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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Nov 18. 2024

S급 루이뷔통

엄마가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우리 아들 딸은 명품 좋아하나?
예를 들면 가방을 하나 사더라도 샤넬, 구찌 ㅋㅋ’



어느 날 뜬금없이 엄마가 카톡방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엄마한테서 명품이니 샤넬이니 구찌 어쩌고 저런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줄줄이 나오다니. 게다가 끝에 ‘ㅋㅋ’까지. 뭔가 웃기고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엄마 나이 50이 넘도록 우린 엄마한테 괜찮은 명품 하나 선물해 드린 적이 없다. 그래서 혹시나 이젠 하나쯤 받고 싶은 마음에 슬쩍 던지는 말인가 했지만 다행히(?) 아니었다. 그냥 엄마 친구 중 한 분이 갑자기 명품을 하나 둘 사기 시작하더니 자랑을 그렇게 한다며 우리는 명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신 거였다.


그 친구분은 복권에 당첨이 되신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엄마 얘기를 듣고 20대 초반 때가 생각이 났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굳이 굳이 짝퉁이라도 사서 명품(인 척하는) 가방을 들고 싶어 했던. 누가 봐도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는 가방을 들고 나름 우쭐하며 다니던 때가 있었다.





엄마랑 저녁을 먹고 항상 산책을 나갔었는데 자주 갔던 동네에 보세 옷가게가 하나 있었다. 안 들러주면 괜히 섭섭하니까 몸이 이끄는 대로 방앗간 들르듯 엄마랑 슬쩍 구경하고 나오는 게 산책의 소소한 재미였다.


어느 날 그 옷가게에 못 보던 가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일 안쪽 카운터 근처 상단 진열장에 떡하니 올려져 있던 루이뷔통 핸드백. 그 가방을 보자마자 다른 옷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가방에 시선이 꽂힌 채 그대로 가게 안쪽을 파고들어 가서 멍하니 보기만 하다 결국 가격까지 물어보고 말았다.


단돈 10만 원에 무려 S급. 와. 이렇게나 감쪽같은 짝퉁가방이라니! 이 정도 퀄리티는 흔하지 않다며 나를 살살 달래던 직원분의 멘트. 가격을 물어본 순간 이미 넘어갔다는 걸 알아채신 것 같다. 그래 이 할미랑 가자.





짝퉁가방으로 풍족해진 마음을 가득 안고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다. 빨리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 가방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구에게라도 보이고 싶었다. 집에 있던 많은 가방들 중 제일 아끼는 1등 가방이 되었고 그 후로 나는 늘 그 루이뷔통 가방만 들고 다녔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교회에 갈 때도 그 가방을 걸치는 순간 나 자신이 뭐 좀 되는 사람 같았다. 짝퉁이라고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니까 괜찮다. 그냥 내가 좀 있어 보이고 만족하니까 그걸로 됐다.


옷은 그냥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저렴한 옷들로 입고 가방은 짝퉁 루이비통이라니. 그게 그렇게 좋았을까?


가방뿐만 아니라 지갑을 하나 사더라도 꼭 ‘이름 있는 것’을 샀고 정상가를 주고 살 수 없다면 평화롭게 중고나라를 이용했다. 그것도 안 되면 비슷한 수준의 브랜드로 어떻게든 사서 내 걸로 만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만 없어 보이기가 싫어서, 그래서 만날 약속이 정해지면 그전까지 무조건 새 옷을 마련해 둬야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 집에 옷이 그렇게 넘쳐나는데도 그것들은 이미 한 번씩 입었던 옷들이라 그걸 또 입고 친구들을 만난다? 어우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20대 초반엔 치장하는데만 온 정신이 팔려 살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가방은 뭘 들었는지, 방금 꺼내 든 지갑은 어디 건지, 화장품은 뭐 쓰는지. 관심 없는 척 안 보는 척 서로 은근히 의식하고 질투도 했었다. 그때는 실용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이름 있는 거’ 내가 안 창피한 거. 그거 하나면 됐다.



이것이 그때 그 S급 루이뷔통 짝퉁 가방










왜 그렇게 그런 것들에 집착을 했을까. 부끄럽고 창피하다 정말. 그땐 어려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겉치장에 집착하는 게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없어 보이는 게 싫은 건 여전하다. 역시 속은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습관인 것 같기도 한데 나는 다음날 입을 옷을 미리 생각해 두는 편이다. 그냥 자동으로 그렇게 된다. 그런데도 머릿속으로 잘 안 그려진다거나 좀 의심되면(?) 가끔 한번 입어보기도 한다. 도대체 누가 나를 신경 쓴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지랄도 병이다!




그리고 30대가 넘어가니 20대 때랑은 또 다르다. 내 몸에 걸쳐지는 걸로 비교하는 건 이제 귀여운 수준이고 집, 차, 직업, 능력 등 범위가 훨씬 더 넓어졌다. 어릴 때야 뭣도 모르고 그저 갖고 싶은 욕심만 앞섰던 거라면 나이가 들수록 좀 값어치 있는 것들에 돈을 써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나이 듦과 비싼 거, 명품, 외제차는 무슨 관계인지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요즘은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만 뭐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뒤처진다는 그런 초라한 착각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내 삶은 그걸 위해서 살게 되는 것 같다. 이왕 사는 거 비싼 걸로 사야 오래 쓰고 좋다고 하지만 정말 오래오래 쓰려고 사는 건지 궁금하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비싼 게 좋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언젠가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네가 무인도에 살아도 그런 거에 집착할 것 같으냐고. 어처구니없는 예이긴 한데 맞다. 이게 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니까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쓰고 사는 거겠지. 그래서 돈도 더 쓰게 되고 시간도 쓰고 온 신경이 다른 데에 가 있는 거고 그럴수록 남들이랑 더 비교하고 그러다 문득 나 자신이 초라해 보여서 분수에 안 맞게 루이뷔통 가방이나 눈독 들이고 결국 짝퉁을 하나 사는 거겠지.




20대 때 나의 자존감을 채워줬던 S급 루이뷔통 짝퉁 가방은 몇 년 전에 버렸다. 저 멀리 무인도로. 내 다시는 너를 찾지 않으리. 비슷한 거라도 내 눈에 띈다면 당장 찢어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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