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르트벨로] 아홉 번째 이야기, 다비드가레자 David Gareja
다비드 가레자에 다녀오는 것은 마치 숙제와도 같이 느껴졌다. "국경 근처에 동굴에다 만든 수도원이 하나 있다는데 거기가 그렇게 좋다더라..."라는말만 듣고 가기에는 특별하다 여겨질 만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막연히 트빌리시에 일주일 이내로 묵어가는 여행자들이 꼭 다녀오는 곳이 다비드 가레자라는데, 열흘 넘게 정박하고 있는 내가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탓에 별 기대 없이 다비드 가레자로 향했다.
교통편을 알아보니 아제르바이잔 국경 가까이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곳이라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편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여행자들을 한데 모아 데려다주는 투어 차량이 매일 오전 11시에 자유 광장에서 출발한다는 정보를 얻고는 며칠간 날씨 어플을 주시했다. 5월 초부터 트빌리시에는 제법 자주 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트빌리시에 도착한 지 보름째 되던 날, 요 며칠 우중충하던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하며 투어 차량에 탑승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왔다. 마침 투병(?) 생활과 먹부림을 함께 하며 가까워진 중국 사람 첸위와 옆 방에 묵고 있는 한국 사람 J2님도 함께하게 되었다.
J2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한국 사람 S의 가깝지 않은 지인으로서 S의 소개로 K호스텔에 오게 된 분이었다. 서로를 대하는 말투와 표정으로 미뤄보아 S와 J2님의 친분은 그리 깊지 않아 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직 어색한 사이인 S에게 전화를 걸어 조지아에 오겠다는 연락을 하고서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 날아온 J2님이었으니, S를 생각하는 J2님의 마음을 나로서는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J2님이 트빌리시에 도착한 다음날, S는 보르조미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렇게 J2님은 첸위와 나에게 얹어졌다. J2님은 워낙에 말수가 적고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크지 않은 사람이었고 하필 나는 상대방의 온도에 자연스레 맞춰지는 성격을 가진 터라 영영 가까워지지 못한 채 헤어져야 했지만, 첸위의 품은 역시나 넓고 따뜻했다. 그의 맑고 밝은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아무리 조용하고 내성적인 J2님이라 할지라도 첸위 옆에서는 환하게 웃는 모습을 곧잘 보여주었고, 무엇보다 J2님이 첸위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아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런 첸위를 옆에 두는 건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자유광장에서 시작하는 다비드 가레자 투어는 자유관광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가이드는 없었고 기사님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해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트빌리시로 복귀하는 형식이었다. 기사님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구소비에트 연방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분이었다. 11시에 출발한 미니밴은 사람들을 꽉꽉 채우고서야 트빌리시 외곽도로로 진입했다. 트빌리시도 개발이 한창인 시기라 들었는데, 듣던 대로 도시 외곽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와 한창 짓고 있는 건물들이 주거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30분쯤 달렸을까. 사가레조Sagarejo라는 마을을 지나 좁은 도로로 접어들어서면서 창문 프레임 안의 그림이 확연히 달라지는 게 보였다. 약 2주간 도시에 머물며 볼 수 없었던 초록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장관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렀고, 쏟아지는 햇빛을 반사하는 초록의 풀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곧 다비드 가레자를 기대하는 마음을 잊고 '지금 이 순간이 멈추지 않았으면, 눈앞의 풍경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창문에 바짝 붙어 앉아 푸르름에 취해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른쪽으로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적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 호수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아 보였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면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점차 희미해지곤 한다. '눈앞에 있는 풍경이 정말로 내 앞에 존재하는 것일까', 꿈에 젖어 있는데 옆에 있던 첸위가 기사님께 러시아어로 뭐라 뭐라 말을 한다. 트빌리시에서 출발하기 전에 여행사 직원이 '혹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잠시 세워달라고 해도 된다'라고 했다면서 말이다. 첸위는 당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었기에 러시아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잔뜩 신이 난 어린아이 같았다. 호숫가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건 우리 셋 뿐. 다른 여행자들은 멀리서 조용히 호수를 지켜보기만 했다. 나도 만약 혼자였더라면, 뒤늦게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호숫가의 바람을 느끼고, 뛰어다니는 다른 여행자들을 지켜보며 가만히 호수를 응시했을 것 같다. 아마 그 역시도 좋은 여행이었다 추억했을 테지만, 이날의 장면들은 첸위와 함께여서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길 위에 있는 내 모습이 정말 좋아." 첸위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만약 우리가 렌터카를 빌려 이곳에 갔더라면 아마도 그날 밤까지 다비드 가레자에 도착하지 못했겠지. 머물러야만 하는 풍경들이 도처에 있었다.
