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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아이 종단연구처럼

아이의 재능 성장을 위해서라도...

by 지예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색하고 서툴러도 타인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 심장이 조여들듯 아프고 억울해서 사람이 어렵고 무서웠다. 그들의 민낯을 마주하면서부터 나는 부지런히 가면을 바꿔야 했다. 아이들의 사회생활만은 지장이 없길 바라기에. 큰아이의 이타적인 심성과 올바른 성품을 일찍이 알아봐 주신 유치원 첫 담임과 초등 첫 담임의 말씀이 당시 삶의 힘이었다. 그러나 주변인들에겐 질투와 시기가 되었고 숨죽여 지내야만 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사람 사귐 기술이 부족하고,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이 되었다. 그래도 힘든 일은 없었다. 둘째가 유치원생이 되기 전까지는.


둘째의 유치원 생활은 요란했다. 큰 목소리로 등원을 알리는 울음의 강도를 줄이기 위해 더욱 밀착 육아를 하였다. 환경 변화에 민감했던 아이가 가진 신기한 재주를 해치지 않으면서. 아주 아주 꼬꼬마 때부터, 연필을 바르게 잡는 앙증맞은 손 모양을 터득했다. 그 덕에 손의 피로감 없이 가만히 두면 앉은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그림만 그린다. 결과물을 대할 때면 놀라워서 크게 반응해주고 격려해주었다. 둘째와 비슷한 시간의 큰아이의 그림은 뭉개져있었음에도 사교육 없는 아이들의 그림 수준은 둘째처럼 다 비슷한 줄 알았다. 내 눈에만 잘난 아이들이었으니까.


큰 아이도 또래는 다 그렇게 자라는 줄 알고 뒤통수 맞았던 시간이 스치며 정신이 들었다. 내 아이가 남다를 수 있다는 시선은 밝아졌지만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두 번 데일 수 없는 일이니까.


KakaoTalk_20210614_232529829.jpg 프린트 한 악어 그림 + 글라스데코 물고기와 악어 눈 + 주변 환경 by 6세 아들


그런데 유치원 담임이 알아봐 주셨다. 처음엔 창의적으로 그림을 잘 그린다며 놀라셨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에 여느 아이들과 다른 성장을 보인다고 짚어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게 최대한의 예의였다. 하원을 하면서 다들 떠난 자리, 내게 담임은 교실로 들어와 줄 수 있느냐며 조심스레 말씀하셔서 동행했다.


KakaoTalk_20210614_232804386.jpg 수정테이프로 액자틀 만들어 각기 다른 그림 채우기 by 6세 아들


주말에 대형 서점에 들렀다가 초급용 크로키 스케치북이 있어서 구매했다며 내미셨다. 의미를 모르고 설명을 듣다가 그냥 이런 게 있음을 알려주시는 거죠? 라며 여쭈었다. "아뇨. 선물로 드리는 거예요. 교직 생활 평생 창의성이 넘치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까지 담아내는 아이는 만나보지 못했어요."라는 말씀에 울컥했다. "분명 곧이곧대로 그리지 않을 거예요. 기본기를 알면 자신의 생각을 담아 더 멋스럽게 꾸밀 거예요. 많이 격려해주세요."


아이의 넘치는 상상과 다소 제멋대로인 적극적인 표현을 갇힌 틀이 아니라 활짝 열린 마음으로 알아봐 주셨다. 그리고 성장을 응원해주셨다. 어리바리한 상태로 감사 인사만 드리고 나온 죄송함에 메신저로 마음을 전했다. "아이의 성장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KakaoTalk_20210614_232804937.jpg 엄마에게 선물해 준 노트북 + 마우스 + 마우스패드 by 6세 아들


1954년,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카우아이 종단연구> 심리학 프로젝트가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와 범죄자, 비행청소년이 많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삶이 좋지 않을 거란 가설로 시작되었다. 신생아 201명을 대상으로 30년간 집중된 이 연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나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 묵묵히 응원하고 있음을 표현해 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당시 나는 해도 해도 바닥을 치는 성적에 몸부림쳤다. 점심을 3교시 끝난 쉬는 시간에 미리 먹고 점심시간에는 책을 뚫어져라 봤다. 어느 점심시간, 담임은 교사들에게만 주어지는 학습지 부록을 교과서 위에 패스하듯 건네시고 가시며 등을 토닥여주셨다.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그 순간의 감사함과 감격은 평생 잊지 못한다.


큰 아이에겐 너의 성장이 반짝일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두 담임이 계셨다며 지난 일들을 말해준다. 둘째는 그저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져 주변인들의 반응을 즐기는 단계다. 조금 더 자라면 너를 힘 있게 응원해주시는 분이 계셨다며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조언해주기엔 무척 척박한 환경이다. 가족과 의사가 아닌 사람과의 대면 대화는 원활하지 못한 메마른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멘토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연습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미루고 외면할 수 없는 대인관계 형성.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함에 '내가 다시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두려운 물음이 떠다닌다.




*커버 사진 : 종이 그림 케이크 + 초록잎 장식 + 숟가락 포크 by 6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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