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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Sep 10. 2024

여름이 간다

혼자였던 나는 부단히도 혼자가 되려 애썼고

또 혼자였다

혼자의 엉덩이 자국만큼 시려진 바닥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낯이 달아올라 더웠으니까


봉오리도 못된 나는 여름이 오는 게 무서워

만개의 축제가 절정인 그곳에 내 자리는 없고

아지랑이에 올라타 겨드랑이 젖어 들면 숨이 터질 듯 어지럽다

창피한 수치


그 수치의 고삐만 끌어안고

춤을 추는 이들에게 이리저리 차여가며

여름을 들이마시면 더위 습기 폐에 가득 차 숨이 옅어지고

존재가 흐려져 묽게 뿌예진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우리 사랑은 금세 흩어질 수증기


무엇이 되었는지는 늘 뒷전

뭐가 되고 싶은지만 생각하느라 바빠

평생을 전개로 살아가다 전환도 못 하고

끝맺음은 바랄 수도 없는


주변의 변하지 않는 것들은 태양을 머금고 자랑만 계속하는데

안 들리면 없는 거야

안 보이면 없는 거야

잘게 저며진 젊음은 선잠의 연속


눈부심을 피하려 여명을 베고 잠들었던 청년은

삭은 석양의 어스름을 젖히며 일어났다

벌레 먹은 이상은 죽은 듯 누워있는 보통

그 옆에 평행선을 그리며 또다시 눕는다


더위를 가르는 시원한 바람

땡볕을 진동하는 매미 우는 소리

물먹은 해가 녹아내린 들판

입안 가득 뭉그러지는 복숭아 과육

그 한철 한철에 피고 지는 꽃떨기


때가 되면 떠올라

지독하게 괴롭히다 사라지는

어느 철에 오셨다 어느 철에 가시려나

밀 수도 없고 당길 수도 없는

그 철에 오셨다 그 철에 가시려나


그 집

그 집에 돌아가고 싶다

비밀번호가 네 생일이던

어두운 나무 벽 위로 담배 연기 기어올라 틈새로 사라지던

어둠 속에 숨어 창밖 여름날의 맑은 평화를 훔쳐보던

젊지도 늙지도 않는 사랑을 만지작거리던

그 여름

그 여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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