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르트벨로] 열 번째 이야기, 보르조미 Borjomi
약 스무날 동안 머물던 트빌리시를 드디어 떠나왔다.
전날 밤, 그간 정이 많이 들었던 호스텔 식구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직원들에게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 조지아어 그림을 그려주었다. 직원 아나에게 문장이 어색하진 않은지 확인을 부탁했는데 99% 완벽한 문장이라며 신기해했다. '우린 꼭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고 싶은 거짓말로 인사를 나누었다.
트빌리시에서 보르조미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했지만 제법 평탄했다. 시그나기에서 트빌리시 사이에 뚫려있는 고속도로에 비해서 도로 상태도 더 좋았다. 내 생애 인도 여행이 값졌던 이유는 어떤 길을 달려도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평온한 마음을 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도에 다녀온 후, 화장실도, 버스도, 도로포장상태도 어지간해선 나를 불편하게 만들 수 없게 되었으니.
보르조미에서 약 일주일간 머물렀던 숙소는 큰 도로변에 있었다. 공터 같은 곳에 호스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서 다른 곳을 찾아볼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일단은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낯을 가리는 나로서는 처음 게스트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 제일 부끄럽지만 직원 리보가 친절하게 반겨주어 어색함이 덜어졌다.
체크인을 한 후, 해가 지기 전에 짧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적한 철길을 따라 보르조미 공원이 있는 관광지 쪽으로 향하니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상점들도 기념품 가게가 대부분이었고, 시그나기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의 무리를 마주쳤다. 아무렴 소화 기관과 당뇨병에 좋다는 미네랄워터가 콸콸콸 쏟아지는 곳이니, 어르신들에게는 필수 방문지가 될만한 도시였다.
며칠 묵어보니 리버사이드 호스텔은 조지아에서는 드물게 오직 배낭 여행자들만이 찾는 숙소였다. 가족 단위 여행자보다 커플 또는 나 홀로 여행객들이 묵어가기에 적합한 곳이었고, 그렇다 보니 호스텔 로비에서 여행자들 간의 교류도 활발했다. 일주일 간 숙소를 바꾸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숙박객 중 레바논에서 온 장기 여행자 알리는 보르조미를 베이스로 조지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중이라 했다. 여행한 지 2년째라고 하니 '여행 생활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그는 요리도 곧 잘하고 인심마저 넉넉해서 매일 저녁 식사를 대가 없이 만들어주고는 했다. 요즘도 나는 그에게서 처음 먹어 보았던 타볼리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이태리 파슬리를 주문한다. 파슬리의 향을 느끼기에 이보다 좋은 레시피는 없다. 타볼리 샐러드 덕에 보르조미와 알리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보르조미에 머물기 시작한 지 삼일 째 되는 날엔가, 호스텔 직원 리보가 내 방문을 똑똑 두드려 부탁을 해왔다. 지인이 근처에 새로 게스트하우스를 열게 됐다며, 간단하게 숙소 중개 사이트에 올릴 사진을 몇 장 찍는 일이었다. 숙소 건너편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가까운 곳이었다.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니 자동차 수리공 아저씨가 리보에게 말을 걸었다. 리보와 몇 마디 주고받던 아저씨는 대뜸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 멀리 보이는 모나스트리에 꼭 가보라는 말을 했다. 안 그래도 리보에게 사진을 찍어줬으니 대신 동네 구경을 시켜달라던 참이었다. 이렇게도 쉽게 로컬 가이드를 얻게 되다니, 큰 행운이었다. 숙소에서 개인 작업을 하고 있던 친구 Y를 불러 함께 하기로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동네 토박이 리보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들어갔더니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공원에서 그 유명한 보르조미 물을 한 병 가득 채운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보르조미 하면 물, 물 하면 보르조미'이라 할 정도로 보르조미 사람들의 물 부심은 대단했다. 일찍이 트빌리시에서 시판되는 보르조미 워터를 마셔보기는 했지만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미네랄워터를 마시는 건 처음이었는데, 좀 더 진한 '탄산과 유황 냄새와 쇠 냄새'의 조합이 신선했다.
