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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 시집살이?

아직도 살아있는 구시대적 결혼문화

by 이봄 Mar 12. 2025



    요즘은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조차 거부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진짜 이유를 따져볼 수는 없지만 굳이 멀리 볼 필요도 없이 당장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몇몇은 연애를 귀찮은 일로 여기며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고 간혹 만나더라도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냥 그때그때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편안한 관계를 선호하는 듯하다.



    이렇게 내 주변 경우나 요즘 사람들의 흐름을 보면서 만약 나도 아직까지 결혼을 못 했다면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을까 가끔 상상해 보는데 결혼을 생각하기 이전에 서른 넘어서까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연애조차도 못하고 있다면, 그냥 다 포기하고 엄마랑 우리 강아지들이랑 오손도손 살면서 가끔씩 엄마랑 대판 싸워주고 이 거지 같은 집구석 나가네 마네 씩씩거리다가 썅노무계집애도 소리도 좀 들어주고.. 그렇게 평생 철들지 않은 채 살았을 것 같다. (뭐. 이것도 나름,, 괜..찮? 아닌가ㅋ;)








    '비혼주의'라는 사상이 한참 트렌드 아닌 트렌드로 자리 잡았을 때가 있었다. 연애는 필수지만 결혼은 선택이라는 당찬 선언과 함께 어느 누구도 그 누구에게 결혼은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주변에서 '결혼해라, 결혼해라'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초래한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말한다. 비혼주의라는 좋은 포장지 덕에 나는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라며 이제는 혼자인 것에 대해 당당할 수 있다고.



    이렇게 비혼주의라는 이상적인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그중 제일 첫 번째로는 결혼을 결심함과 동시에 따라오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돈 문제가 있다. 이 나이엔 이 정도의 직장, 이 정도의 연봉, 이 정도의 집, 이 정도의 차 등등등. 우리는 20대 중반이 되고 사회인이 되는 순간 나이대 별로 주어지는 암묵적 룰에 스스로 갇혀버리고 만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했을 때 자동으로 따라오는 재정적인 부분과 남들에게 보이는 여러 가지 것들에 자유할 수가 없다. 그러니 결혼만 생각하면 피곤해지고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것 같다.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이 정도의 무엇에 미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는 새 점점 비혼주의 사상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한다.


    그다음으로는 관계의 문제이다. 돈 문제부터 골머리를 썩고 있다면 이제 연인이 아닌 부부로서의 관계, 더 나아가 시댁과 친정의 관계까지 생각이 뻗을 수 없다. 돈보다 피곤한 게 사람 관계이기 때문에 그리고 결혼은 나와 배우자 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은 서로의 집이 합쳐지는 것이고 연애 때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둘이서 하고 싶은 대로만 결정하고 살 수가 없다.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그때부터는 개인의 삶이 아니라 가족의 삶이 되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거부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이 관계에 대해, 오래전부터 대대적으로 내려오는 잘못된 결혼 문화를 놓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25살, 남편은 26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뭣도 모를 때 하는 게 좋다는 말을 서른이 넘은 지금 체감하고 있는데 사실 이게 체감이 된다는 것도 그리고 무슨 말인지 알게 만드는 이 현실이 가끔은 좀 서글프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게 많아지면서 재고 따지는 것도 많아져 쉽사리 결혼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도대체 결혼이란 왜 그런 걸까? 결혼 정말 정말 좋으니 모두들 제발 꼭 결혼을 하라고 말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지만, 하고 싶은데 결혼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들 중에서도 유독 관계에 대한 문제가 내 마음을 툭 치고 지나갔다.











결혼 = 시집살이 ?


    지금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이야기나 당장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절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나 또한 시댁에 대한 갈등이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연재했어서 그런지 자연스레 브런치스토리에서 다양한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읽게 됐는데 정녕.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시댁이 아직까지도 많다는 사실에 뒷목을 잡고 말았다. 가만히 읽고 있으면 (가만히 읽기 힘듦) 자동으로 한숨이 푹푹 나오고 쌍욕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결혼한 다른 친구들의 경우도 그렇고 시댁과의 갈등들을 아주 다양하게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그래 우리 시댁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며 스스로 다독이곤 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득 이상했다.



