이르러 바다를 만나게 될 것이다.



2024년 3월 30일, 횡단 19일차.

우랄산맥을 넘어왔다! 이제 국경까지 2천키로, 다음주 금요일 조지아로 넘어갈 예정이다.


우랄산맥을 넘는 길은 차가 많아 밀리는데다 공사중이어서 멀미도 나고 힘들었다. 이제는 이정표에 모스크바가 나오기 시작했고 길이 넓어졌다. 우파를 넘어 사마라 도착 전 트럭카페에서 하룻밤 잘 생각이다.


갑자기 2시간 뒤로 간 신기한 트럭카페


‘바블리’ 인근 트럭카페에서 잤다. 인터넷은 안되지만 카페에는 무료 와이파이가 잘 터지고 샤워장이나 세탁 등 시설이 넘 좋아서 편하게 이용하고 아침에 샤워하니 컨디션이 좋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있었으니…


어제 분명 한국과 4시간 시차를 두고 달렸는데, 이 휴게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려니 시간이 2시간 뒤로 더 가 있는것 아닌가? 분명 저녁6시에 정차했는데 오후 4시가 되어있는 기적!


갑작스런 시간 이동은 우리만 의아한게 아니었던지 함께 주차한 러시아인도 우리에게 자신의 손목시계와 핸드폰시계를 보여주며 지금이 몇 시인건지 물어봤고 둘다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우리는 일찍자고 일찍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은뒤 출발했다.


30분 정도 달리다보니 어느 순간 다시 시간이 2시간 당겨졌다. 분명히 우리는 더 서쪽으로 왔는데 왜 다시 빨라진 걸까! 그 곳은 뭐였을까… 인터넷도 터지지않는 버뮤다삼각지대같은 거였을까?


신기하게 사진도 안남아있음

2024년 3월 31일, 횡단 20일차.


하루만에 700키로를 달려 늦은 저녁 사라토프의 렌타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베리아는 눈보라, 비바람, 짙은안개를 거쳐 겨울왕국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더니 이제 제법 따뜻한 남쪽 나라로 넘어온 것 같다.


장쾌한 지평선 일몰을 보며 달렸고 한밤중에도 영상5도 정도, 다음날 낮은 얼마나 따뜻할지 기대가 되었다. 이제 볼고그라드까지 450키로 남았다.


눈보라
빛나는 겨울왕국
처음본 풀빛 땅
이런 맛에 시베리아 오지
지평선 일몰

다만 오는 길에 차박할 만한 주차장을 찾지 못해 피곤을 감수하고 달려서 사라토프까지 오고야말았다. 나는 혼자 운전하는 하나에 대한 미안함과 몸의 피곤함이 이상한 작용을 일으켜 입이 삐죽 나왔다.


입이 짧은 하나, 한사코 좀더 달리려는 하나, 성질이 급한 하나와 음식을 잘 못하는 나, 해지기 한참 전 멈추고 싶은 나, 확인 또 확인 꿈지럭 거리는 내가 매일 맞붙는다.


이 여행은 10년을 함께 하고도 그래서 다 알면서도 안되는 것들을 어디까지 더 맞출수 있을지 시험해보는 것 같다.


맞춘다기 보다는 서로가 하는 것, 하는 결정과 판단에 대해 안심하고 신뢰하는 것일테다. 꼭 내 고집대로 하지 않더라도, 또는 상대에게 무조건 맞추지 않더라도, 우리 둘의 궤적이 함께 가고 있기에 괜찮을 거라는 것임을 계속 경험하고 믿어보는 과정이다.


하루는 내 고집을 줄여보고 하나가 하자는대로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충분히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렌타 마트에서 뿌리째 파는 신선한 상추를 사와서 대패삼겹살을 해먹었다. 지치고 배고파서 사진은 못남겼지만 삼겹살이 이렇게 맛있나! 고추장에 참기름과 참깨를 둘렀더니 이렇게 맛있나! 참기름 좀더 큰거 사올걸. (결국 나중에 추가 보급에 성공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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