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차희 Feb 23. 2023

벼랑 끝에서

11:15am

오늘 꿈에서 이슬아 작가님이 담임목사로 취임한 교회에 갔다. 다니던 교회를 나오기로 하고는 몇 달 남긴 상황에서 새로운 교회를 찾아보는 중이었다. 이슬아 작가님답게 예배는 희한하게 진행되었다. 자유롭고 친근하게, 혼자서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조금은 어리숙하게. 이 교회에 등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주로 구제사역을 했는데, 교횟돈을 횡령한 사람 때문에 교회 내에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권사님들 사이에 자리잡고 이리저리 캐물었다. 횡령죄를 처벌받고 모든 직업을 잃어버린 이 사람을 구제하려는 손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사실 그 사람이 괘씸했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마저도 구제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한 언니는 교회 횡령 소식에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두툼한 봉투를 내게 전달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 교회가 대부분 사회참여 없이 개인의 구원만 강조하는 것은 교회를 나오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그건 성경에 써있는 내용과 다른 부분이었다. 교회 내부의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서 타인을 정죄하는 행동 역시 분노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교회를 나오기 전 2년 정도는 이 문제들과 씨름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더 깊게 파고들고 시대에 맞는 해석을 시도했다. 교회 내 성폭력, 세습, 횡령 등의 문제부터 제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교회는 과연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를 친구들과 고민하며 참 교회를 이루고자 노력했다. 교회를 나온 지 2년이 지나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사라졌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희망을 품지 않기로 한 것이다.


꿈에서 깨고 나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분 짓는 점부터 회의적인 나는 교회에 큰 의미를 두고있지 않은데, 오늘의 꿈은 나를 헷갈리게 했다. 죄를 지은 사람을 여전히 교회가 감싸고 도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낀 꿈에서의 교회는 죄 지은 자 마저도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고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처벌과 상관없이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구제를 하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구제하는 일은 지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최소한의 피난처가 있다면 그건 종교가 해줘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임보라 목사님은 교단에서 이단 판정을 받으면서까지 성소수자와 함께 한 목사님이셨다. 처음 임보라 목사님을 알게 됐을 때 이 교회야말로 참된 피난처라고 생각했다. 그곳에가면 나 역시 어떤 구분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가장 벼랑 끝에서 너른 품으로 사람들을 받아주는 곳이야말로 진짜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벼랑 끝에서는 모든 이를 차별없이 받아주어야 할 것이다.



2023년 2월 13일 월요일


벼랑 끝에서, 11:15am

작가의 이전글 사용할 수 없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