    왜 이상했는지, 생각을 거슬러 거슬러 결혼이라는 거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봤다.




    예로부터 여자는 시집을 가면 '남자 쪽 가족'이라던지 '출가외인' 등. 어디 법으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여자는 결혼을 한 순간 시댁에서의 어떤 '역할'이라는 게 생겨버리고 소위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있다.


    '며느리로서', '며느리의 역할'이라는 말을 가장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날인 명절을 놓고 이야기해 보자면 설, 추석 때면 무조건 시댁을 먼저 방문하는 게 맞고 언제나 친정은 후순위이다. 명절 당일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시댁에 가자마자 식구들과 인사를 나눈 후 며느리들은 쉴 틈 없이 당연한 듯 앞치마부터 두르고 하루 종일 주방에서 음식이며 설거지며 후식으로 예쁘게 과일을 깎아 내 오는 것 그리고 뒷정리까지 깔끔히 해야 한다. 심지어 다 같이 식사 중일 때는 식탁 위에 비워져 가는 반찬 그릇들을 그때그때 전달받아 빠르게 보충해 주기 위해 식탁에서 제일 끝, 주방 쪽과 가장 가까운 구석 자리에 쭈그려 앉아 급하게 식사를 한다. 몇 번이고 엉덩이를 들썩여야 해서 밥마저 맘 편히 먹을 수가 없다. 편하게 천천히 밥을 먹는 게 오히려 불편하고 부엌에서 일을 안 하면 눈치가 보이는 게 명절 때 며느리들의 실상이다.



    폭신한 소파에 앉아 쉰다거나 거실에서 느긋하게 티브이를 보는 것은 남자들의 영역이며 명절 때 어디. 감히. 여자가. 그런 여유를 부린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댁과 1박을 하는 경우라면 둘째 날은 당연히 새벽같이 일어나 주방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도 욕을 먹는 며느리들이 있어 매번 명절 땐 이혼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왜일까? 1년에 꼴랑 두 번밖에 안 되는 이 명절은 도대체 왜 이렇게 여러 가정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옛날에야 남편은 바깥에서 일, 여자는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서 했었다지만 오늘날에는 똑같이 나가서 돈을 버는 맞벌이 부부가 흔한 가정형태일뿐만 아니라 육아도 가사일도 분담해서 각자의 몫을 알아서 해가며 비슷한 모습으로 가정을 굴려나간다. 하지만 왜인지 아직까지도 명절날 주방 풍경은 달라지지 않고 여자만 다른 조건이 붙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집안일도 잘해야 되고 육아도 잘해야 되며 남편 내조도 당연히 잘해야 된다는 인식까지 한결같다. 거기에 더해 요즘은 조금이라도 같이 벌어야 된다.



