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는 복싱선수였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건축가.
(건축계의 노벨상)
하지만 그가 모든 건축을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안도의 모든 건축물을 좋은 건축물에 부합하는 가?'
에 산술적 가치를 부여하여 답을 한다면
5%정도 성공한 건축가 라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건축가들 사이에서 실제로 그런 평을 받는 건축가이기 때문에)
하지만 요즘의 한국에서 그에 대한 내러티브는 어떤가 ?
'독학으로 프리츠커 상을 받은 천재 건축가'
이것은 사회가 시민들에게 서술,기술하고픈 하나의 표현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런 주제를 전혀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왤까?
사람들은 해석할 필요없는, 즉 생각할 필요없는,
순수하고 퓨어한 정보를 원하기 때문이다. ( 특정된 기관을 통한 )
뇌를 덜 쓰고 나의 자원을 덜 소모하여
분별적으로 생각할 필요없는 자극적인 정보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창작가들은
이런 현상과 상식을 관찰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뻔한 것들을 뻔하지 않게 가공하기 위해
본론으로 돌아와 안도 다다오는 5%의 성공을 위해,
문화적 교우관계가 좋지 못한 타국에서도 칭송 받을 기회를 잡기위해
건축을 놓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5%의 성공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찾아온다
관련업계에서 무식하고 문화적,환경적 요인을 갖추지 못한 건설물이라는
혹평을 받아도,
'일짜무식인 권투선수가 로비로 상을 받았다.' 라는 얘기를 들어도
밖에서 어떻게 떠들어 버리더라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에 몇 십년이 걸리더라도 헤딩할 수 있는
이른바 성공이라 불리는 것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의 부산물 일뿐이라는 이야기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자들이
'성공'이라는 가치를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특정한 인물의 천재적임'
이라고 여긴다면, 성공이라 불릴 본질적 가치를 놓칠 것이다.
성공이라는 가치는 결국
타미디어와 타인이라는 사람들을 통해 기준가치를 설립하여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한 가치기준에서
내가 이룰 것들에 대한 평가기준인 것이다
즉, 내가 무엇을 이루려는지 명확하지 못한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가치평가의 저주에서 허우적 거릴테고
자신이 무엇을 이루려는지 명확한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가치를 등한시 여기더라도 행복히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