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노래 Dec 24. 2019

혼자가 아닌 나 홀로 여행

[사카르트벨로] 일곱 번째 이야기, 트빌리시 Tbilisi


K호스텔, 여성 도미토리룸


    옮겨온 숙소의 여성 도미토리룸은 2층 침대 하나와 1층 침대 세 개,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다락방 침대까지 총 6명이 한 번에 묵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방은 작았지만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침대 시트와 물품들이 잘 관리되고 있어 정갈했다. 하나뿐인 창문은 식당가가 아닌 골목길 쪽으로 나있어 잘 밤에도 시끄럽지 않고 조용해서 좋았다.

    첫날과 둘째 날은 혼자였고, 그다음 날엔가 키르기스스탄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미국인과 러시아에 살고 있는 조지아인이 룸메이트로 들어왔다.

    텔라비에서 헤어져 라고데키에 갔던 S도 트빌리시로 돌아와 내 옆 침대에 짐을 풀었다. S와는 구시가지를 산책하고 대성당에 다녀오면서 트빌리시의 밤공기를 함께 마셨다. S가 메스티아로 떠난 다음날에는 카즈베기로 갔던 치우가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왔다. 치우는 카즈베기에서 조지아식 만두인 '킨칼리' 그림이 예쁘게 그려진 양말을 데려왔다. 카즈베기에서도 S와 나를 생각해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치우, S, 나의 우정(?)양말 / 조지아 음식 '킨칼리 Khinkali'


    하루 이틀 묵어가는 사람들이 오가고, 장기 숙박객 중국인 첸위까지 있어 심심할 새가 없었다.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오는 사람을 부러 막지 않는 다정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우리는 언어가 달랐지만 개그코드가 잘 맞았고 비슷한 시기에 컨디션이 나빠지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 감기에 걸려 닷새간이나 콜록거릴 때 내 옆에는 골골거리는 첸위가 있었다. 우리 사이는 그가 중국에서 가져온 철관음 차와 내가 만든 자몽 꿀차를 나누어 마시면서 건강 회복에 힘쓰며 다져진 우정이었다.


    트빌리시에서는 오래 묵으면서 천천히 산책하고 그간의 생각을 정리하며 유의미한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 괜한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다른 여행자들의 시간 속에서 여유를 부리는 게 좋았다. 한편으로는 천천히 머무를 수 있을 때 아파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테라스에 가만히 앉아 들려오는 재즈 음악을 감상하며 하늘의 빛깔을 읽어내는 일이 그날의 전부였다고 할지라도...  

 


매일 만들어먹었던 아침 식사 / 테라스 끝, 내 자리



혼자 여행하는 이유 


    "혼자 여행 다니면 외롭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봐요."

    "가끔 심심할 때가 있긴 하지만 외롭지는 않잖아요, 우리?"

    "맞아요. 게다가 온전히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기도 하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여행하다가 언제든 다시 혼자일 수 있어서 좋아요." 


    S와 나는 함께 여행하면서도 나 홀로 여행을 예찬하고는 했다.

    나도 S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예민하고 이것저것 챙기는 타입이라 그런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주장을 하기보다 상대를 배려할 때가 많은 유형이다. 한국에서라면 무엇을 먹든 어디를 가든 언제고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른 이들에게 선택권을 양보해도 아쉽지 않은 마음인데, 여행지에서라면 다르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마음이 가는 대로 걷기 위해, 마냥 자유롭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니까.

    또, 막상 여행을 하다 보면 완전히 혼자인 날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여행자들과 다양한 경로로 인연이 되는 현지인들 사이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오히려 두 명, 세 명이 함께 떠난 여행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매일매일이 채워져 갔다.

    이란 쉬라즈의 페가와 파리서 자매, 아제르바이잔 셰키의 아이누르와 나르밀라, 조지아 고리스치케의 자자, 지코 형제와 미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만난 여행자 아비가일과 위찬... 여행이 끝나고 돌아보면 지역별로 떠오르는 얼굴들이 각각 다르다 보니 내 여행의 모든 순간들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또한 큰 기쁨이었다.