리보는 국립공원에서 정상으로 넓게 난 완만한 길 대신에 조금 가파른 지름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계속해서 오르니 국립공원의 복작이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얼마지 않아 산 정상의 관람차가 보였고 평탄한 길을 따라 좀 더 걸어가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관광지를 약간 벗어났을 뿐인데 기대치 않았던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나무가 울창한 길로 들어서면서는 내친김에 신발을 벗고 걸었다. 뜻밖의 산림욕을 즐기며 걸어 걸어 깊은 숲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수도원이 보였다. 리보는 굶주린 곰에게 잡아먹히지 않았던 성인의 그림을 보여주며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흘 후, 리보와 함께 갔던 마을 근처에 공공 수영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인 나오미, 친구 Y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운이 나빴던지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가파른 길을 거침없이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숲길을 걸어야 했다. 산속에 있는 수영장이라니!
짜르가 사랑했다던 수영장. 온천물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수영장에 발을 담갔다. 리보는 보통 새벽 일찍 수영을 하러 온다고 했다. 다시 가려거든 꼭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가는 게 좋겠다. 수영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에 좋은 시간에.
맑고 촉촉한 공기를 마시며 내려오는 길. 청량하다.
실패기도 잘 쓰면 책이 되는 세상이지만, 이 실패기에는 꾸밈도 교훈도 없다.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는 독일 여자 둘도 다녀왔단다. 멀대 같은 미국인 남자도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녀온 참이다. 우리의 식사 메이트 나오미도 곧 출발할 거란다.
등산은 아무래도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산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도 의욕도 없었는데, 친구 Y가 간다고 하니 따라 올라보기로 했다. Y가 코스 중 제일 완만하고 짧은 11번 코스를 선택해주어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인포메이션 센터에 입산 허가를 받고 그곳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길거리에서 마슈로트카를 잡아탔다. 아츠쿠리라는 마을에서 내려 11번 코스 등산로로 진입하면 된다고 했는데 길이 분명하지 않아 진입로를 찾다가 1시간이 감세 지나가 버렸다. 평탄한 길에서 벌써 5km만큼의 에너지를 소진했으니, 내심 꽃구경이나 하다 가으면 싶었다.
헤매다 보니 입구가 나오긴 나왔다. 산길은 인적이 드물어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이틀 전에 비가 내린 탓에 가파른 길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양지는 그나마 오를만했지만 나무 그늘에 가려진 곳은 여전히 미끄럽고 축축했다.
등산화도 아닌 일반 운동화에 스틱도 없이 산행을 시작한 우리의 무지를 탓하지는 않았다. 이 또한 내 운명이라고, 역시 산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산이란 모름지기 바라볼 때만 좋은 것이라고.
바람이 지나가는 언덕에 앉아 챙겨 온 점심 도시락을 까먹으며 땀을 식혔다.
같은 숙소에 묵는 나오미는 나이 든 미국인 친구와 아침 일찍 산행에 나섰는데 밤늦게서야 돌아왔다. 힘들었다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지쳐 돌아온 그 모습이 자못 위풍당당하게 느껴졌으니, 무의식에서는 등산에 실패한 내가 부끄러웠던가 보다. 등산을 잘하지 못하는 걸 등산을 싫어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던 내 모습을 마주했다.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느꼈다.
쿠쿠쉬카, 장난감 기차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열차는 보르조미와 바쿠리아니를 하루 두 번 오간다. 비수기인 데다 우중충한 날씨여서 그런가, 기차에는 여행객보다 직원들이 더 많았다. 바쿠리아니는 스키장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겨울이 극성수기란다.
느릿느릿,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바쿠리아니에 도착한다. 작고 소박한 기차역, 바쿠리아니 마을도 기차역처럼 아담했다.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다가 멀리서 다가오는 백마 '제이란'을 만났고, 말 주인 기오르기에게 인사를 했더니 어느새 내가 제이란의 등짝에 올라타 있었다. 이때만 해도 몰랐지, 조지아의 걸어 다니는 말이 모두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르조미로 돌아오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 같은 꼴을 하고 숙소에 도착했다. 차가워진 몸을 따땃하게 데워준 알리의 요리. 어느새 호스텔이 내 집 같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