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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Sep 22. 2022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관계의 다이내믹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책 중 제일 좋아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 있다.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사랑은 괴상하다.


사내놈들은 얼큰한 얼굴을 하고 둘러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 친구의 새로 생긴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였다. 언제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느꼈는가. 각자의 말들을 쏟아낸다. 아무도 듣는 이는 없고 말하는 이들뿐이다. 나름의 감성을 풀어내고, 빠지지 않는 음담패설을 하고, 돈을 말하기도 한다. 나는 언제였을까. 야 야 그만해 그만 술이나 따르자.


긴 입맞춤을 나눈 뒤에 눈을 뜬 그 애가 말랑한 손 끝을 굴려가며 내 잔 수염들을 조심스럽게 만지자 나는 물었다. "왜? 따가워?" 그 애는 대답 없이 검은자를 데륵 들어 올려 내 눈을 쳐다보고는 알아차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하고 만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구나.


하루 종일 붙어있다가 너는 약속을 가야 하고 나는 집을 가야 해서 중간에서 헤어지기로 한때. 보고 싶을 거라며 힘껏 허리를 끌어안아 들어 올리자  애는 풀쩍 뛰어올라 팔과 다리, 온몸으로 나를 감싸 안아 매달렸다. 당황하여 내려놓았지만 내심   있다가 내려놓을걸 아쉬워하고 있는 내게 그 애는 중얼거렸다. "동네 창피하게.."  웃기는 놈이네 지가 해놓고선.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구나.


며칠 동안의 냉전 뒤에 만나기로 한 날. 길고 긴 지하철 통로의 반층 위에 서 있던 나는 늦어서 달려오던 그 애에게 다리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며칠 사이 그 애가 질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섯 걸음만 더 오면 내 얼굴이 보였을 텐데 그 애는 뭐가 그리 급한지 얼굴을 허리 밑 까지 잔뜩 구겨 굽히며 그 다리의 주인이 나인지를 확인했다. 맞아 나는 너를 이런 것 때문에 좋아하지 참.


커지던 싸움에 할 이야기가 있다며 만난 날, 그 애는 내게 배는 고프지 않은지부터 물었다. 그냥 인사말이려나 싶었지만 배고프다는 대답을 했고 그 애는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한조각도 채 먹지 않은 내가 "그래서 할 말이 뭔데?" 퉁명스럽게 묻자 그 애는 장황한 이야기와 댕글 거리는 눈물을 잔뜩 쏟아낸 뒤 "헤어지자" 이야기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구나. 이제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와놓고선 내 배고픔을 챙긴 너의 몸에 밴 배려와. 이런 이야기를 할 거면 밥이나 먹이지 말지. 체하잖아. 어처구니없음과. 마음이 모두 떠났다고 말하면서도 나에게 미안해 손을 파르르 떨며 흘리는 눈물에 대한 안쓰러움에. 너무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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