   


조지아 트빌리시, 여름날의 밤 거리



    외로움에 대해서는 그렇다 쳐도, 만약 "혼자 여행하면 위험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좀처럼 정답을 말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국가별, 상황별로 위험도가 다르기도 하고, 개개인이 느끼는 위험함의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늘 위험하지 않냐. 괜찮냐.'라고 물어보는 외국인들을 꽤 많이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는 여행하기에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고 설명을 해줘도 쉽게 믿지 않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취사선택한 정보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몇몇 국가들에 대해서 느끼는 위험함과 두려움은 생각보다 꽤나 과장되거나 왜곡된 측면이 많다. 참고로 내가 방문한 나라 중 실제에 비해 대외적인 이미지가 제일 안 좋은 나라는 '이란'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악의 축'인 이란에서 내가 받았던 관심과 사랑, 보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다. (누구도 관심없으려나.)

 

    우리나라에서 조지아의 이미지는 슬프게도 '미국' 또는 '커피', 결국 '無 '에 가깝다. 아직까지도 조지아를 말하면서 '미국이 아닌 동유럽의 조지아'라고 덧붙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을 보면 그렇다.

    조지아는 소매치기나 강도, 테러 등의 위험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 덜하고, 조지아 인들의 국민성 또한 선한 편이어서 체감 위험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치안이 좋은 편인 데다가 여행자 물가까지 좋은 나라여서, 나 홀로 여행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나라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특히 자유광장 주변으로는 여행자들의 밤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서 밤늦은 시간에도 환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안전하다고 느꼈다.




여행자의 배낭


    여행자들의 배낭은 지극히 개인의 취향을 탄다. 파키스탄에서 만난 어떤 여행자는 60L 가방 안에서 고무장갑과 1L짜리 샴푸가 나올 정도로 거의 모든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다녔었고, 그의 딱 절반만 한 내 가방을 보면서 적잖이 놀라워했었다.

    '짐은 무조건 가볍게'가 원칙이었던 나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을 여행할 때 들고 갔던 30L 가방도 할 수만 있다면 줄이고 싶었다. 171cm의 건장하지는 않지만 여자치고 왜소하지도 않은 체격인데도 타고난 몸이 근육이 아닌 살덩이어서 그런가 늘 체력의 부족함을 느끼고는 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서양 여자들의 가방은 어찌나 큰지, 60L, 70L... 100L까지도 거뜬히 메고 다니는 그들의 다부진 몸을 부러워했지만, 늘 체력을 키우보다는 짐을 줄이는 편을 택했던 것 같다. 짐의 무게와 여행의 쾌적함은 정확히 비례하기 마련인데 다른 이들에 비해 불편함을 그럭저럭 잘 감수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닐수록, 또 나이가 들수록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몸이 가벼워지고 다리 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여행 배낭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배낭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뿐이다. 용량이 적더라도 제대로 된 가방은 여행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쿠션이 있고 허리 벨트와 가슴 벨트를 갖추고 있어 몸에 밀착이 가능한 배낭이라야, 오래 걸을 수 있고 쉽게 지치지 않는다.

    육신의 피곤함은 곧 후회가 남는 선택으로 직결된다. 지난 여행 동안 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얇은 천가방을 주로 메고 다녔기 때문에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인도 콜카타에서는 숙소를 돌아보던 중, 가방이 어깨를 짓누르는 통에 하는 수 없이 곰팡이 냄새가 나는 숙소에 체크인을 해버렸고, 얼마 전에 다녀온 미얀마에서는 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해 질 녘의 쉐다곤 파고다를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나에게 이상적인 배낭의 크기는 여름 여행 기준으로 40L선이라는 결론을 냈다. 실제 짐은 25L 정도 될 테지만 여유를 두는 편이 좋다는 여행 선배님들의 조언이 더해져 내린 결론이다. 다음 여행에서는 반드시 '40L 이하'의 '제대로 된' 배낭과 함께할 것이다. 좀 더 가뿐해질 다음 여행이 너무 기대되는 나머지, 배낭부터 사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드는 것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트빌리시에서, 잠깐 멈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