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자도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나에게 보여줬지만, 훈자를 벗어나니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를 반겼고, 저 멀리 설산이 멋있어서 탄성을 자아내니 드라이버가 '레이디 핑거'라고 알려주었다.
레이디 핑거(Ladfinger Peak) 파키스탄 카라코람 산맥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Batua Muztagh의 독특한 암벽 첨탑으로 6,000미터로 눈 봉우리 사이에서 날카롭고 비교적 눈이 없는 암석 첨탑으로 유명하다.
레이디 핑거는 볼 때마다 '와아~' 하고 탄성을 지를 정도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 건 맞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핑거라면 손가락을 말하는 건데 저 모습이 도대체 왜레이디 핑거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궁금하니 확인은 해야겠고, 안 되는 영어로 레이디 핑거를 가리키면서 현지인에게 물어본다.
와이 레이디 핑거??
현지인은 답변으로 5개 손가락 모양의 봉우리들을 일일이 찍어가면서 알려주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억지에 가까웠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 눈앞에는 이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레이디 핑거가 보인다.
훈자를 벗어나면서 보이는 설산의 풍경
훈자에서 한 시간 가량 외곽에 있는 호퍼 마을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우리를 구경하러 나온다.
집에 있던 아이들도 자신이 돌보던 더 어린아이들을 안거나 업고 또는 수레에 태워서 하나씩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갖고 있던 초콜릿이나 사탕들을 건네기에 여념이 없었고, 고작 사탕 하나를 받아 든 아이들은 웃으며 입꼬리가 귀까지 걸려있었다.
나는 여행할 때 아이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손을 내밀며 사탕, 머니, 초콜릿 등을 외치면서 따라오는 것들을 많이 봤고 그 모습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한번 주면 주위의 모든 아이들이 달려드는 것을 알기에 상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곳의 아이들은 먼저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관광객들이 신기한지 달려 나와 우리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이 나는 더 신기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들을 구경하고, 그들은 그런 우리를 구경하고...
우리를 구경하는 호퍼마을의 아이들
호퍼 빙하에 도착했다. 차에게 내린 곳은 아무런 풍경이 없었다. 즉, 빙하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을 하나 사서 간단히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주차되어있던 건물을 돌아 조금 올라가다 보니 탁 트인 풍경과 함께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높은 산과 가파르게 떨어지는 깊은 골짜기, 파란 하늘, 하얀 구름과 산꼭대기의 설산의 조화...
그냥 그 모습만 봐도 황홀했다. 그런데 빙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빙하는 하얗고 거대한 얼음덩어리였지만 이곳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깊은 골짜기의 바닥이 희끗희끗한 게 좀 이상하긴 했다.
빙하가 다 녹았나?
골짜기 바닥의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호퍼 빙하
이 생각도 잠시, 곧 골짜기 아래의 희끗희끗한 것이 빙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빙퇴석, 빙하가 이동하다가 암석, 자갈, 토양 등이 섞여 이뤄진 퇴적층이라고 한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만족해서 전망대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될 듯했지만, 이 곳에 온 이상 전망대는 가보기로 하였다. 사실 저 쪽에 전망대가 보여서 저 정도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전망대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아까와는 다른 더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있고 그것을 더 자세히 그리고 더 멋진 모습을 보려면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 그 시점부터
내가 왜 이 투어를 신청했을까... 하는 깊은 후회와 함께
'내려갈까?', '내려가지 말까?'를 고민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내려가는 것은 간다고 치지만, 내려가면 올라와야 하는 법!!! 그 올라오는 것도 장난이 아닐 텐데... 울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가기 시작했고 얼굴을 뻘게지면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가파랗고 험하기까지 했다. 두 손은 바위나 바닥을 잡고 한발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려오다 보니 사람들은 저 밑에 가고 있었고 나와 몇몇 사람들만 숨을 헐떡이면서 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4~50분여를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빙하에는 도달했지만, 이곳이 포토존이 아니라고 더 가야 한다면서 투어 가이드가 내 가방을 들어주고는 연신 '포토존 고!'를 외쳐댄다.
남미에서 모레노 빙하투어를 해본 적이 있다. 그와는 사뭇 다르지만 이곳도 빙하인 만큼 아래에는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의 갈리진 틈도 있었고 물이 고인 곳도 있어 미끄럽기까지 하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겉표면이 까만 먼지가 뒤 덮여서 있어 햇빛에 반사되는 것이 약하기도 했지만, 흙먼지 아래의 미끄러움이 잘 보이지 않기도 해서 순간 방심하면 넘어지기가 쉬웠다. 어쨌든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때마다 풍경은 조금씩 변해있었고
'아~ 여기가 포토존이구나..'라고 생각되는 위치에 도달하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는 보상심리가 더해져 인증샷을 필수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셀카도 찍고, 풍경도 찍고, 이리도 찍어보고 저리도 찍어보면서 시간은 흘렀고 힘들게 내려왔던 그 길들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니 앞이 캄캄했다.
어쨌든 이곳에서 살 수는 없을 터 쉬엄쉬엄 간다는 생각에 호기로운 출발은 했지만, 가파른 오르막에서 나는 네발로 기는 동물이 되어 기어올라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