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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Sep 21. 2023

2023년 9월의 일상

새로운 것 없이 일상에 고요하게 침전하고 싶었다.

밖으로 토해내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다. 말로 털어내볼까, 글로 써볼까 생각했지만 내 안에 있던 생각을 밖으로 뱉어내면 내 감정을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맘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들을 오래 생각해 결론을 내리곤 맘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게 결론대로 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과 별개로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다. 여름이 좋다고 찬양하고 다녔는데, 여름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도 참 좋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선선해 집 밖을 나설 때마다 기분이 좋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전보다 수월해졌다. 해가 짧아져 어둑한 새벽의 묵직함이 좋다. 잠에서 깰 때마다 하루가 시작된 것에 부담감이랄까 압박같은 것을 느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다. 눈 떴으니까 움직이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월요일은 우리 집 야식데이다. <최강야구>를 보기 위해(?) 야식을 주문한다. <최강야구>는 남편과 내가 챙겨보는 유일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최강야구> 덕에 월요병까지 사라졌다. 언젠가 일요일에는 얼른 월요일이 돼서 <최강야구>나 보면 좋겠다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화요일엔 요가를 간다. 5시가 좀 넘어 시작하는 클래스에 참여하려면 4시에 퇴근해야 하고, 그러려면 7시에 출근을 해야만 한다. 7시에 출근하려면 또 6시 전에는 일어나야 하고. 종종 늦게 일어나서 혹은 날이 궂어서, 핑계를 대며 빠졌다. 9월엔 빠지지 말고 작은 성취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동료의 조언을 듣고, 성실히 실행 중이다.


수요일엔 별다른 일정이 없다. 그날 기분에 따라 움직인다.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남편과 나는 한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보통 나는 피아노를 치거나 뜨개질을 하고, 책을 본다. 보통 남편은 게임만 한다. 가끔은 드라이브를 하거나 산책도 하고, 또 아~주 가끔 남편과 술 한잔한다.


목요일에도 요가를 간다. 요가 후 일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피아노 수업이다. 한동안 권태로웠던 피아노에 요즘 다시 흥미가 생겼다. 흥미와 별개로 잘 치는 못 하지만. 오랫동안 궁금했던 왈츠 곡이 있는데 두 시간 동안 웹 서핑으로 제목을 찾아냈다. 이 이야기를 피아노 선생님한테 했더니 쉬운 버전의 악보를 찾아주어 요즘 그 곡을 연습하고 있다.


금요일도 별다른 일정이 없다. 보통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약속을 잡기도 한다. 밥집에서 술을 먹고 싶다는 말에 동네까지 와준 동료와 술을 마시기도 하고, 요즘 빠져있던 <알쓸별잡>을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요즘은 주말에 바빴다. 토요일마다 이런 저런 일정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만큼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  가족이나 교회 행사가 연달아 있었다. 일요일 아침엔 교회에 간다. 그 뒤 시간은 남편과 오롯이 보낸다. 보통 드라이브를 하고 교외에 있는 커피숍에 간다. 그곳에서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다시 차에 오르면 수다가 시작되는 루틴. 우리 좋아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마다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9월은 좀 달랐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새로운 것 없이 일상에 침전하고 싶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또 나아가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지금, 이 일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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