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르트벨로] 열세 번째 이야기, 메스티아 Mestia
조지아 북서부 스바네티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메스티아.
인도의 라다크, 파키스탄의 훈자, 네팔 포카라처럼, 그곳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해지는 그런 곳이 있다. 메스티아도 역시나. 내가 지금 바로 여기, 메스티아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음껏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마을을 둘러싼 설산과 산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물, 부지런히 오고 가는 여행자들, 그리고 스반 타워. 그 사이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날들.
가정집 2층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며놓은 곳에 짐을 풀었다. 일층으로 내려오면 주인 아주머니께서 자꾸만 갓 구운 빵을 내어주신다. 세탁기도 세제도 마음껏 쓰라 하시고, 정원에서 민트 이파리를 종류별로 뜯어와서 골라 마시라고 주시니, 이래서야 장사가 되려나 싶을 정도로 친절하다. 영어가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아 바디 랭귀지와 그간 배운 조지아어 몇 마디로 마음을 나눴다. 아주머니가 주신 하차푸리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메스티아를 한 바퀴~ 걸어본다.
여지 없이 보이는 설산들 사이로 난 강줄기를 따라 마을이 일직선으로 늘어져 있었다. 조지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스반 타워가 듬성듬성 보인다. 스반 타워는 현지어로 '코시키'(탑)라고 부르는데, 8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지어졌다고 한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들을 감시하고, 주거지로도 사용되기도 했다는 코시키. 스바네티 지역하면, 코시키가 떠오를만큼! 코시키가 있는 풍경은 색다르고 특별했다. 여기가 바로 메스티아, 라고 외치는 듯한 풍경이다.
언덕 위로 올라가 마을을 굽어보니, 목가적인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인다. 아아 메스티아! 이렇게 쉽게 충만한 행복을 가져다주다니! 수풀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곤충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촉촉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다.
단 하나, 아쉬웠던 건 메스티아가 워낙에 관광지여서 현지 사람과 현지인의 문화를 체험하기는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소수의 여행자들은 근처 다른 마을에 머물며 메스티아를 여행하기도 한다.
몇 가지 아쉬움이 있더라도 메스티아의 경치와 분위기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자연이 주는 온전하고 확실한 행복을 느끼길 원한다면 지금 당장 메스티아로 떠나도 좋다.
머물던 숙소에서 아주 참한 미국인 여행자들을 만났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마이카와 단이라는 친구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코룰디 호수로 '숏 하이킹(!)'을 갈 거라며 함께 하잔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슈퍼에 들러 초코바와 물 등 비상식량을 챙겼다.
'숏 하이킹'이라는 말에 선뜻 따라나섰는데, 메스티아의 해발 고도는 이미 1500m인걸. 평생 해발고도 30m 언저리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은 고산증에 약할 수 밖에. 한 발 한 발 열심히 내딛어 보아도, 입을 크게 벌려 심호흡을 해보아도, 심장의 박동이 무시무시하게 거세어지고 자꾸만 속이 울렁거린다. 190cm는 되보이는 단이가 기다란 다리를 자랑하며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데, 내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지고... 마이카는 내 걸음을 맞춰주느라 느리게 걸으며 나를 격려했지만, 30분 동안 한 세 번 정도는 하이킹 포기 선언을 했던 것 같다.
단순히 힘들다는 느낌만이었다면 코룰디 호수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산증을 극복하지 못한 나를 다독이며 커다란 바위 위에 홀로 앉았다. 마이카야, 단이야, 잘 다녀와...... 포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살갗을 마음껏 태운다. 자연의 품에 폭삭 안겨 있으니 입에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그간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하나 둘 꺼내어 불렀다.
하이킹 실패 후에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 주인 아주머니께서 또 빵을 내어 주신다. 따뜻한 차와 함께 빵을 먹고나니 다시 힘이 차올랐다. 지도를 꺼내 옆 마을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서 다시 숙소를 나섰다. 옆 마을 마제리로 향하는 길. 여길 보나 저길 보나 한 폭의 그림... 그리고 스반 타워.
비록 코룰디 호수 트레킹은 실패했지만, 목가적인 마을 트레킹으로 마음이 채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마제리에서 메스티아까지 나를 데려다 준, 지켜준, 외롭지 않게 해준 댕댕이. 간식이라도 주고 싶었는데 오는 길목에 작은 슈퍼 하나 없어 너무 슬프고 미안했다. 고마워, 댕댕아! 예쁜이!
코룰디 호수 맞은편 산에는 스키장이 있고 여름에도 케이블카를 운영한다. 코룰디 호수에 가지 못한 원통함을 케이블카 두 번 타기로 달래보았다. 아무래도 코룰디 호수가 더 만족감이 컸겠지만 말이다.
이곳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서도 설산이 보이고 내려오면서도 설산이 보인다. 정상에 도착하면 360도 설산 파노라마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마치 내가 설산들의 나라 한 가운데 떨어져 표류하는 미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