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예 Dec 20. 2023

멋지게 흐른 아이와의 시간

가까워진 아이 졸업

 적당한 온도로 물을 데워 아이들 보온병에 담았다. 넉넉하게 데운 덕에 남게 된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몸을 깨웠다. 별생각 없이 잠이 들었기에 아침에 뭐 할지 잠깐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으로 손을 뻗어 주섬주섬 잡아 들었다.


칙칙 칙칙, 밥솥추가 돌아간다.

달그락달그락, 조리한 그릇을 바로 씻어낸다.

찹찹찹, 조물조물 브로콜리도 무쳐본다.


별 것 없지만 하나하나 상에 올려지면 뿌듯함이 차오른다. 하루 시작이 좋다며 계란찜에 참기름을 두르고 향을 들이켰다.





사삭사삭, 응? 뭔 소리지?

언제 왔는지 책상에 앉은 큰아이의 성실한 등을 마주했다. 씻으러 가는 소리만 들었는데 무슨 일로 새벽 공부를 시작했는지 고개를 기울여 이유를 찾았다.


일 년 내내 중학 준비를 아주 현실적으로 깨워주시는 담임께서 다음 주,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에 기말고사라는 큰 과제를 안기셨다. 어제는 사회를 다 해결해 놓고 늦게 잠에 들었다. 법적 휴일에 공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투덜거리더니 작정하고 새벽공부를 시작했나 보다. 아... 밥 식는데...



아이는 목표가 정해지면 몰입한다. 아직은 온전히 주도적으로 설정한 목표는 아니지만 권위가 서 있는 사람이 제시한 올바른 방향에 자신을 맞추는 자세를 갖추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음을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아이의 괜찮은 성장에는 양육자의 '적절한 관심'이 큰 역할을 한다. 키우니까 결론이 그렇다. 적절한 관심의 의미와 범위를 정의하라면 개별 특성에 맞는 것, 이라고 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아이는 귀의 피로도를 높이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을 한다. 수행이라 여기고 귀 기울이는 관심으로 아이 주변의 많은 일을 파악하고 상황을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대화를 이어가고 마음을 살피는 일이 12년이다. 그러고는 때에 따라 조언이 되길 바라며 뼈 있는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괜찮은 아이로 잘 성장했다는 중간 쉼표를 곧 받는다. 교우 관계에서 복잡한 감정에 성장통도 겪고 예민해진 지 오래지만 웃음 가득한, 그야말로 똥꼬 발랄한 시절이 지나고 있다. 동생을 챙겨 눈 쌓인 등굣길을 나섰다. 눈이 굳어 뭉쳐지지 않으나 실망하지 않고 자기 머리 위로 뿌려대며 좋다고 웃는다. 등교 바로 전, 진지하게 남은 공부를 마무리하던 모습이 순간 스친다.



뭘 해도 될 녀석이란 말이 입꼬리에 묻어난다. 공부할 때 몰입하고 놀 때는 확실히 노는 꿈같은 성장을 아이가 하고 있다. 단 한 번도 아침밥 없이 내보낸 적 없고 끙끙거릴 일에도 아이에게 내색 못하던 고비들이 있었기에 아이가 절로 컸다는 말... 아끼고 싶다.


육아는 졸업이 없으니까 아이의 졸업은 마침이 아닌 쉼표이며 시작이다. 꽉 찬 감정으로 오열하는 추태를 보이지 않게 마음 다스리며 잠깐 숨 돌릴 그날을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의 현실을 채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