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르트벨로] 열한 번째 이야기, 쿠타이시 Kutaisi
보르조미에서 만난 일본인 나오미와 마슈롯카를 타고 카슈리를 경유해 쿠타이시에 도착했다. 쿠타이시는 지나온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특색이 없이 그저 커다랗기만 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쿠타이시는 그랬다.
조지아 독립기념일 주간이어서 그런지 중심 광장에는 조지아 국기와 탱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근처 공원은 사뭇 축제 분위기가 났다. 우린 광장을 지나 방금 떠나온 보르조미산 물을 하나씩 사들고 시장으로 가서 체리를 각 1kg씩 구매한 후 바그라티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은 광장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강을 건너 계단을 올라 바그라티 성당이 있는 쪽으로 올라가 본다. 바그라티 성당은 제법 커다랬고, 보통의 조지아 교회와는 달리 민트색 지붕을 갖고 있었다. 바그라티 성당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가, 문화재 보수 작업을 과하게 한 나머지 지정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연이다. 우리는 성당의 겉모습만 대충 훑어본 뒤 잔디밭에 나란히 앉았다.
잔디밭에서 쿠타이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한구석에서는 묶이지 않은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여러 명의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뛰어다녔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대충 씻은 체리를 공격적으로 집어 삼켰다. 언덕 위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좋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백색소음처럼 마음을 편하게 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나오미가 입을 떼더니 "난 이제 쿠타이시에서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 이걸로 충분해."라고 했다. 쿠타이시에 도착한 지 고작 2시간밖에 되지 않았느냐며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고, 나오미는 단호하고 결연하게 "내일은 메스티아로 갈래."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곳에서 나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쿠타이시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게 주된 이유이긴 했지만, 정말이지 그곳에서 앉아 있었던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워서 여한이 없기도 했던 것이다.
성당을 둘러보고 게스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녁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하루 종일 제대로 쉬지 못했더니 허기가 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 가정집 마당에 핀 비파나무를 구경하다가 비파 몇 알을 얻었다. 체리도 주려는 고마운 손길에 시장에서 사 온 체리 봉지를 내보이며 극구 사양을 했다. '마들로바. 마들로바. (감사합니다)'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쿠타이시 사람들의 온도가 너무도 따스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오미가 메스티아로 떠났다. 반쯤 감긴 눈으로 나오미를 배웅하고 다시 침대로 파묻혔다가 조식을 먹으려고 겨우 일어났다. 식사를 마치고는 숙소 옥상에 있는 그네에서 아침 햇살을 즐기다가 겔라티 수도원으로 가는 마슈롯카를 타기 위해 광장으로 나갔다.
바그라티 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겔라티 수도원은 벽화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사제 앞으로 아이들이 모여 있어서 그저 견학을 온 무리인 줄 알았는데, 조금 후에 아이들이 목소리를 모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둥근 천장으로 울리는 노랫소리가 청아했다.
노랫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성당을 둘러보았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벽화들은 바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이콘도 군데군데 많이 있었다.
워낙 유서 깊은 곳이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조용히 기도를 하고 가는 사람들과 세례를 받으러 온 아이들 등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다수였다. 세례를 받는 아이의 상기된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오래된 건물의 일부는 지지대가 필요해 보였다. 새로 만들어 깔끔한 성당도 그것대로 귀여웠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을 품은, 낡고 바랜 성당이 더 맘에 든다.
쿠타이시 여행은 바그라티 성당과 겔라티 수도원 두 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너무 커다랗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쿠타이시의 이미지는 떠날 때가 되어서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유서 깊은 도시'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쿠타이시를 생각하면 성당 주변 풀밭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맑은 얼굴과 성당 가득 울려퍼지던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쿠타이시에 잠시라도 머물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