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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희 Feb 23. 2023

my feelings are indefinite

8:15am

교회를 나오기 전 내 꿈의 대부분은 교회 수련회서 벌어졌다. 여러 번 회장을 해와서 그런지 항상 수련회와 같은 활동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나보다. 교회를 나오고 나서는 교회 꿈을 단 한번도 꾸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교회 꿈을 꿨다. 아끼던 교회 동생이 겪고 있던 문제를 어떻게 도와야 할 지 몰라 고민했던 일이 있었는데, 꿈에 비슷한 내용으로 등장했다. 교회 내에 벌어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공동체의 모습과 회장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나. 해결을 요구하는 듯 모두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대추와 장까뮈를 만났다. 대추는 교회에서 만난 내 오래된 절친이고 기존 교회에서 일명 ‘빻은 소리’를 너무 많이 해 여성 목사를 찾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페미니스트이다. 장까뮈는 신앙에 대해 같이 고민하던 교회 가정원(가장 작은 단위의 소모임을 우리는 ‘가정’이라고 불렀다)이었고 나보다 먼저 교회를 나온 선구자적인(?) 친구다. 물론 이 친구도 진즉부터 페미니스트였다. 장까뮈가 나에게 편지를 남기고 가정과 교회를 떠날 때 나는 이 친구가 전혀 걱정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간 나눴던 대화들을 통해 장까뮈는 계속해서 자기만의 신앙을 발견할거라는 어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까뮈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대학원에서 까뮈의 작품 속 그리스도의 형상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나와 장까뮈는 교회 언어를 많이 잊었고, 여전히 교회를 다닐 생각은 없었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감정들을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과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기독교 규범에 반발했던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가 교회를 거부했지만 그의 시에서는 신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와 같은 이들을 보며 불명확함을 가진 신앙에 대한 가능성을 품는다. 신앙이라 이름하지 않아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선보이지 않아도 오히려 구분짓지 않고 규정짓지 않음으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움이 내가 배워 온, 그리고 느끼고 있는 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회의 때를 많이 벗겨냄으로 새롭게 신을 발견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불명확하기에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는 신, 고정되어 있지 않은 신, 구분짓지 않는 신, 그게 나의 신앙일 것이다.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해서 그런지 오랜만에 트라우마 같았던 교회에서의 일이 꿈으로 나왔나보다. 무능한 공동체의 모습, 그리고 무능한 나. 해결능력을 개인에게 요구하지 않는, 다함께 문제를 해결 해 나가려는 공동체를 꿈에서 만나길 소망 해 본다.



2023년 2월 10일 금요일


my feelings are indefinite, 8:1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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