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모두 아기가 어디가 엄마를 닮고 아빠를 닮았는지 살펴본다. 아기를 보러오신 아버님은 귓볼이 당신을 닮아 두툼하다 좋아하시고, 어머닌 윗입술이 얇은 게 애비랑 당신이랑 똑같다며 높은 톤으로 즐거워 하신다.
저마다 자기의 지분을 찾아보려는 건 일종의 의식같기도 하고 <이기적 유전자> 에서 말하는 DNA 의 원초적 본능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에도 '잘 때 손을 위로 올리고 자는 자세가 아빠랑 똑같다', '참외 좋아하는게 이모랑 똑같다', '나도 어릴 때는 왼손으로 칫솔질을 했는데' 등등. 아이를 기르면서 행동, 표정, 감정, 생김새, 호불호까지 신나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면서 1단계 육아의 고단함을 씻는다.
그런데 그 닮은 게 어느새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같은 저주의 말로 바뀌는건 뭔지. 그 말뜻은 '나의 그 면은 나도 맘에 드는 좋은 점인데 어쩌자고 나 아닌 다른 이를 닮아 속을 썩이냐'는 것이다. 어쩌자고 아침 잠 많은 네 엄마를 닮고, 어쩌자고 잔소리 많은 너희 할아버지를 닮고, 어쩌자고 고모를 닮아 손이 못났냐, 겁많고 예민한 건 대체 누구 닮은거냐 등등. 2단계 육아는 이 고단함은, 이 아쉬움은 내가 아닌 '다른 이'로부터 온 것이다 하는 억울함이라는 부정의 단계이다. 육아는 더욱 고단해진다.
3단계는 뭐라 해야할까... 인정의 단계?
하필 수학을 싫어하던 내 모습이 나오고, 초등학교때 다 커버리고 성장이 멈추었다는 내가 나오고, 엄마를 두 다리 뻗고 울게 했던 내 과거가 생각나는 아이의 사춘기까지...
제발 그것만은 안가져갔음 했던 것을 네가 내게서 가져갔구나 하는 미안함... DNA의 반복이 주는 낙담... '어릴적 수학을 싫어한 건 내 엄마가 매를 들어 그런거고, 키가 멈춘 건 우유를 안먹여서 그렇고, 사춘기 반항은 그때 집안사정이...' 인줄 알았건만.
처음의 기쁨처럼 손가락이 두꺼워도 날 닮아 기쁘고, 앉아서 조는 모습이 삼촌 어릴 때랑 똑같아서 기쁘면 좋으련만, '닮았다' 놀이는 대체로 기쁨보단 아쉬움으로 끝난다.
그 많은 닮음과 원전을 알 수 없는 다름들이 모여 나는 내가 낳은, 도무지 잘 모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게 육아인 것 같다. 처음의 기대와 의도랑은 다르게 말이다. 아이가 낯설어지기도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서운함도 스며들 때가 생긴다.
그럴 때는 아이를 멀찍이 놓고 한번 쭉 훓어보길 권한다. 내 맘에 가려져 안보이던게 보일 것이다.
다시 찬찬히 보니 이 모습도 괜찮다 우리 둘보다 낫다. 키도 걱정, 공부도 걱정, 사회성도 걱정걱정... 참~ 걱정도 많았는데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언제 저렇게 다 컸냐!
자, 이제 육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