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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Feb 14. 2024

240214 다정의 순간들

사실은 세상에 다정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아서

- 아침엔 가볍게 과일을 먹는 게 좋대, 얼마 전 책을 보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도 좋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남편이 씻는 동안 사과를 깎았다. 남편이 같이 먹자고 했지만, 아침에 무언가를 먹는 게 힘들어 거절했다. 갑자기 비닐 팩을 가져와 사과를 담더니 그럼 회사에서 먹으라며 건넸다. 출근하니 남편의 카톡이 도착했다. 아침에 사과 깎아줘서 매우 행복했어. 내 몫의 사과를 챙겨주고, 사과 하나에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표현하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다정하다.


- 오랜만에 당근 거래를 했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두 번은 안 읽을 것 같은 책들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발렌타인데이인 오늘 거래하자고 한 분이 있어 초코바 하나를 챙겨서 나갔다. 발렌타인데이라서 드시면서 책 보시라고 가지고 왔어요, 수줍게 말했다. 너무 고맙다며 자기는 아무것도 준비를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단순히 책을 거래하는 순간을 낯선 사람과 다정하게 맞았다.


-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차가 오다가 그 사람을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건너라는 뜻이다. 그 사람은 운전사에게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길을 건넜다. 사람이 보이면 차는 멈춰야 하는 당연한 상황에서 인사를 하고 건너는 다정함이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말랑해지더라.


- 회사에서 회식비가 지원된다. 보통 점심시간이 두 시간인 월급날에 회식을 한다. 다음 주 월급날에 회식을 하기로 했다. 나는 음식에 진심인 편이 아니라서 메뉴를 고를 때면 늘 한 발짝 물러서는데, 팀장이 몇 가지를 추려서 투표하라고 했다. 그런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팀원들의 의견을 나서서 수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다정함을 느꼈네.


- 어제 호수 산책을 했다. 날이 따스해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이 호수는 지금 루미나리에 축제 중이라 반짝거리는 조형물이 많다. 사실 나는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호다닥 지나가는 편인데, 어제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더라. 데이트하며 서로를 찍고, 반짝이는 풍경을 찍는 사람들. 저 사람들은 분명 이 시간을, 이 풍경을,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겠지. 그래서 지금 이 모습을 간직하려고 카메라를 켜는 거겠지 싶어 나도 따라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별거 아닌 것을 다정하게 표현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다정하게 대하고, 당연한 일에도 다정하게 인사하고, 귀찮은 일을 정리해서 다정하게 제안하고, 지금 이 시간을 다정하게 기록하는 순간들을 목격하는 게 나는 참 좋다. 이런 다정한 순간을 목격할 때면 코끝이 찡해진다. 바쁘고 정신없어서 못 느끼고 지나갈 때가 많아서 그렇지, 사실은 세상에 다정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직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그리고 다정의 순간을 마주하면 다짐 하게 된다.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함께 다정해지기로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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