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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Apr 30. 2024

협곡을 가르는 바람처럼

공연 리뷰|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

지난 4월 24일 서울 아트센터 도암홀에서 디 오리지널 시리즈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가 열렸다.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는 쇼팽을 사랑한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의 ‘쇼팽 프로젝트’ 음반과 더불어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녹턴 등 쇼팽을 대표하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구성한 클래식 공연이다.


올라퍼 아르날즈는 아이슬란드의 작곡가로, 미니멀리즘 음악을 추구한다. 그는 클래식에 전자사운드를 결합하며 네오 클래시컬의 선두 주자로 불린다. 어린 시절 할머니를 통해 자주 접했던 쇼팽의 음악은 그에게 영감이 되었고, 이후 [The Chopin Project]라는 음반으로 쇼팽을 재해석한 음악을 선보인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2021년 결성된 단체로, 아드리엘 김 지휘자가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현대 미니멀리즘 작품을 위주로 막스 리히터,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을 국내에서 초연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디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나인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는 기존 쇼팽의 작품과 올라퍼 아르날즈의 작품을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재해석한 공연이다. K-클래식의 대표주지로 불리는 박연민 피아니스트가 협연하며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연주를 펼쳤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2022년 <막스리히터 스페셜>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들은 막스 리히터의 작품을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며 이후 2023년 <막스리히터 레볼루션>을 통해 다시 한번 현대 음악의 고요한 감동을 전했다. 디 오리지널의 섬세한 연주는 내밀한 감정을 건드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바라보며 미니멀리즘 음악에 빠져들어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번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도 기대가 되었다. 연주뿐 아니라 중간중간 관객을 위한 설명을 놓치지 않는 아드리엘 김 지휘자의 진행도 공연의 묘미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숙하게 진행되는 클래식 공연에서 지휘자의 멘트는 분위기를 환기하고 다시 집중하게 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작곡가에 대한 설명과 음악 세계를 덧붙여져 감상의 폭이 넓어졌다. 작은 부분이지만,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큰 차이를 만든다고 느꼈다. 



1부는 레스피기 모음곡 '새' 中 전주곡 & 3악장 '암탉'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으로 이루어졌다. 봄 날씨와 딱 어우러지는 화려한 선곡이다. 피아노의 흐름과 현약기의 조화가 눈부신 봄날의 정원을 떠올리게 했다. 형형색색의 얇은 꽃잎들이 햇빛에 비추어져 아른거린다. 유려한 피아노와 경쾌한 리듬, 테크니컬한 연주의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2부는 쇼팽과 아르날즈의 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해석한 아르날즈는 광활한 대지와 협곡과 같은 자연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는 타 곡에 비해 아르날즈의 곡들을 연주할 때 집중도가 남다르다고 느꼈다. 한순간에 곡에 집중되었고 동시에 서사가 생겨 음악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Arnalds - Verses

 

도입부부터 소름이 돋았던 곡이다.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하지만, 섬세한 선율이 귓속 끝까지 파고든다. 눈을 감고 음을 하나하나 음미했다. 낮은 첼로소리와 보다 높은 음의 바이올린 소리가 겹치면서 마음이 턱하고 놓이는 기분이 든다.  


비 오기 직전의 흐린 날씨, 열어둔 창문을 통해 습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친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커튼과 살갗에 마주하는 습습한 기운. 콧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눈썹 끝까지 올려보내니 몸도 같이 떠오른다. 하늘을 날아 이름 모를 높은 산맥의 꼭대기에 섰다. 나는 바람이 되어 협곡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내려간다. 어떤 문명의 흔적도 없는 대자연의 광활함이 내 몸을 완전하게 압도한다.  


눈을 감고 온전히 음악감상에 집중했을 뿐인데, 저절로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며 놀라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음악으로 말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아드리엘 김 지휘자가 재해석하고 오케스트라 디오리지널이 연주한 Verse에는 따뜻한 용기가 담겨 있었다. 비장한 멜로디는 저 멀리에 있다가도 바람처럼 어느새 내 귓불 옆으로 와서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 주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Arnalds - Written in Stone

 

현악기의 선율이 머리 위로 가득 내려온다. 사방이 칠흑 같은 사막의 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수십 개 별의 흔적이 밤하늘을 가득 수 놓는다. 의지할 곳 없는 사막의 밤이지만, 이 어둠은 오히려 안전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Written in Stone 은 집으로 돌아와 음원으로 들으니 공연에서 들었던 것보다는 심각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다.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연주한 곡은 웅장하면서도 따듯한 느낌이 강했다. 전반적으로 강인하고, 북돋아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현대음악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클래식 공연과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것은 참 귀한 일이다.  단순한 구조 안에서 드라마를 느끼고, 섬세하고 담백한 연주에서 벅차는 감동을 느꼈다. 일상의 먼지를 씻고 싶은 날이면 다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공연을 찾게 될 것 같다.  


비움이 필요한 요즘이다. 복잡한 자극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싶다면, 아르날즈의 음악을 들으며 자연의 공백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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