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잘 지내보자고 다독이게 되니까.
지난 일요일 남편과 교외에 있는 커피숍에 갔다. 통창으로 풍경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나란히 앉았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각자의 물건을 꺼냈다. 남편은 책을 읽었고 나는 뜨개질을 했다. 말없이 한동안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늦은 오후에 찾아간 커피숍이었는데, 문득 고개를 드니 해가 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커피숍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서 맛있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를 나가서 돈 써가며 먹는지 이해를 못 했다. 그리고 외출할 때면 텀블러에 커피를 챙기기 때문에 커피숍에 갈 일도 없었고. 연애할 때도 커피숍에 간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우리가 요즘 주말마다 커피숍에 간다. 수다를 떨 때도 있지만 보통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릴 때도 있고, 글을 읽거나 쓰고, 뜨개질 같은 취미생활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다 집에서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커피숍에 가서 비용을 지불하며 하는 걸까.
집에는 있지만 커피숍에 없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집에는 나를 유혹하는 게 있다. 바로 TV다. TV 없이 잘 살던 때가 있었는데, 집에 떡하니 TV가 있으니 자꾸만 눈길이 간다. 전원을 켜달라고 TV가 계속 외치는 것만 같다. 집에는 나를 방해하는 것도 있다. 집안일이다. 책을 읽으려 하면 책상이 지저분한 게 먼저 눈에 들어오고, 커피 한 잔 내리려고 하면 어지러운 주방이 거슬린다. 바닥에 앉으면 머리카락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외면할 수 없어 집안일을 먼저 하게 되고, 그러고 나서 쾌적한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면 좋으련만... 지쳐서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 진다. 하지만 커피숍엔 이런 것들이 없다. 나를 유혹하는 것도 방해하는 것도 없다. 공간만 바꾸었을 뿐인데 TV도 집안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탁 트인 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니 괜히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 든다.
반면 집에는 없지만 커피숍에 있는 것들이 나를 또 커피숍으로 이끈다. 풍경이다. 풍경을 볼 수 있는 커피숍을 좋아한다. 화려한 도시보다는 자연이 보이는 풍경이 좋다. 언젠가 갔던 북카페의 소나무 뷰처럼 제주에 갈 때면 들르는 커피숍에서 보는 바다 풍경처럼 말이다. 풍경을 볼 수 없는 커피숍이라면 주인장의 취향이 묻어나는 커피숍을 찾아간다. 유행을 따라 힙한 커피숍도 좋지만, 조금 올드하거나 고집스럽더라도 주인장의 취향이 드러난 곳에 관심이 간다. 풍경과 취향이 있는 곳에 머물면 인생에 대해 한 수 배우는 기분이다. 광활한 풍경을 보며 내 일상의 고민이 얼마나 사사로운지 깨닫고, 취향이 잘 어우러진 공간을 보면 나도 나답게 살자고 다짐하게 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커피숍과 여행이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일상을, 집을 잠깐 잊게 하고 색다른 풍경에 빠져들게 하니까. 여행에서 돌아올 때처럼 좋은 커피숍에서 돌아올 때면 다시 잘 지내보자고 나를 다독이게 되니까. 어쩌면 커피숍은 일상에서 가장 쉽게 떠나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커피숍에서 쓰는 돈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개 싸다. (그래도 커피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면 화가 나지만.) 앞으로 여행 가는 기분으로 커피숍에 가야겠다.
이번 주말엔 어느 커피숍을 여행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