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일상에 멜로디가 생겼다.
나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피아노도 그랬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인데, 찾아보니 2016년 개봉작이다. 이 마음을 잊고 살다가 교회를 다니면서 피아노가 다시 생각났다. 이 역시 또 잊었고 종종 생각날 때면 핑계를 찾았다. 언젠가는 돈이 핑계였고 어떤 때는 시간이 또 게으름이 핑계가 되었다.
다시 피아노가 생각났을 때도 핑계를 찾았다. 결혼을 핑계로 삼으려던 찰나,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나중에 나의 딸이 피아노를 칠 때(지금은 피아노 칠 딸이 없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엄마도 피아노를 너무 치고 싶었는데, 결혼하면서 포기했단다. 그럼 딸이 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다. 결혼이 뭐길래 피아노까지 포기하는 거냐고. 사실 결혼은 내게 피아노를 포기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어쩌면 이걸로 핑계를 댈지도 모르는 내 모습도 별로고, 내 취미 생활도 존중해주지 않는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면 그것도 최악이지 싶었다. 당장 피아노를 시작해야 했다.
이게 벌써 작년 일이다. 다행히 1년이 넘도록 그만두지 않고,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피아노와 연애하듯 지낸다. 연애 초기의 커플처럼 매일 같이 피아노 앞으로 찾아가 열정을 불태우던 때도 있었고, 권태로워 꼴도 보기 싫어 그만둘까 고민하던 때도 있다. 지금은 일상과 조화를 이루며 잘 지내고 있다. 각 잡고 한 시간, 두 시간 연습을 하기보다는 잠깐 짬을 내어 연습한다. 남편이 설거지하는 동안, 배달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씻기 귀찮을 때 핑계 삼아 피아노를 친다.
느슨하게 배우고 있어 실력이 출중하지는 못하다. 그저 피아노를 배우는 내가 좋다. 아직도 계이름이 어려워 한 칸씩 세며 계이름을 찾아야 할 때도 있지만, 몇 마디씩 끊어 양손 따로 연습을 해야 겨우 칠 수 있지만. 틀리던 구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고쳐지고, 제법 연주처럼 들리는 순간도 오고, 처음부터 끝까지 칠 수 있는 곡이 있다는 게 즐겁다.
피아노를 시작한 것처럼 이런 일들이 내게 많이 생기면 좋겠다. 삶에 문득문득 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기는 것, 이 핑계 저 핑계를 다 대도 결혼을 핑계로 삼지 않는 것, 결국은 실행으로 옮기며 해내는 것, 대단한 실력자가 되길 바라기보다는 뚝딱 거리며 그 과정을 즐기는 것. 이렇게 살면 될 일 아닌가.
참 잘했다. 더 이상 핑계를 대지 않고 피아노를 시작한 것 말이다. 덕분에 일상에 멜로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