호수를 떠나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며 국경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고 얼마 되지 않아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다브노 수도원을 보려면 가벼운 느낌의 등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계획대로라면 부지런히 일어나 감자 샌드위치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첸위와 J2님이 만든 샌드위치에 신세를 졌다.
우다브노 수도원까지 가는 길은 독사가 많기로 알려져 있었다. 적잖이 긴장을 하고 오르기 시작했지만,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가빠지는 숨결에 뱀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무덥지는 않았지만 햇빛이 강렬했고 가파른 경사를 계속해서 올라가야 했다. 너무 힘들면 걸음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어 첸위와 J2님을 지나쳐 앞장을 서게 됐다. 이렇게 힘든 것도 추억이려니 생각하며 뒤따라 오는 첸위와 J2님을 사진에 담아 가면서 오르고 또 올랐다.
마침내 고개를 넘어 능선에 섰다. 우다브노 수도원은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면해 있고 수도원 부지의 일부분은 아제르바이잔에 속해 있다. 능선의 북쪽은 조지아, 남쪽은 아제르바이잔... 수도원 주변으로 조지아 군인과 아제르바이잔 군인이 뒤섞여 있는 모습도 그렇고 어느 선이 정확히 국경인지는 알 수 없어서 비공식적으로 아제르바이잔 땅을 슬쩍 밟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챙겨 온 자몽을 먹으려고 꺼내는데, 내 가방에서 감자 세 알이 딸려 나왔다. "감자 샌드위치 만들거라더니 그냥 감자를 가지고 온 거야?" 첸위가 배꼽을 잡으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가뜩이나 힘든 길을 알이 꽉 찬 감자 세알과 등정하고 말았다. 아침에 방에서 주방으로 챙겨 내려온 생감자 세 알을 가방에 그대로 지고 온 거였다.
아제르바이잔 쪽 방향으로 넘어가면 수백 개의 동굴 방이 빼곡히 뚫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거쳐간 수도원에는 동굴 벽마다 프레스코화가 오래도록 보존되어 있었다.
우다브노 수도원도 근사했지만 아제르바이잔 쪽 풍경이 대단히 아름다웠다. 구름 그림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이 이 얼마만인가. 유대 광야의 구름 그림자와 판공초의 구름 그림자가 떠올랐다. 도마뱀의 곁에 앉아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마을!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다비드 가레자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마을 '우다브노'가 있었다. 이들의 선조들은 어떤 사연으로 이 외진 곳에 정착하게 되었던 걸까 궁금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우다브노에서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이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고 인기 있는 곳인가 보다. '오아시스 클럽'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사막은 아니지만 마치 신기루 같은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답게, 어울리는 이름을 가졌다. 동행했던 여행자 중 몇 명은 이곳에서 하루를 묵어갈 것이라며 커다란 배낭을 트렁크에서 꺼내 옮겼다. 깊은 밤이 되면 별이 참 잘 보이겠다 싶었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뒷마당에 모여 앉았다. 스무 명 남짓한 우리 일행이 뒷마당에 둘러앉아 주전부리를 주문하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두 명의 소년이 달려와 무대를 만든다. 소년의 기타 연주가 시작되고 자연스레 소년의 노래가 사람들의 휴식에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저 너머에는 구름이 동동 떠다니는 하늘과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 오래된 미니버스가 보인다. 벤치에 눕듯이 기대앉아 하늘을 보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그렇게 소년들의 노래는 계속되었고, 일행 중 영화감독 빔 벤더스를 닮은 분이 기타를 들고 와 합주를 시작했다.
무리에서 나와 홀로 마을을 둘러본다. 늦은 시간도 아닌데 길에는 사람의 흔적 하나 보이지 않고, 아직 걷어가지 않은 빨래만이 이곳이 사람 사는 동네임을 알려준다. 소는 있되 사람은 없는 조지아의 시골 풍경이 여전히 낯설다.
버스는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가야 한다. 아쉬움을 남겨둔 채 돌아오는 길. 낮에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이 지는 해에 서서히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