웹툰 <며느라기>웹툰 <며느라기>







    명절뿐만이 아니라 며느리들은 주기적으로 시댁에 안부 전화를 드려 시부모의 근황과 건강을 체크해야 하는 것은 물론 2세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심지어는 남자 쪽 집안의 대가 끊기지 않게 꼭 고추 달린 건강한 아들을 낳아야만 한다. 고추가 달리지 않은 딸은 환영받지 못했고 그렇게 환영받지 못한 채 태어나 아들보다 뒷전인 삶을 살았던 딸들은 일찌감치 시집을 가 시댁에서 온갖 욕을 먹는 일꾼으로서 살게 된다. 그 외에는 자식들의 교육 문제까지 사사건건 참견하는 시댁과 은근히 압박하는 시부모의 용돈 얘기, 습관처럼 다른 집 며느리들과 비교하는 것 등. 맘대로 부릴 수 있는 건 다 부려놓고 바라는 것도 많다. 이러한 시집살이의 형태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바뀌었다 바뀌었다 해도 어딘가에는 여전히, 조금도 변한 것 없이, 몇 년이고 거듭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 아직까지도 저런 시댁이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결혼 문화에 있어서 시댁과의 갈등, 시집살이에 대한 문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으로 되바라진 며느리가 되어 따박따박 시댁에 대들어도 그냥 되바라진 며느리라 욕먹을 뿐이다. 이미 깊숙이 박힐 대로 박혀버린 일부 시댁들의 잘못된 관습은 그 누구도 고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날엔 시댁과 아예 연을 끊고 사는 집들이 많아진 것이다. 아주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며느리는 시댁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종도 아니며 시댁에서 고용한 근로자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곳곳의 많은 시댁들은 당신네 아들과 같이 남의 집 귀한 자식인 딸들을 결혼한 순간 그저 시댁의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백 번 양보해, 정 며느리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면, 며느리에겐 꼭 뭔가를 시켜야 마음이 편하다면, 시어머니의 역할, 시아버지의 역할, 사위의 역할 등 동등하게 시댁, 친정 가족 모두 각각의 역할들을 철저하게 만들어 근로계약서도 작성하고 업무 매뉴얼이라도 제대로 만들어 주고 4대 보험도 들고 월급까지 따박따박 줬으면 좋겠다. 왜 며느리들에게만 보이지 않는 어떤 기준들이 정해져 있고 뭔가를 바라는 것일까?




<희망의 선택><희망의 선택>






    우리 시댁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했던 생각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데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될 큰 문제들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갈등이 아예 없을 수 있겠냐마는 너무나 당연한 듯, 며느리들에게만 어떤 역할을 바라는 것은 잘못됐다. 이런 시댁이 계속 존재하는 한 여자들한테, 며느리들한테 너무 가혹하다. 거의 며느리 학대 수준인 갑을관계 시집살이는 매우 잘못됐다. 결혼을 거부하고 비혼주의가 생겨나게 된 이유 중엔 이것도 한몫한다. 아니, 아주! 아주!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각자의 상황과 사정에 따라 더 다양하고도 복잡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부부가 2세에 대한 마음을 진작에 접게 된 이유처럼 사람 사는 모양은 다 제각각이니 그냥 혼자인 게 좋아서, 돈이 많이 들어서, 관계가 피곤해서 등 이런 단순한 이유만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진 않았을 거란 말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안타까운 건 내가 이곳에, 이렇게 아무리 글을 길게 써재낀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바뀔 수 없다. 아주 아주 만에 하나 이런 문제적 시집살이의 본거지인 어떤 시댁의 어떤 시어머니 혹은 어떤 시아버지가 이 글을 우연히 읽어보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휴대폰은 바로 내동댕이 쳐질 것이며 컴퓨터를 통해 보고 있다면 그 컴퓨터의 키보드는 분노의 주먹질을 흠씬 맞고 얻어터져 사방팔방 키패드가 나뒹굴 것이다. 이 글을 쓴 나는 되려 그들의 공분을 사게 되고 욕먹을 준비까지 단단히 해야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렇게 찔리는 거라도 있어 분노하게 된다면 고쳐질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겠지만 더 심각한 건 이 글을 읽고도 문제가 뭔지 아예 모르는 것이다. 대부분은 모를 거라 생각한다. 잘못한 사람은 본인이 뭘 잘못한 건지 모른다. 정작 진짜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안 오고 피해자들만 찾아온다는, 정신과 상담사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처럼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시댁들은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고 당신네들도 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바뀔 수 없다.



    하루빨리 시댁과 며느리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등 터지는 사위들까지도 모두 똑같이 행복한 결혼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결혼을 하고 몇 년 간은 부부관계가 흔들릴 정도의 문제가 있었고 그 일들로 인해 결혼이라는 문화와 며느리 그리고 시댁, 시집살이라는 것에 대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오다 어느 날 이런저런 며느리들의 다양한 시집살이 글들을 읽고서 아직까지도 이런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며느리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아 여태까지 해 온 생각들을 정리해 글을 쓰게 됐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함께 있는 것이 더 고통이라면 안 보고 사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들이 이해는 가지만 참 씁쓸하다. 행복해야 될 결혼 생활이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로 더 이상 망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이 좋지 않은 문화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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